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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Apr 08. 2021

탑코트





현서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단정한 검은 구두를 신고 있다. 차림새와는 반대로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또각또각 광안리 해변 산책로를 걷는다. 다리가 아파 주먹을 쥐고 허벅지 옆을 두드리며 벤치에 앉는다. 앉자마자 구두를 벗으며 온몸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쉰다.


그녀의 남편이 운영하는 영어 학원은 지금 칠 개월 째 월세도 못 내고 있다. 아이들이 한 두 명 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반이 통째로 없어지기를 몇 번. 폐업을 하고 월급쟁이로 맞벌이를 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에 일단 현서부터 면접을 본 것이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학원을 크게 차린 건데, 그걸 다 갚기도 전에 내리막을 타 버렸다. 큰 빚에 야금야금 더해진 작은 빚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는지 계산하기도 싫어 현서는 예의 그 한숨을 쉬며 눈물이 그렁해진다.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고, 한참 동안 손을 살펴 본다. 손가락을 활짝 펴 손톱을 보다가, 구두를 벗어 발톱도 본다. 그래. 오랜만에 네일이나 하자. 핸드폰을 꺼내 '광안리 네일샵'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N네일샵.


현서는 빠르게 입간판과 매장 안쪽을 쓱 훑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큼직한 네일 테이블이 두 개 있고, 안쪽 구석에 페디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보인다. 벽에는 여느 네일샵처럼 수십개의 네일 폴리쉬가 색깔별로 화사하게 진열되어 있다.


"저,,예약 안 했는데, 혹시 지금 네일이랑 페디 둘 다 할 수 있어요?"


바쁘게 테이블 위를 정돈하던 여자가 고개를 들어 현서를 본다.


"예약하시고 오셔야 돼요. 저희 샵은 무조건 예약제거든요. 근데 지금 시간이 좀 남아서 둘 중 하나......"


여자는 말을 하다 말고 현서의 얼굴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 본다. 현서도 그녀의 얼굴을 여기 저기 살피다가 점점 눈이 커진다. 두 여자의 눈이 같은 지점에서 마주친다.


"야! 너 임은정 아냐?"

"너 혹시 현,,현서! 현서 맞구나. 달맞이 쪽에 협진맨션!!"

"맞아!! 해여중 정현서."


둘의 얼굴에 반가움과 놀라움이 잔뜩 묻은 웃음이 오래 머문다.


"야 이게 얼마만이야. 야 일단 앉아 봐. 지금 내가 시간이 두 시간밖에 없어서 둘 중 하나만 해야할 것 같은데 뭐할래?"

"그럼 네일만 할게. 어머 웬일이니 진짜?! 너 공부 안 하구 그렇게 꾸미고 다니더니,, 적성에 맞는 거 잘 찾았네?! 사장님 된거잖아. 좋겠다!!"


현서는 장난기 가득한 애정어린 눈으로 은정을 흘겨본다. 표정과는 반대로 그녀는 잠시 자기의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사장님이라는 말에 은정은 흠칫하며 표정이 잠시 멍해지다가 현서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웃는다.


"좋긴.. 요즘 이 바닥도 예전같지 않아. 그래도 뭐 간섭하는 사람 없고,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있으니 그건 만족이지."

"야 그래도 이쪽 상가 비싸지 않아? 대단하다 너 진짜!"


은정은 현서의 가느다란 손을 따뜻한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볼에 넣었다가 잠시 기다린다. 은정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현서는 보지 못한다. 그녀들은 아주 잠깐 각자 자기 현실을 떠올린다.


"야 대단할 것도 없어~ 벌어서 월세 맞추기 빠듯하지 뭐. 너 손이 어쩜 이리 부드러워?! 너 살림도 안 하고 몸 쓰는 일도 안 하지? 무슨 일 해?"

"아,, 나,, 결혼하고 일 안 하다가  집에만 있기 그래서 방금 면접보고 오는 길이야. 나 국어 전공하고 결혼하기 전까진 학원에서 애들 가르쳤어."

"너 맨날 같이 놀면서 공부는 곧잘 하더니,,, 그럼 너 선생님이네?! 멋지다!! 그래서 이렇게 손이 부드럽구나. 너 근데 손톱이,, 혹시 그 전에 했던 거 샵에서 제거 안하고 그냥 니가 뗐어? 손톱 표면이 좀 많이 상했네."

"헐, 그걸 보면 알아?"

"알지. 담부턴 꼭 샵에 와서 떼. 표면 정리부터 해야겠다."


은정은 현서의 손을 유리볼에서 꺼내 따뜻한 물수건으로 정성들여 닦고, 손톱 표면을 만져 본다. 우둘투둘하고 거칠다. 테이블 아래에서 '은정'이라는 네임텍이 붙은 커다란 원통을 올려 놓고 표면이 꺼끌해 보이는 길다란 네일화일을 꺼내 현서의 손톱 표면을 갈아 다듬기 시작한다. 현서의 손톱 위에 먼지 같은 하얀 가루들이 날렸다 앉기를 반복한다. 네임텍을 본 은정은 오늘은 사장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안도한다. 왜 하필 지금 같은 때 현서를 만났을까. 하긴, 언제 만난들 편치 않은 마음이긴 마찬가지였겠다 싶다.


둘은 중학교 때 매일 붙어 다니던 단짝이었다. 시험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현서네 집에서 밤을 새워 수다를 떨고 손을 꼬옥 잡은 채 잠들곤 했었다. 시험을 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점점 성적은 떨어졌지만, 서로 공유하는 비밀은 많아졌다. 이불 속에서 몰래 맥주를 마시며 얼굴이 빨개져서 온갖 얘기를 다 쏟아 놓던 그때처럼, 오늘 저녁 소줏잔을 기울이며 현서에게 그동안 있었던 비밀들을 다 털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정은 마음이 착찹해진다.


"은정이 너 어쩜 얼굴이 그대로네."

작고 오밀조밀하게 귀엽던 은정이도 이제 많이 늙었다고 현서는 생각한다.

"야! 너두 얼굴 똑같애."

은정은 현서의 똘망똘망하게 반짝이던 눈가에 자리잡기 시작한 주름을 보며, '나도 이제 저렇게 늙었겠지.'  싶은 생각에 쓸쓸해진다.


"결혼은?  안 했어?"

"나? 아직. 넌 언제 결혼했냐? 아 참, 어디 쪽에 살아?"

"나 결혼한 지 2년 넘었어. 우동에 반도보라 알지? 문화여고 쪽."

"와, 거기? 해변라인 아니라도 우동은 다 비싸지 않냐? 너 남편이 돈 잘 버나 봐? 남편은 뭐해?"


은정은 자신의 불꺼진 자취방을 떠올린다. 현서같은 애들은 어떻게 저렇게 늘 순탄하게 잘 살까.


"우리 오빠는 좌동 쪽에서 영어 학원 해. 너 나중에 애 낳으면 보내. 집에도 놀러와."


현서는 어제 만취한 채 씻지도 않고 쇼파에 널부러져 자던 남편을 떠올린다. 은정이 같은 싱글은 얼마나 속편할까.


"어머, 그래도 돼? 나 진짜 놀러간다?"

"그럼. 나 이거 다하고 번호 알려줄게."


다시 현서네 집에 놀러갈 일이 있을까. 어릴 때 현서네 집에 가면 항상 주눅이 들던 기억이 난다. 형편이 크게 차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현서 엄마는 항상 현서를 쫓아다니며 다정하게 챙겼었다. 현서네 집은 늘 반들반들했다. 그런데 비해 은정의 엄마는 늘 술에 취해 있거나, 집에 없었다.


현서와 중3 때 반이 갈리며 소원해지다가, 은정이 가출을 하며 연락이 끊겼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독서실에서 늦게 집으로 들어가던 현서는 엄마 몰래 쓰던 삐삐로 은정의 연락을 받았다. 샛노랗게 머리를 염색하고 팬티가 보일 것 같이 짧은 바지를 입고 나타난 은정은, 불안한 표정으로 현서에게 돈 5만원과 옷 두 벌을 빌려갔다. 은정의 변한 모습과 진하게 풍기는 담배 냄새가 너무 낯설어서, 은정이 어떻게 지내는지 현서는 자세히 묻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은정이 5만원을 갚아 준다며 현서의 집 근처에서 만난 이후, 둘은 다시 보지 못했다.


현서의 손톱은 표면이 다 갈려나가 반들반들해졌다. 은정은 다시 현서의 손을 유리볼에 담갔다가 꺼내어 닦고, 니퍼를 꺼내어 큐티클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한다. 은정의 손톱 위의 탑코트는 손질한 지 오래되어 광택이 없는데 그 위에 붙여 놓은 큐빅은 아직 반짝거린다. 반짝이는 큐빅을 한참 바라보며, 현서는 늘 매끈하고 예쁘게 꾸미고 다니던 중학교 때의 은정이를 떠올린다. 은정이는 큐빅이 박힌 머리띠를 자주 하고 다녔는데, 올망졸망하고 조그만 얼굴에 반짝거리는 머리띠가 참 예쁘게 어울린다고 현서는 늘 생각했었다. 공부는 잘 못해도 학교 앞을 지나갈 때 주변 학교 남학생 몇몇의 눈길을 종종 받곤 하던 은정이가 현서는 항상 부러웠었다. 은정이는 지금도 크게 애쓰지 않고 매끈하게 잘 살고 있구나. 싶어 현서의 가슴 한 켠에 쓸쓸한 바람이 분다.


"너 애인은 없어? 중학교 때부터 남자 친구 있던 애가? 풉."

"애인? 애인은 있지."

"그래? 결혼 안 해? 뭐하는 사람인데?"

"그냥 회사 다녀. 내년 쯤엔 결혼 하려구."

"정말? 결혼할 때 나 꼭 불러줘."

"당연하지. 어떻게 너랑 이렇게 다시 만나냐. 밥 한 번 먹자."

"좋지 좋지!! 오늘 저녁 혹시 시간 돼?"

"오늘? 오늘은 늦게 마치구, 애인 만나기로 했어."

"기집애~ 좋을 때다. 그래 애인이 중요하지. 언제 한 번 울 오빠랑 넷이 같이 보면 재밌겠다."

"그래. 약속 한 번 잡아 보자."


중학교 때 집을 나와 식당과 주점을 전전하던 은정은, 스물 다섯 살 때 같은 바에서 일하던 오빠와 칠 년을 동거했다. 그는 지금 마약사범으로 복역 중이다. 지난 주에 면회를 갔을 때 퀭하던 그의 얼굴이 은정의 머릿 속에 떠올랐다가 무거운 돌처럼 그녀의 가슴을 누른다.


"무슨 색 바를 거야?"

"음,,, 흰색 많이 섞인 하늘색이나 연보라?"

"연보라 엄청 이쁜색 신상있는데, 흰색 많이 섞인 거."


은정은 진열대에서 연보라색 폴리쉬를 들어서 현서에게 보여준다.


"어머, 이쁘다! 그걸로 할래."


현서의 핑크색 손톱 위에 베이스코트가 올라가고, 연보라색 폴리쉬가 올라가고, 탑코트가 올라가는 동안 둘의 대화는 뜸 하다. 둘은 각자의 근심 속에 잠겨 서로의 표정을 살피는 걸 잊고 있다. 현서의 우둘투둘하던 손톱은 어느새 오일까지 발라져 반들반들 윤이 난다.


"이거 유리알 탑코트라고, 엄청 광택 좋고 오래 가는 거야. 서비스로 특별히 해 준거야~ 아니다! 내가 예전에 너한테 빌린 것도 있으니, 오늘 돈 내지 마."

"얘는,, 무슨 소리야! 그 때 돈도 갚았으면서. 받아. 담에 페디 공짜로 해죠."

"야! 됐어. 그 때 옷은 못 돌려줬잖아."

"얜 또, 별걸 다 기억하고 있네. 됐으니까 받고, 밥 사!"


은정의 앞치마 주머니에 겨우 현서가 넣어 준 오 만 원 짜리를 은정은 기어이 다시 빼서 현서의 자켓 주머니에 넣어 준다.


"너두 참. 너 조만간 연락해. 내가 꼭 밥 살거야!!"

"알았어. 비싼 거 사줘!!"


둘의 눈빛이 다정하게 잠깐 만난다. 서로 연락하자며 전화번호와 인사를 주고 받고 현서는 샵을 나온다. 더 이상 갚을 것도, 받을 것도 없어진 두 친구는 한동안 각자 깊은 생각에 잠긴다. 찍어서 발신을 한 번 눌렀던 은정의 번호를 저장하려고 핸드폰을 누르는 현서의 검지 위에 연보라색 손톱. 그 위에 유리알 탑코트가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유난히 매끈하게 반짝거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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