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돼지갈비’만 파는 고깃집 ‘동문갈비’
신세계百서 창신동까지 박수근 로드 답사
문구 도매골목 한쪽 수줍은 듯 숨은 맛집
미석(美石). 화가 박수근(1914-1965)의 호다. 예술적 철학을 표현하고 삶의 단단함과 그림의 서민적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박수근은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해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1932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조선미술전람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같은 관전(官展)에 출품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광복 이전에는 주로 농가 풍경과 여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러한 모티프를 일관되게 이어오다가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어렵게 생활하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똬리를 튼 그에게 거리 풍경과 서민들의 일상은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됐다. 화면에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화강암과 같은 질감을 내는 그의 화풍은 매우 독자적이고 창의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미석이란 호는 작품 스타일과 그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박수근은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화가다. 반대로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주춤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수근은 미술사가들이나 비평가들에 의해 해석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수근이란 틀에서 벗어나 그의 일생과 작품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있었다.
예술전문지 데일리아트 한이수 대표가 지난달 30일 박수근이 활동했던 신세계백화점 본점(신세계스퀘어)부터 종로구 창신동 집터까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예술 다양성에 대한 답사를 이끌었다. 신세계백화점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 미츠코시 경성지점으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해방 후 동화백화점이었다가 한국전쟁 때는 미군 PX로 사용됐다. 1963년부터 신세계백화점으로 개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건축가이자 소설가 이상의 작품 '날개', 여류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에도 등장하는 주요한 글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나목에서 주인공 이경(이름이 외자라 경아라 불림)은 미8군 PX 초상화부 점원이다. 화가 옥희도는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경과 옥희도는 서로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경은 결혼 후 두 자녀를 낳고 살다가 어느 날 옥희도의 유작전 기사를 보고 전시회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옛날 옥희도의 집에서 봤던 그림이 고목이 아닌 나목이란 사실을 알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박완서는 ‘나목’ 헌사에서 ‘이 소설은 내가 사랑했던 한 화가의 삶을 더듬어본 것이다.’라고 적었다. 두 사람은 실제 1951년 겨울 미8군 PX에서 처음 만난다. 로맨스가 있었는지는 고인이 된 두 사람만이 알 일이다.
지난 2021년 겨울부터 2024년 3월 봄까지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박수근의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 추억이 소환된다. 전시회에는 회화 작품 수 100여 점과 자료 200여 점 등이 나와 박수근을 가장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세 차례나 전시회를 찾아 감동을 덧쌓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나목’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시대에 곤궁한 생활을 이어나간 사람들,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 박수근을 상징한다.
박수근은 12세 때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을 보고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면서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박수근은 초등학교 담임인 오득영 선생님의 격려를 받으면서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고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박수근은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을 하면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국전, 대한미술협회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등 중요 전람회에 참여하면서 중견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대 학출도 아니고 당시 유행하는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지만 진솔한 소재를 선택하고 개성 있는 화법을 구사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한이수 대표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그림만 그리며 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했고 용산 미군부대에서 전시를 열고 그림을 팔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 개인전을 제안받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병으로 갑자기 타계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PX 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했던 박완서가 훗날 소설가가 되어 박수근이 참혹한 시절을 얼마나 묵묵히 견뎌냈는가를 기록한 것이 나목”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때 박수근은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전쟁 전 강원도 양구는 38도선 이북이었다. 종로구 창신동에 정착한 10년 동안은 그가 화가로서 가장 전성기를 누린 시간이었다. 판잣집이 즐비한 창신동 골목길은 좁고 시끄러웠지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단단하고 따뜻했다. 이때 그린 ‘창신동 기와집’은 그가 살던 창신동 집을 포대종이 위에 연필과 크레용을 사용해 그린 사실적 작품이다.
비평가들은 이 당시 박수근의 그림에 대해 ‘참혹한 전쟁이 지나가고 폐허가 된 서울에서 강인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이웃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그림에 새겨 넣었다’고 표현했다. 비평가들은 박수근을 ‘서양의 유화를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화가’라는 평가도 했다. 답사팀은 2층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는 롯데호텔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은 과거 반도호텔과 그 안에 반도화랑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반도화랑을 통해 박수근의 작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박수근은 창신동의 시장 풍경과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 시장을 오가는 여인들, 휴식을 취하는 노인 모습 등 전후 서울살이에 고단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았다. 그는 그림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는 온화한 색조,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시선 등에서 대상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애정을 담았다. 답사팀은 박수근 집터와 그가 다녔던 동신교회, 그리고 여전히 1950년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창신동 뒷골목을 누비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필자가 두 번에 걸쳐 사전 답사한 ‘동문갈비’로 향했다.
동문갈비 상호는 말 그대로 ‘동쪽 문’, 즉 동대문 쪽에 있는 갈빗집이란 의미다. 동문갈비가 있는 창신동은 동대문 밖 첫 동네다. 문구도매상가가 밀집해 있는 골목 안쪽에 보일락 말락 부끄러운 듯 동문갈비가 들어서 있다. 처음 찾을 때는 살짝 헤맬 수도 있는 골목 구조다.
일단 이 식당은 알려주기 싫은 숨은 맛집이다.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 리뷰가 극히 적어 맛이 없는 곳인가 싶겠지만 접해 보면 신세계다. 초로의 부부가 다정하게 운영하는 곳이다. 홀과 숯불을 담당하는 남 사장님은 주방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여 사장님이 오순도순 장사를 하신다. 홀 한 구석에는 ‘해병대231기서울동기회’ 빨간색 목간판이 서있다. 남 사장님이 1970년 231기로 해병대를 입대했다고 한다.
종업원이 따로 없기에 바쁠 때는 손님들이 눈치껏 무상 ‘알바’를 해야 한다. 신세계에서 창신동까지 예술다양성 답사 후 식후경하기 위해 맛을 보고 예약도 할 겸 사전 답사도 두 번 하고 답사 당일까지 총 세 번을 다녀왔다. 첫날은 돼지갈비가 떨어져 동태탕을 먹었다. 없는 메뉴도 해 달라고 하면 가능하고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어서 자주 바꿔주니 집밥 대접 느낌을 받는 곳이다.
돼지갈비는 간이 심심한 것이 오래전 접했던 원조 양념 맛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찾아 헤맨 맛이던가! 더욱 중요한 사실은 갈비 붙은 살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구리 부위도 있지만 돼지갈비 판다고 써놓고 접착갈비나 목살을 내놓는 곳에 비하면 ‘돼갈천국’이다. 게다가 가격이 비현실적 실화인 1인분 300g 1만5000원이아리! 가성비가 ‘갑 오브 갑’이다.
밑반찬도 경기 음식 기반으로 차분하고 맛깔스럽다. 여 사장님 고향이 경기도 용인이다. 그래서 간이 세지 않다. 경기 음식은 과거부터 궁중음식이 확산돼 맛이 구축된지라 고급진 맛도 있다. 물은 생수병의 찬물은 물론 따뜻한 주전자 숭늉을 제공해 겨울 식객의 언 손을 녹여준다.
넉넉한 인심과 친절, 맛있는 음식은 필자가 추구하는 좋은 가성비의 최고 맛집이다. 현재 자리에 정착한 지는 불과 3년, 업력이 짧아 보이지만 이전에는 성북구에서 크게 음식점을 했다고 한다. 지금 양념돼지갈비 레시피는 그때 주방실장한테 배운 것이다.
이전에 갈비를 먹으러 갔으나 이틀간 휴무로 인해 재고가 없어서 동태탕을 먹었는데 그것도 만점이다. 점심식사는 동네 일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이모카세’도 시전 한다. 구수한 청국장 베이스의 2000원짜리 된장찌개는 필수다. 공깃밥은 한 그릇 값에 양껏 퍼다 먹어도 눈치 주지 않는다. 박수근이 살면서 접했던 정과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느낌이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