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딸이 겨우겨우 허락을 받아낸, 우리집 최초의 반려 동물이던 열대어 베타 종 베리가 죽었다. 일주일이나 함께 했을까?
이틀 전까지 수면 위까지 힘차게 올라와 먹이를 먹었는데 전날 밤 밥을 주어도 어항 바닥에서 올라오지를 않았다. 지느러미가 아름다운 녀석인데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지느러미가 녀석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영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역시나 저녁밥으로 몇알 준 사료는 물을 잔뜩 머금은 채 바닥에 가라 앉아 있었다. 먹을 수 없게 된 사료를 제거해주고 혹시나 싶어 정수된 물을 조금 부어 주고 사료를 몇알 더 주고 나왔다.
마침 아내와 딸은 처가에서 하룻밤을 보내느라 집에 없었다. 딸이 놀랠까봐 아내에게 베리가 죽어있을지 모르니 집에 먼저 들어가 딸에게 베리의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일러 두었다.
퇴근 후에 집문을 여는데 아니나 다를까 딸이 울면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아빠, 베리가 죽었어, 베리가 죽었어."
거의 울부짖다 싶은 목소리로 딸은 외쳤다. 혹시라도 더 충격을 받을까 싶어 어항 바닥에 모로누워있는 녀석을 건져 올려 키친 타월로 감쌌다.
"아빠가 베리 묻어 주고 올게."
다행히 집에 텃밭 가꿀 때 쓰던 호미가 있어 들고 나갔다. 양지 바른 곳을 찾을 경황이 없어서 아파트 옆 풀밭에 풀이 많이 자라지 않은 곳을 찾아 호미질을 했다. 타월에 싼 베리를 묻고 혹시 들냥이들의 표적이 되지 싶어 돌맹이를 위에 올려두었다.
아이는 계속 구슬피 울고 있었다. 아마도 살아있는, 애정을 쏟았던 동물과는 첫 이별이었터다. 아빠한테 오렴. 아이는 품에 안겨 울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는데 감정이 전혀 섞이지 않은 마른 눈물이었다. 그저 아이의 슬픔이 아주 약간 전이 되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이별이 익숙치 않다, 특히 사별은 더욱. 사촌이내의 친척이 죽은 경우도 없고 조부모는 얼굴도 모른다.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쫑이니 나비니 키워 볼 여유도 환경도 허락도 받지 못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 하다못해 병아리 한 마리 죽는 걸 보지 못 했고, 통과의례인 애도나 극복의 과정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흘린 눈물은 사별의 경험을 하지 못 한, 체온이 있는 그 무엇에 대해 충분히 정을 주지 못했던 내가 측은해서, 반대로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딸이 대견해서, 빈 어항 만큼이나 텅빈 내 어린 날의 정서를 적어도 내 딸은 닮지 않겠다 싶었던 안도의 심리적 화합물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자주 우울하지만 우울과 슬픔은 다른 상태다. 슬픔은 에너지지만 우울은 반에너지다. 슬픔은 애도의 과정으로 승화되지만 우울은 승화되지 않고 관리해야 한다. 슬픔은 사건처럼 왔다 가지만 우울은 일상처럼 머문다.
아마도 어려서 크고 작은 슬픔과 애도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사람은 마음과 감정과 정서를 키워가겠지만 난 그 과정들을 스킵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흘린 눈물이 딸의 눈물과 다르게 메마르고 차가운 이유일 것이다.
내 어깨춤을 다 적시고 나서야 딸은 울음을 그쳤다. 엄마가 만든 미트소스 파스타를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책을 읽고, 오늘 밤은 엄마와 자도 되겠냐며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구나, 우리 딸.
사람이 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딸을 보며 확인한다. 그간 나는 그 감정들을 피하느라 얼마나 메마른 사람이 되었던가, 우울은 메마름의 증상에 다름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의 목표는 선을 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의 슬픔의 선도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 즉,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텅빈 어항을 떠올릴 테다. 죽은 물고기를 손에 쥐던 감각을 느낄 터다. 내 메마른 눈물을 기억하고 어깨를 따뜻하게 적시던 감정 가득한 딸의 눈물의 온도를 기억해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