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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벌판을 걸어갈 때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오늘의 의미

by 마음자리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부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에
함부로 난삽하게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니라.

서산대사


백범 김구께서 애송하셨던 시다.

눈발 날리던 아스팔트에 은빛보호장구로 버티던 그 차디찬 겨울처럼

잎새 푸른 5월의 새벽에도 광풍 같은 눈발은 여전히 휘날린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와 4시 사이, 32개의 서류를 제출하며
내란범의 꼭두각시를 하던 이가 오늘 그들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사법부의 쿠데타에 놀랐던 가슴도 잠시

잠깐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 또다시 희한한 일들이 일어난다.

와...

저렇게까지 해서 기어이 한덕수를 밀어 올려야 하는 이유는 뭘까.


누군가는 어차피 선거에선 질 거고, 당권이라도 잡으려고 그러는 거라지만

그게 전부일리가 없다. 지난 반년 간 그들은 우리의 상식 안에서 움직인 적이 없으니.

반드시 한덕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시도.

그 방법이 무엇이든. 반드시. 그래서 다시 살아 돌아 오겠다는 굳은 의지.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가올 대선을 무사히 치르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해졌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운명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 부여하는 의미를 통해서 운명을 스스로 엮어나간다. 그리고 우리가 특별한 경험들을 미래의 삶의 바탕으로 삼을 때, 거기에는 언제나 약간의 실수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상황을 해석함으로써 의미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상황에 부여하는 의미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
아들러 [삶의 의미] 중에서


복잡한 상황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가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이미 우리의 집단지성은 절정에 이르렀다.

국민 모두가 법을 공부하고 카르텔을 추적하며 흉악한 댓글하나가 연결되는 섬세한 고리까지 파헤쳐내며 이 난국을 지켜내고 있다.


처음 듣는 낯선 법률 용어들을 익히고 경호는 어떻게 하는 건지를 듣고 파기환송과 파기자판의 의미를 분석한다. 이들만에 이루어진 100만 인 서명운동, 그 로그기록을 받아내겠다고 서초동을 둘러싸고,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걱정하고 긴장하면서 한걸음 한걸음을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계엄을 뚫었고 내란범을 탄핵시키고 목숨을 걸고 얼어붙어가며 구속시켰다.

그들이 내란범은 탈옥시켜 대낮에 평화롭게 개산책을 시키고 맛있는 보리밥집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그런 잡스러운 것들이 우리를 흔들 만큼 한가하지 않음을 사법부 계엄을 단 1주일 만에 정리하며 증명해 보였다.


하늘이 주신 기회. 2025 반민특위의 시작


모든 것이 다 드러났다.

국회의원, 군대, 경찰, 행정부의 수뇌들, 검찰, 사법부, 국정원, 명태균과 건진법사, 수많은 술사들에 이어 심지어 역사의 그림자속에 암약하던 거대한 로펌까지...
하나하나 이름을 거명할 수 있을 리스트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명징한 증거들, 국민이 더 침착하게 기록하고 기억하며 작은 행동 하나하나의 책임을 묻는 과정.


하늘이 주신 기회다

선조들이 못 이룬 꿈. 반민특위

친일파들을 정리하지 못했던 과거의 역사가 삶의 굴곡진 참극을 반복하게 했다.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오늘. 지금은 2025년의 반민특위를 제대로 마무리할 절호의 기회다.

과거의 넋이 요청하는 간절한 기원이고 미래를 살릴수 있는 우리의 선물이다.

내란 세력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가며 상식과 합리의 개혁을 이루어나가는 일


그 여정이 우리의 용기와 의지에 달려있다.


폭풍우가 몰아쳐 여기저기 집이 무너지고 깨졌지만 이 기회에 제대로 더 든든한 새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꼼꼼하게 다시 고쳐나갈 그 집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눈보라에도 포근히 잠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


이제 우리는 함부로 난삽하게 걷지 않는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눈 덮인 들판.


우리가 걷는 지금 한걸음이

뒤에 오는 이들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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