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이야기 에피소드 1 : 내가 당한 면접 편
누군들 좋아하겠냐만 나 역시 면접을 정말로 싫어한다. 만약 현대판 지옥이 있다면 죄인에게 계속 면접만 보게 하는 ‘면접 지옥’이 있을 거라 믿을 정도다. “개복치님 1분 소개를 해보세요” “개복치님 당신의 장점을 이야기해보실까요.” “개복치님, 단점, 단점 알려주세요” 저승사자님들 저 혹시 그냥 옆에 있는 불지옥 가면 안 될까요?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고 또 못하기도 하는 터라 직장인이 된 지금도 발표할 일은 없다. 조용히 혼자 글이나 끼적이며 ‘따봉을 끌어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라도 피할 수 없는 면접은 있었으니 2부로 나눠 풀어내는 면접 이야기. 1편은 내가 당한 면접, 2편은 내가 심사의원이 된 면접을 소개한다.
면접 지원자 입장에 선 적은 별로 없다. 취준생 때 서류와 필기에서 대부분 떨어지는 바람에 면접 기회가 거의 없었다. 대기업 L모 기업과 신문사 N, 면접을 고작 2번 봤다. L모 기업은 무작위 서류 제출에서 뽑힌 것이고, 신문사는 서류와 필기를 통과한 후 본 면접이다. 내 면접은 승부 포인트가 명확했다. 졸업 평점 2.7이라는 특기할 정도로 낮은 학점을 어떻게 설명해낼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당시 취준 현장에서 학점은 지원자의 성실성을 판단하는 기초 같은 거였고, 학점 커트라인이 없는 회사라도 3.0 이하의 학점은 설명이 되어야 할 부분이었다. 얼버무리면 자칫 성실성이 모자란 것으로 평가받기 싶상이다. 물론 난 진짜 불성실하기에 통념에 동의하지만,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응책에 골몰했다.
대기업 L의 면접 현장. 지원자 4명과 심사의원 4명이 면접실에 앉아 있다. 다대다 면접이다. 가장 오른쪽 지원자부터 질문 답변을 모두 치르고 차례로 왼쪽으로 오는 순서로 면접은 진행됐다. 첫 번째는 듬직하게 생긴 남자 지원자였다. 심사위원들은 자기소개서를 봐도 당신의 장점을 모르겠다며 “왜 우리가 당신을 뽑아야 하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했다.
남자 지원자는 “전 국토대장정을 4번 완주했습니다”로 운을 떼며, 남들이 지쳐 나가 떨어졌을 때도 하나하나 끌어안고 대장정을 완주해낸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따스함과 리더십을 강조하였으나 심사위원은 “그냥 힘이 세시다는 거잖아요. 저희 힘센 사람 필요 없는데요.” “...”
압박면접. 면접자에게 정신적 데미지를 줘 인성과 대응력을 살핀다는 소위 ‘압박 면접’이 유행하던 시절이다. 대기업 L은 압박 면접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다음 여성 지원자는 교환학생 경험을 이야기했다가 “아니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쏼라쏼라” 탈탈 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예상대로 직무 분야 무경험 공격과 학점 태클이 콤보로 들어왔다. 입사를 준비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예리한 분석도 덧붙였다.
“학점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업을 벗어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공부했습니다. 저는” “개복치씨 잠시만요. 그러면 학업 말고 뭘 경험한 것이지요?” 여행 다닌 이야기, 철학책이니 사회과학책이니 읽은 이야기 등을 주절댔으나 “전부 핑계 같은데요. 공부하면서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학점은 학생의 기본 아닌가요?” 어버버버. 떨어졌다. L사 빌딩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며 빌었다. 신이시어 제발 제게 면접이란 시련을 주지 마시옵소서.
소원이 접수되었는지 필기에서 모조리 탈락해 그해엔 더는 면접 볼 일이 없어졌다. 다음 해 봄, 필기에 합격했다는 믿지 못할 연락을 받고 다시 면접 준비에 나섰다.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엔 신문사다. 신문사란 특성상 아마도 면접에서 성실성과 함께, 내가 기자정신이 있는 인재인지, 또 예리한 관찰력과 근성이 있는 인재인지를 확인하려 들 것이다. 이 점을 준비해야 한다. 덧붙여 L사의 면접은 내게 쓰디쓴 교훈을 주었는데, 직무 관련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과 매우 낮은 학점을 방어하려면 방패막이가 될 분명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손자병법에 보면 성동격서란 병법이 나온다. 동쪽에서 북치고 장구치며 쳐들어갈 준비하는 것처럼 속인 후 서쪽을 공격한다는 말로, 적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뒷통수를 노리는 전략을 말한다. 그래, 학점이니 뭐니 아예 말 자체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성동격서의 병법이 필요하다. 프레임의 전환. 이쪽으로 보지도 않게 하자. 그래서.
“반사회적 학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20대 때 전 시스템을 불신했고, 일부러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잔뜩 반사회적 표정(?)을 지으며 신문사 면접관들에게 말했다. 학점 낮은 것을 물었을 뿐인데 이런 대답을 할 줄은 몰랐다는 당혹감이 보였다. “대체 어떤 반사회적 학회였죠?” “사회혁명과 무정부주의, 현재 시스템에 반하는 것들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수군수군. 어떤 반사회적 학회였냐 하면, 전혀 반사회적이지 않은 평범한 독서 동아리였다. 거짓말은 싫지만 나도 먹고살아야 한다.
기자 출신 면접 심사의원들과 나와 시스템을 둘러싼 질문이 오갔다. 나는 여기서 어설프지만 패기 넘치는 반사회적 인문주의 20대를 맡았고, 심사의원 분들은 정의롭지만 시스템을 긍정하는 기성세대 역할을 맡으셨다. 반사회적 인문주의자 프레임, 이건 면접 보는 곳이 신문사였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동시에 모 아니면 도 전략이긴 했다. “아니, 어디서 이런 OOO이 나타났어”라며 한 방에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스펙이 바닥이고 혀를 놀리는 능력도 없다면 사람은 배팅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 학점 이야긴 더는 나오지 않았고 면접 시간은 다 흘렀다. 회사 대표는 나에게 “개복치씨는 너무 자유주의 같은데요.”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며칠 후 합격 전화가 왔다.
면접이란 한 바탕 역할극이라 생각한다. 지원자는 지원자의 롤을 맡고, 심사의원은 심사자의 롤의 맡는. 여기서 진실된 것은 꼭 입사하고 싶다는 지원자의 의지뿐이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자책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한편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책의 디테일이 세밀해야 한다. “난 왜 이렇게 못날까””가 아니라 “난 왜 캐릭터를 잘못 잡았을까”” 혹은 “난 왜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이게 맞는 자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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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이번과 반대로 내가 면접 심사위원이었던 경험을 다룬다. 난 직장생활 10여년 동안 대략 300명이 넘는 지원자를 면접 보았다. 원했던 경험은 아니지만 역시나 통찰이 있다. 300번의 면접 심사 후 난 면접이란 시스템을 완전히 불신하게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