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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Nov 09. 2018

면접 심사관이 되었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면접 이야기 에피소드 2 : 내가 심사하는 면접

*이 글은 내가 직접 참여한 면접과 친구에게 들은 면접을 합쳐 각색한 가상의 이야기다. 어디부터 허구고 어디서부터가 사실인지는 사정 상 말할 수 없다. 내가 아직 회사원이니 양해바란다.


직장인이 된 후 몇 번의 면접에 심사관으로 참여했다. 입사 면접부터 대외활동 면접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최근 12년간 면접 시스템은 눈에 띌 정도로 발전했다. 과거의 주먹구구 면접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장치가 하나둘 도입됐다. 도전성, 주체성, 성실성, 친화성, 전문성 등 평가 항목이 미리 정해져 있으며, 심사관들은 자기소개서와 현장 대화를 토대로 항목마다 점수를 매긴다. ‘객관적인 점수’를 바탕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그렇다.


“이 친구 너무 절실해 보이지 않나?” “맞아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우리 회사 정말 들어오고 싶나봐요.” 직원을 뽑는 모 면접 현장, 심사관 두 명이 지원자 A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A씨는 우리 회사 지원만 벌써 두 번째다. 지난해 떨어지고 좌절했으나 1년 동안 다시 준비했다는 A씨는 마지막으로 할 말 있냐는 심사관들 질문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고,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눈물 한두 방울 또그르르 흘러내렸다. 이런 말이 A씨의 진실성을 해친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그림처럼 완벽한 눈물’이었다. 심금이 울려진 다른 심사관들에게 난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잘 못 했죠.” A씨는 말을 잘 못 했다.


“긴장한 거겠지. 사람이 긴장하면 말 잘 못할 수 있어.” “말 잘하는 게 다는 아니니까.” 너 이 놈 상사 말이라고 맞장구치지마. 그리고 면접은 원래 말로 하는 거잖아. 말 못 해도 점수 줄 거면 면접은 왜 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평가서 항목에 ‘절실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에 뽑는 분야는 꼼꼼하고 듬직한 성격이 어울리는 직무다. 모든 면에서 괜찮은 다른 지원자가 있었기에 혼자 우겨 A가 아닌 다른 사람이 뽑히게 되었다.


시스템이 있다 해도 점수를 매기는 건 사람이다. 눈앞에 보이는 ‘느낌’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냉랭한 심사관이 들어간다손 치더라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평가 항목 자체가 점수화하기가 어려운 것들 뿐인 탓이다. ‘도전정신’을 점수로 매기라니. 여기서 글 읽는 당신에게 문제를 하나 던지겠다. 당신이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 한 명을 떠올려 보자. 잠시 시간을 주겠다 (...) 떠올렸는지.


함께 보낸 시간도 꽤 길고, 속마음도 터놓는 친한 사이겠지. 자! 그럼 그 사람의 도전정신이 ABCD 점수를 말해보도록 하자. 친구의 도전정신은 B인가? 혹은 A? 정확해야 한다. A냐 B냐 에 따라 당락이 나뉜다. 그러면 이제 친화력이다. 친구의 친화력은 몇 점인가? 열정은 몇 점? “이걸 내가 어떻게 메겨” 싶을 테다. 심사관도 마찬가지다. 몇 년씩 알고 지낸 친구 점수도 힘든데 만난지 10분 된 지원자의 친화력에 점수를 매기는 것.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여기 또 다른 사례, 모 기업의 입사 면접 현장. 지원자들은 답변을 끝내고 귀가했고, 심사관들은 합격자 선정을 위해 남아있다. 메긴 점수를 합산하되 점수로만 칼같이 끊진 않는다(아마 다른 면접도 대부분 그럴 것이다). 총점이 너무 낮은 집단은 빼고, 근소한 차이의 상위 득점자들을 테이블에 꺼내놓고 토론을 펼친다. 이번 면접에선 상위 랭크 6명이 합격선에 들어왔고 이 중 뽑히는 사람은 4명이다. 후보 중 하나가 B였다.


“지원자 B, 이 친구는 성실하고 주체성도 있어 보이네.” 심사관으로 참여한 선배의 말을 듣고 난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말하는 게 빠릿빠릿하진 않지만...뭐랄까 진실성이 있어 보여. 고향도 목포더라고.” “목포?” “목포에서 서울로 대학 왔잖아. 시골에서 상경한 친구들이 근성 같은 게 있지.” “그래요?” “아버지도 택시 운전하시더라고.” “음...” “서울시립대에 입학한 것도 그런 이유겠지.” 서울시립대는 학비가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실력은 있으나 등록금이 부담되는 학생들이 많이 입학했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지원자 B는 영화 써니의 주인공, 배우 심은경씨를 닮았다. 배우 역할론에 대해 뭘 알겠냐만 심은경씨는 왠지 진실하고 씩씩한 캐릭터에 어울린다.


선배에 따르면 지원자 B는 시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억척스럽지만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날카로운 창의성은 없으나 근성과 도전정신, 열정을 골고루 가진 인재였다. “나도 같은 의견” 다른 심사관들도 끄덕였다. 나도 끄덕이긴 했는데... ‘(속으로) B가 어머니가 노래방 주인이신 건 자기소개서에 안 적어놓았구나’ 그렇다 난 개인적으로 B와 아는 사이였다.


내가 아는 한에서 B는 그렇게 가난하진 않다. 아주 부자는 아닌데, 그렇다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건 아니다. (내가 보기엔)잘 먹고 잘 사는 것 같더라. 목포란 단어가 주는 스테레오 타입, 그러니까 거칠거나 순박한 이미지에 부합하는 캐릭터도 아니다. 굳이 따지면 B는 ‘게으른 천재과’다. 게으른 천성 탓에 자신의 빛나는 부분을 못 살리는 스타일이다(본인이 만약 이 글을 본다면 인정할 것이다). 난 다른 심사관들에게 말했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사람들의 오해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B는 숨은 능력이 굉장해 직무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믿었기에 거짓 답변을 하고 말았다.


난 면접이란 단계가 필요는 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매우매우매우 이상한 사람도 있으니까. 힘들 때 어떻게 극복했냐는 뻔한 면접 질문에 신을 만났다고 답한 지원자가 있었다. 마음으로 만났다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느 산 정상 부근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기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아주 이상한 사람을 걸러내는 장치 이외에 면접이란 제도는 꽝이라 생각한다. 혀 잘 놀리고 이미지 메이킹 좋은 사람만 유리한 시스템이다. 사람 속에 든 성실함, 진실성, 도전정신은 30분짜리 면접으로 절대로 알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길지 않은 39년 인생에 깨달은 유일한 원리가 있다면 이것이다. ‘첫인상은 믿지 말자. 가능하면 두 번째 인상도 믿지 말고.’ 대충 8번째 인상부터 믿기 시작하면 조금이나마 사실에 근접해진다.


카페에서 소개팅으로 처음 만나는 커플은 신기하게 금방 알아채게 된다. “저 사람들 소개팅한다. 크크크” 어색한 칭찬과 오글거리는 대화, 세팅된 제스처. 인위적인 아우라가 두 사람 주변을 흐르고 있다. 면접 현장에서도 인위적 아우라를 느낀다. 사람과 사람이 말을 나누지만 그 백그라운드엔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점수를 따야 하는 냉혹함이 있다. 웃음 하나 농담 하나 인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인위적 고통을 견디어 내야 할 면접 지원자들에게 응원을 건넨다. 심사관들이 진짜 당신 자신을 평가할 수 있다고는 믿지 마시길. 입에 발린 위로가 아닌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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