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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Mar 12. 2018

호구롭고 따뜻하다. 댕댕이 파라다이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이 말을 만고의 진리라고 생각해왔다. 16년 전 대학교 2학년 여름, 개 세 마리가 내 자취방을 개판으로 만들던 상황에선 더욱더. “처음 보는 이 신발은 제가 좀 물고 갈게염.” “햄 꺼내줘요! 햄! 햄! !햄!” 그나마 내 개는 한 마리뿐, 나머진 동네 개들. 그렇다. 이 글은 댕댕이 3마리에게 농락당한 본격 호구 사연.


머물던 대학가 자취방은 반지하였다. 낮에는 어둑어둑 안락하고, 일 년 사시사철 습기가 충만했다. 가끔 마주치는 주인아주머닌 늘 1층이라 우기면서도, 아주 작은 창이 위쪽에 걸린 듯 달린 벽 쪽으론 애써 시선을 피하셨다. 살면서 불운한 여름이 많았으나 그해 여름은 유독 지독했다. 습한 날씨가 이어졌고, 두 번째 학사 경고를 받았다. 부모님은 이혼했는데, “전 괜찮아요”라고 쿨하게 말했으나 그럴 리가 없었다. 하루하루 왜 살아내야 하는지를 아침마다 설득하느라 애먹던 시절이었다. 


우울하게 집에 콕 박힌 히키코모리 모드가 시작되려는 차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건이 터졌다. 어릴 적부터 키우다가 고향 집에 두고 온 우리 개를 부모님이 못 키운다고 선언하신 것. 이유는 가물가물한데, 돌이켜 보면 직장 나가는 아버지는 개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고, 어머니는 상실감에 무기력해졌던 것 같다. 


‘포미’란 이름의 하얀 푸들은 당시 나이가 이미 17살로 뭐랄까? 개냥이의 반대 버전이라고 해야 하나. 고양이 같은 성격의 개였다. 무척 예민하고, 주인보다 똑똑했다는 말이다. 초딩 시절 내가 소 갈비뼈를 왼손 오른손 숨기며 줄까 말까 장난치면, “아니, 이 바보가 또!” 애석한 표정으로 무안을 줬다. 어머니에게 혼나 훌쩍훌쩍 울 땐 자기 턱을 내 무릎에 대고 몇 시간이고 온기를 나눠줬다. “작은 주인, 눈에서 물이 떨어지는 걸 보니 기분이 별로인가 보구나.” 그러니 어쩌겠는가. 서울로 데려오는 수밖에. 


예민한 포미는 내 방에서 대소변을 전혀 보지 않았기에 하는 수 없이 매일 주택가를 함께 산책했다. 어느 날 인근 마당 있는 주택에서 키우는 ‘깡구’라는 소심한 치와와 믹스견이 곁에 따라붙었다. 마당에 있는 깡구 밥그릇을 주변 큰 개들이 뺏어 먹어 굶주리는 꼴을 본 터라 몇 번 간식을 줬더니, 언제부턴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간식을 괜히 줬어.” 후회해도 소용없이 깡구는 내 손에 자기 몸을 갖다 대기 위해 부단히 귀찮게 굴었다. 등을 곧추세워 내 손 쪽으로 가까이 붙이는 등.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깡구가 귀신같이 알고 마중 나와 있었다. 무시하면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망부석이 돼 있기에 결국 뒤돌아가 등을 톡톡 쳐줬다. 


허무주의 자취생답게 매일 저녁을 집 앞 편의점에서 때웠다. 깡구와 동료가 된 지 한 달 정도 됐을 무렵 편의점 아주머니가 급한 기색으로 작은 갈색 개 한 마리를 안고 왔다. 처음 보는 개인데 오토바이에 치였다고 했다. 아주머닌 밤에도 여는 동물병원을 부산히 찾아가셨다. 두어 주 후 그 개를 편의점에서 다시 만났다. 건강해진 걸 너머 필요 이상으로 흥에 넘쳐 있었다. 편의점 아주머니가 키워주기로 한 사실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온종일 싱글벙글 뱅글뱅글. 내 얼굴을 마주치자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우리 친구 할까요?” 아니, 그러지 말기로 하자. “지금 드시고 있는 것은 뭐죠? 저도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내 햄이 사라졌다. “이거 맛있네요. 벌써 가시나요?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지닌 ‘연희마트(이름을 안 적이 없어 편의점 이름을 따다 붙였다)’는 뒷다리를 절면서도 도망치는 나를 따라 내 자취방까지 골인했다.

그 후의 일상을 묘사하자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마중 나온 깡구가 따라온다. 자취하는 건물 앞에 당도하면 반대편 편의점에서 연희마트가 총알처럼 달려온다. 문을 열면 모두 함께 내 방으로. 깡구는 침대로 풍덩 뛰어들고, 연희마트는 부엌을 뒤진다. 포미는 질색하는 내 품에 뛰어든다.  


염세주의 철학자 니체 탐독 계획은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 깡구야 그만!” 양말을 물고 흔들어대는 개들 덕에 수포로 돌아갔다(니체를 읽었으면 더 우울해질 뻔했지만). TV를 보는 밤이면 네 마리가 좌식 소파에 한데 뭉쳐 있다. 멍멍 댕댕 왈왈. “밤이니까 조용해야 해.” 낑낑 꽁꽁 오물오물. 예비 히키코모리의 자취방은 소란스러운 개판이 되고 말았다. 호구롭고 따뜻하게. 


P.S. 문득 떠오른 회원님의 추억

이정섭님, 시간이 흘러도 소중한 댕댕이들과 함께한 추억은 여기에 남아 회원님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16년 전 추억을 확인해보세요. 


#주간개복치 #에세이 #댕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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