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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고 도전기 1

[주저리주저리 18] 라떼는 말이야… | 20200709

과외를 하든 학원에서 수업하든 강사로서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얼마나 많은 ‘썰’을 보유하고 있느냐이다. 고3 수업을 기준으로 수능 및 EBS 지문 4~6개를 쉬지 않고 달리게 되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수업을 듣는 사람이나 모두가 고역이다. 그래서 적재적소의 순간에 뜬금없는 듯한 썰을 풀면서 절묘하게 수업으로 다시 이끌고 가는 게 좋은 강사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도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썰을 항상 수업용으로 준비해놓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외고 준비 썰’이다. 특히 평촌 학원가에서 수업할 때 내가 중3 때 평촌 학원가의 학원에 다녔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학생들이 거의 뭐 조상님을 바라보는 듯’ 하는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알고 보면 나랑 별로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났음에도…). 사실 이 에피소드를 생각한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긴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라떼는 이랬었다’ 정도의 썰만 풀어보고자 한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는 바야흐로 (?) 2008년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외고를 진학하는데 가장 중요한 과목은 수학이었다. 당시에는 창의 수학이니 뭐니 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가 없긴 한데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보는 국어, 수학, 영어 시험 중 제일 어렵고 변별력을 가졌던 과목이 그나마 국어도 아니고 ‘창의 수학’이었다. 그래서 수학을 영어만큼 잘하지 못했던 나에게 외고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꿈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신통방통하게도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2008년에 입학 전형이 바뀌면서 (예나 지금이나 입시 전형이 휙휙 바뀌는 건 변함없는 듯하다) 국어와 영어만 보는 것으로 시험과목이 바뀌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라는 허황한 착각과 함께 기독교 재단의 외고라고 엄마가 보내고 싶어 하던 명지 외고 진학을 (여기가 나 때부터 경기 외고로 바뀌었던가…?) 막연하게 꿈꾸게 됐다. 사실 그 당시에 명지 외고에서는 입학 설명회 같은 것을 정기적으로 개최 하여서 나도 한번 가봤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나의 소망은 외고에 가서 밴드부를 하는 것이었다 ㅋㅋ)


영어공부를 당시에는 윤선생 영어를 통해서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는 튼튼영어를 했던 것 같고 석수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5학년 때부터는 윤선생 영어로 갈아탔던 거로 기억을 하는데 당시의 윤선생 영어 커리큘럼 상으로는 고등학교 3학년 수준까지 끝을 냈었던 것 같다. 실제 당시 윤선생 영어의 홍보 문구도 “중학교 때 고등학교 영어과정을 끝내드립니다” 이런 식이었으니 나는 윤선생 영어의 커리큘럼을 나름 잘 따라갔던 것 같다 (굳이 이 부분을 언급한 이유는 이후에 밝혀질 예정).


또한, 그 당시에는 몇몇 기관에서 전국 단위로 외고 입시생을 대상으로 모의고사를 실시했었다. 나도 그래서 소년조선일보인가에서 시행한 전국 단위 모의고사를 두 번 정도 봤던 것 같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신 국어가 아닌 외고 입시를 위한 국어 시험을 봤는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식의 국어 문제는 처음이라고 느꼈었던 것 같다.


영어라고 해서 딱히 잘 봤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당장 문제는 국어라고 판단을 내가 했는지 엄마가 했는지 이 역시도 기억이 부정확하지만 (내일 아침에 엄마에게 여쭤보는 거로) 여름 방학 때 외고 입시를 대비할 국어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집에서 먼 곳도 아니고 오히려 근처였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던 학원을, 그것도 전국적으로 나름 유명하다는 평촌 학원가의 대형학원 중 하나인 “필탑학원” 단과를 다니게 되었다 (학원 애들한테 평촌 학원가 필탑이랑 영재사관 경쟁하던 시절 얘기하니깐 아무도 모르더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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