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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고 도전기 2

[주저리주저리 19] 라떼는 말이야… | 20200713

집에서 먼 곳도 아니고 오히려 근처였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던 학원을, 그것도 전국적으로 나름 유명하다는 평촌 학원가의 대형학원 중 하나인 “필탑학원” 국어 단과를 다니게 되었다.


과외는 받아 봤어도 학원에 다닌 건 처음이기도 했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20~30분 거리 정도 되는 나름 먼 곳을 간다는 게 살짝 긴장되기도 하면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수업을 듣는 게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고, 단과반에 수업을 들어오셨던 두 선생님의 강의력이 좋았다. 매주 주말마다 학원을 갔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보통은 두 타임 수업을 듣고, 가끔 학원 자체 모의고사를 봤던 거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때 봤던 모의고사 중 하나를 되게 잘 봤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영업을 위해서 (?) 그랬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시 선생님 중 한 분이 엄마에게 종합반을 보내라고 연락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9월 초에 중간고사를 마치자마자 종합반을 다니게 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 고입에 반영이 되었고, 그래서 원활한 고입 전형 진행을 위해서 3학년만 중간고사를 9월 초·중순에 따로 일찍 봤었다).


이때부터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세계가 펼쳐졌다. 당시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대략 오후 4시 정도가 되었는데, 옷을 갈아입고 이른 저녁을 먹고 잠시 쉬다가 오후 5시에 아파트 단지 사거리로 나가서 학원 버스를 탔다. 우리 집이 학원에서는 거의 맨 끝자락에 있던 곳이라 학원에 도착하면 거의 5시 50분 정도가 되었다. 학원 반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금방 6시가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학원의 스케쥴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6시부터 대략 1시간 정도의 1교시를 마치고 외고 입시가 두 달 밖에 안 남은 상황이어서 그랬는지 7시부터는 항상 국어와 영어 모의고사를 번갈아 봤었다.


학원을 처음 갔을 때 충격을 받은 것은 당시 쓰던 교재가 모두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대비 교재였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인데 무슨 고등학교 3학년 교재를 푸는 거지?”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다. 그동안은 영어를 어떻게 공부했냐는 처음 본 선생님의 질문에 윤선생 영어로 공부했다고 대답했더니 되게 황당하면서도 비웃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이 괜히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때가 9월이다 보니 학원에서는 EBS Final 언어와 외국어를 모의고사용 교재로 썼었다 (2013년 이전까지는 국어, 수학, 영어가 아니고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이었다…. 그리고 2008년 당시에는 수능완성이라는 교재가 없었고 EBS Final이 필수 교재 중 하나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수능완성의 위상이긴 하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같은 반 아이들의 실력이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윤선생 영어’만 해오던 나로서 고3 언어, 외국어 문제가 신세계 같았는데 우리 반 애들은 90은 기본이요, 만점도 상당수 나왔으며 사실상 한, 두 개 밖에 안 틀리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단어 시험도 Hackers TOEFL Vocabulary로 (소위, ‘초록이’라고 불리는 그 책) 봤었는데, 모르는 단어가 거의 전부였던 나와 정반대로 대부분을 외우고 있던 다른 애들에게 기가 죽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럴 만도 했던 게 당시 학원의 반은 여섯 개로 나뉘어 있었고 철저히 성적순대로 1반부터 6반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데 단과반에서 나를 종합반으로 권유했던 선생님이 1반 담임이셨고, 아까 언급했던 ‘뽀록’으로 잘 본 모의고사 점수 때문이신지 나를 본인 반으로 데려가셨기 때문에 우리 반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이었음에도 고3 문제를 쓱쓱 잘 풀어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학원에 다니고 몇 주가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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