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연애와 결혼에 어떤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아내를 만난 지 이제 4년, 결혼 3년 차가 되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아내와의 연애와 결혼을 거치며 한 사람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는 일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앞으로도 많은 도전이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부디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란다:)
필자의 결혼 생활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데이터를 항상 가까이 해온 덕분에 연애와 결혼 과정에서도 데이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이 어떤 분들에게는 교훈(혹은 타산지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여기서는 데이터 활용을 중심으로 필자의 사랑(연애+결혼)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결혼이 인생 일대의 결정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필자의 경우 결혼 이후에야 그 복합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필자가 생각하는 결혼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우선 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많은 자료가 뒷받침하듯 결혼한 부부의 사랑은 이제 갓 만나 열애에 빠진 커플의 사랑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띤다. 그리고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혼이 갖는 다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결혼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삶의 동반자를 얻는 것이다.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고, 두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같이 내리고, 취미 및 인간관계를 함께하게 된다. 여기서 배우자의 역할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동료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로 보완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자의 역할은 동반자에 그치지 않는다. 결혼한 부부는 같이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에도 같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니, 배우자는 일종의 ‘삶의 환경’이 된다. 즉, 거주 및 생활환경이 인간의 건강 및 행복도에 큰 영향을 미치듯 배우자라는 존재는 함께 무엇을 하던 하지 않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필자와 같이 미국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배우자의 중요성은 배가된다. 업무 시간이 규칙적이라 여가 시간이 많고, 인간관계가 단순하여 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특성상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고, 두 사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범위도 넒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서로 사랑하고,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서로의 성장과 행복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아내는 필자의 가장 큰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이며, 아내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필자에게 평안함과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이 부분은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다.)
필자의 결혼 생활은 그 만족감만큼이나 많은 결실도 가져다주었다. 그동안 우리 두 사람은 각자 일을 하면서 자기 분야에서 책을 한 권씩 출간했으며 (헬로 데이터 과학 / 글로벌 소프트웨어) ‘창발'이라는 시애틀의 한인 IT 종사자 모임을 만들어 150명 규모의 컨퍼런스를 치렀다. 결혼한 지 약 2년 반이 되었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순전히 행운이었다면 이렇게 글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필자가 어떻게 아내와의 결혼에 골인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비교적 순조로운 결혼 생활을 꾸려오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데이터 과학의 관점에서 연애는 제한된 횟수의 만남(데이트)을 통해 결혼 상대자로서의 상대방을 평가하는 측정 문제다. 측정 문제로서의 연애는 상당히 어려운 편에 속하는데, 1) 측정의 시간적 정신적 금전적 비용이 크고, 2) 측정 대상이 되는 상대방이 인간이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치를 얻기 힘들며, 3) 그 중요성만큼 감정을 배제한 정확한 측정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을 간과한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결혼을 결정하거나, 배우자 자체보다는 그 배경이나 지위 등을 이유로 결혼을 결정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는 불충분한 데이터에 근거해 결론을 내리거나, 아예 제대로 된 측정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다. 하지만 이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는 데이트 문화에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흔히 말하는 ‘데이트’의 정의는 ‘남녀가 좋은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장이나 놀이동산과 같은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만나서 놀고, 고급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데이트의 정석처럼 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서로의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서로에 대해 좋은 인상을 키우는 데에는 이런 데이트가 적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데이트는 실제 결혼한 두 사람이 꾸려가야 하는 일상과는 차이가 있다. 특별히 즐겁거나 흥미롭지도 않고, 종종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 보통의 생활 말이다. 서로에게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줄 수 있는 데이트와는 달리 일상에서는 서로의 다양한 면모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일상을 함께해야 할 상대를 일상과는 유리된 ‘데이트’를 통해 평가한다면 이는 통계학에서 말하는 편향된(biased) 측정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의사결정을 내리기에 앞서서 한 인간으로서 데이트 상대의 진면목을 확인해야 한다. 서로의 불완전한 모습까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비로소 배우자로서 일상을 함께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피곤하고 짜증이 났을 때 상대의 모습을 견딜 수 있는지, 혹은 내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을 때 상대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아내와의 데이트에서 늘 잘 정돈되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또한 아내와 시간을 보낼 때 일반적인 데이트 이외에도, 계획을 세워 일을 한다던가 육체적으로 힘든 산행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가급적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그런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꾸준히 관찰했다. 데이트라는 측정 과정에서 서로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 끌어내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렇게 고생(?)시킨 게 미안해서 결혼 후에는 더 잘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김어준 씨의 책에서도 읽은 기억이 난다. ‘건투를 빈다’라는 책에서 그는 결혼을 생각하는 커플에게 유럽 여행을 가보라고 권한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열몇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녹초가 된 상태로 낯선 나라에 방금 떨어진 두 사람이 제정신일 리 없다. 생전 처음 보는 기차 시간표를 헷갈려 잘못 탑승하는 사고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서로를 대하고, 어떻게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를 경험해 보아야 비로소 서로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례의 요점이다. 이 글을 읽고 공감하며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주의 깊은 측정 과정을 거쳐 결혼에 골인한 경우에도 행복한 결혼 생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선택했다고 해도 결혼에는 다양한 변수와 위험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건강 혹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난 후에는 권태기가 올 수도 있다. 우리 두 사람은 결혼 초반부터 이런 어려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가급적 많은 취미와 활동을 서로 공유한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정기적으로 서로의 삶을 돌아보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원착을 지켜나가는 데에는 데이터 활용이 큰 도움을 주었다. 이제 각각을 상세히 알아보자.
우선 가급적 많은 취미와 활동을 공유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삶의 최대한을 함께하고, 이를 통해 서로를 발견하고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게 해준다. 필자는 이를 위해 아내에게 결혼 전부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인 테니스를 가르쳤고, 시애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인 산행에도 아내를 가급적 동반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필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와 함께 주말에는 함께 예배를 본다. 앞서 밝힌 저서 집필과 ‘창발’ 커뮤니티도 우리 두 사람의 공동 프로젝트였다.
물론 이렇게 많은 것을 공유하는 데에는 노력이 따르며,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필자의 제안에 잘 따라주는 편이지만, 가끔은 추운 날씨에 테니스를 치자고 하거나, 험한 산행에 함께하자는 필자의 제안에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책 쓰기 역시 보람은 있었지만, 거의 1년 남짓의 집필 기간 동안 두 사람의 자유시간을 통째로 바치는 상당한 희생의 결과였다. 창발 모임의 운영을 놓고 두 사람의 의견이 달라 티격태격한 적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노력은 우리 두 사람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주중에는 같이 테니스를 치고 주말에는 같이 산행을 하는 등 생활 리듬을 맞추다 보니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만큼 추억과 이야깃거리도 많이 쌓였다. 직장 생활과 책 쓰기를 병행하면서 두 사람이 웬만큼 어려운 일은 이겨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창발 모임을 운영하면서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각자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연인이나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는 두 사람이라면 당연히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을 평생 간직할 수 있을까? 약 10년 동안 행복도, 건강 등 다양한 대상을 데이터화 해온 필자는 이런 ‘마음’도 측정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 자체는 몰라도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은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이유에서 필자가 아내와 결혼 초에 고안한 것이 ‘HeartBank (마음은행)’이라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였지만, 사실은 뭔가 고마운 일을 해준 상대에게 하트(Heart)를 하나씩 수여하고, 이를 기록하는 엑셀 스프레드시트다. 예컨대 이번 주에 아내가 바쁜 나 대신 관청 심부름을 해 주었다면 내가 아내에게 하트를 하나 주는 것이다.
이렇게 모은 하트를 주별, 월별로 모아서 통계를 내면 그것이 바로 ‘감사함’의 척도가 된다. 아래 표는 실제 우리 부부가 2015년 1월에 기록한 마음은행의 일부를 각색한 것이다. 표를 보면 내가 아내에게 고마운 일이 더 많았던 한 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연말 통계를 보아도 아내가 하트를 36개, 내가 28개 받았으니 연간 추세도 비슷하다.
왜 서운한 일은 빼놓고 고마운 일만 기록할까? 우리 두 사람이 마음은행을 이런 식으로 작성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상대방에게 서운한 점이 아닌 고마운 점을 기록하는 것은 서운한 점을 들추기보다는 자신이 고맙게 느끼는 상대의 행동을 보상한다는 취지다. 또한, 하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상대의 부탁이 아닌 자발적인 일로 제한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행이 보상받도록 한다.
이처럼 마음은행을 기록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마운 일을 항상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은행의 통계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업데이트하면서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더 잘 해줄 수 있는지 떠올리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의미 있는 현상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꾸준히 확인하는 것만으로 얻은 성과다.
사람이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심장이 일정한 리듬으로 혈액에 영양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도 이처럼 정기적으로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문제가 있다면 고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다양한 활동을 공유하는 우리 두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리 부부는 그래서 주말에 한 시간을 정해 FamilyTime이라는 이름의 미팅을 갖는다. FamilyTime동안에는 우선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는데, 서로 서운했던 일도 이야기하고 서로 고마웠던 일도 나누며 마음은행도 이때 업데이트한다. 종종 FitBit이나 Mint에 수치로 기록된 우리 두 사람의 건강이나 재정 상태를 점검하기도 하니, 여기서도 데이터가 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돌아본 이후에는 다음 한 주간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일정과 각자 할 일을 결정한다.
주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부 사이에 무슨 미팅이냐며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이처럼 공식적이며 정기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갖는 것은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우선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여러 가지 일이 정기적으로 논의되고 문서화된다. 또한 부부간의 대화를 공식화/정례화 함으로써 평소에 꺼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고, 평소 상대에게 서운한 점이 있을 때 그 자리에서 꺼내는 대신 ‘이번 주 미팅에서 이야기하자’고 생각하게 된다. 자칫 감정싸움이 될 수 있는 사안도 미팅에서 허심탄회하게 풀어낸 경우가 꽤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데이터가 연애와 결혼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다루었다. 연애를 측정 문제로 보고 편향을 최소화하려는 시도, 그리고 결혼 생활의 건강성을 데이터 화하려는 필자의 노력이 여러분에게 데이터 활용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처럼 복잡한 수식이나 프로그래밍 없이도 데이터를 통해 의사 결정에 있어서의 편향을 극복하고, 기억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데이터 기반의 접근 방법을 적용하는데는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배우자끼리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도 있으며, 어떤 부부들은 관계 횟수를 기록하거나, 부부싸움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하기도 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데이터의 가능성은 늘어만 가고 있지만, 이중 어떤 방법이 자신에게 적합할 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이 글을 마치며, 그동안 필자의 갖가지 실험과 기행(?)을 잘 견뎌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이 카툰을 보면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아내도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