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부터 100일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데이터에서 찾는 육아의 해답
요즘 한국에서는 저출산이 한창 사회 문제이기도 하지만, 예전부터 나는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본인의 삶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꽃 피우는데도 짧은 게 인생인데 왜 굳이 아이를 가져야 할까? 그럴 에너지가 있으면 스스로에게 투자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주변에서 육아를 도와줄 사람도 찾기 힘들고, 사회적인 지원도 미미한 미국에 거주하는 상황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설득으로 아이를 갖기로 결심을 했다. 평소에 이해심이 많고 나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원해주는 아내의 소망이라면 한번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아이를 갖는 것이 일생일대의 헌신과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힘을 모아 최대한 독립적으로 키울 수 있다면 삶의 다른 부분을 크게 희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어쨌든 많이 생각했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1년 뒤 아내와 나는 3개월 된 딸 애린(Leona) 이를 갖게 되었고, 하루하루 건강하게 자라는 애린이를 보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누누이 들어왔던 육아의 어려움은 모두 사실이었지만, 아이와의 첫 만남부터 최근 방긋방긋 웃기 시작한 아이의 미소를 보는 것까지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육아의 어려움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기쁨은 막상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아기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흡사 우주에서 떠돌다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 분만실에서 빨간 피부에 말도 통하지 않고 틈만 나면 빽빽 우는 아기를 보면서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로서 갓 태어난 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기에, 아내와 나는 아이가 온몸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해독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가 되는 것은 우리와 전혀 다른 습성과 소통방식을 가진 존재인 아기에 대해 이해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물론 시중에는 다양한 육아 관련 참고자료가 있지만, 아이의 개성과 그때그때 주어지는 새로운 상항에 맞추어 어떤 지식을 적용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인간'으로 키워내야 하는 초보 부모들이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해보다가 멘붕(?)에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첫아기를 키우는 필자 부부도 초보 부모가 겪는 갖가지 통과의례를 겪고 있다. 갑자기 배탈이 난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보기도 하고, 큰맘 먹고 나들이에 나선 서점에서 기저귀에 큰 일(?)을 치른 아기가 보채는 바람에 주변에 'I'm sorry'를 연발하면서 화장실을 찾아야 했던 경험도 있다. 3.8킬로의 건강한 딸을 출산한 우리 부부가 겪는 어려움이 이 정도인데,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부모로서 얼마나 힘들까 상상하기도 힘들다.
평소 데이터 애호가, 전도사를 자처해온 필자가 이런 새로운 도전에 맞서는 방법은 역시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이다. 아이가 비록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지만, 언제 어떻게 먹고, 자고, 용변을 보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아이의 건강과 성장 상태를 이해하고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시중에는 다양한 육아 데이터 기록 및 분석 앱이 나와있다. 필자가 그중 선택한 것은 Sprout이라는 앱으로, 아이의 식사, 수면, 활동 내역은 물론, 성장 및 발달 상황까지 기록할 수 있는 앱이다. Baby Tracker라는 앱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데이터 입력 및 출력의 (CSV 형태로 다운로드하기) 용이성 면에서 Sprout만 한 앱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래는 Sprout의 데이터 입력 인터페이스로, 아이를 먹이고 재우다 보면 바로 그 시점에 데이터를 데이터를 입력하기가 쉽지 않은데, 과거의 데이터를 입력하고, 또 입력된 내용을 수정하기가 용이하게 되어 있다. 육아의 특성상 데이터를 즉각 입력하기가 어렵고 (아이가 빽빽 우는데 기록할 정신이 있겠는가), 필자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변 데이터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런 작은 디테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어쨌든 육아 관련 데이터는 일일이 입력해야 하니 꼭 필요한 데이터만 기록할 일이다. 필자의 경우 식습관에 형성에 치중한 처음에는 모유 및 분유 수유 데이터 위주로, 수면 교육을 시작한 두 달 반 이후에는 여기에 수면 데이터를 추가로 기록하고 있다. 대소변도 처음에는 모두 기록했으나 나중에는 대변 위주로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금은 수유 데이터만 기록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최근 일주일간의 수면/수유/배변 패턴 (왼쪽), 최근 이틀간의 수유 및 수유 상세 데이터 (가운데/오른쪽)을 보여준다. 왼쪽 차트를 좀 더 상세히 보면, 애린이는 주로 아침 8시에 기상하여 하루 6번 정도 150ml의 분유를 먹고 용변은 하루 2번, 그리고 중간에 낮잠을 서너 차례 자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앱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기능만 활용해도 아이의 생활 패턴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육아 데이터는 미시적인 의사결정 및 거시적인 습관 형성에 모두 도움이 된다. 우선 부모 입장에서는 매 순간 아이가 보내는 다양한 신호에 (주로 울음)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데, 아기가 울 때 수유 및 수면 데이터를 보면서 아기를 먹여야 할지, 재워야 할지 혹은 다른 문제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먹인 지 1시간이 지나면 재우고, 먹인 지 3-4시간이 지나면 다시 먹이는 것을 규칙으로 하고 있다.
물론 아기가 늘 규칙대로 자고 먹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데이터를 활용하면 큰 그림을 보면서 아이의 스케줄을 관리해나갈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일일 총 수유 횟수와 양을 관리하고, 저녁 8시에서 아침 7시까지는 최대한 재우려고 노력해 왔는데, 이런 노력의 결과 비교적 규칙적인 식사/수면 리듬을 만들 수 있었고, 100일이 전후부터 애린이는 밤에 10시간 이상 자는 착한(!) 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앱에서 제공하는 기능만으로 아이의 생활 리듬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는데, 앱에서 제공하는 분석 및 시각화 기능이 부족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Sprout 같은 경우는 최근 한 달 이전의 데이터에 대해서는 시각화를 제공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자가 만든 몇 가지 분석 및 시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모유 수유에서 분유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총 수유 양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데, 필자의 경우 수유 유형별 일일 총 수유 양을 시각화한 아래 차트가 도움이 되었다. 아래 차트의 X축은 날짜, Y 측은 총 수유 양(ml)을 나타내는데, 모유 수유의 경우 정확한 양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수유 시간을 수유 양으로 환산하여 표시하였다.
위 차트를 보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우선 생후 두 달 만에 모유에서 분유로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그 와중에도 총 수유량은 비교적 일정하게 (960밀리 기준)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그래프의 추세선) 흔히 모유에서 분유로 전환하면서 영양 부족 혹은 과다가 되기 쉬운데 데이터를 통해 총 수유량을 관리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일단 분유를 먹이기 시작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단위 수유 양을 늘리면서 수유 간격을 늘려줘야 하는데, 아래 플롯을 보면 분유를 먹이기 시작한 생후 2개월 이후에 (색상) 지속적으로 수유 양을 늘리면서 동시에 수유 간격을 늘렸음을 알 수 있다. 역시 데이터를 통해 수유 양 증가가 제대로 이루어졌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하루 중 수유 시각과 수유 간격의 관계를 알아보자. 필자의 경우 정확한 수유 타이밍을 맞추기보다는 적절한 수유 간격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는데, 아래 플롯에도 평균 수유 간격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애린이는 100일 전에도 보통 밤에 한 번 이상 깨지는 않았지만, 특히 100일 이후에 밤 7-8시에 수유 후 10시간 전후로 통잠을 자는 소위 '100일의 기적'이 일어나 부모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영화 Arrival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외계인이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해독하기 위해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을 통해 검증해 나간다. 초보 부모에게는 외계인과 다름없는 아이와 소통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처럼 아이의 행동과 성장에 관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이 아닐까. 필자의 경우에도 제때 적당량을 먹고 충분히 자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로서 자신감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관심이 많은 초보 부모라면, 특히 육아책에서 권하는 내용이 우리 아이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어떤 데이터라도 일단 모아서 분석해 보시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육아에 대한 해답과 함께, 데이터를 다루는 실력도 쑥쑥 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용량 데이터와 복잡한 분석기법이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절실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진짜 데이터 과학임을 명심하자.
광고: 제가 진행하는 '데이터 지능(Data Intelligence) 팟캐스트'에서 데이터 과학과 인공지능에 걸친 다양한 주제의 전문가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수유 데이터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아래 슬라이드에서 좀 더 폭넓은 육아 데이터 분석 사례를 볼 수 있다. 수유 데이터에서 수면 시간 등을 유추해낼 수 있기에, 한 가지만 선택한다면 수유 데이터를 추천하고 싶다.
https://www.slideshare.net/chillnc/datadriven-parenting-trixie-tra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