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15일 생장 출발 론세스바예스 도착
정상을 넘어서는 길이었다. 휴대전화에는 연이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나라가 변경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나의 첫 스페인 방문이었다. 비행기가 아닌 걸어서 국경을 넘어서는 일이 신기했다. 첫 스페인, 첫 걸어서 국경 넘기 였다. 그러니 날씨가 눈에 들어왔을까. 또 신나서, 신기해서 그 사이 힘듦도 잊어버리고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쉬지 말고 좀더 빨리 내려갔어야 했는데 말이다.
결국 일이 났다. 정상을 넘어서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전날 우의를 샀다. 다음 날 비가 올 줄 알고 미리 준비된 멋진 선택..!! 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우의는 동키로 보낸 배낭 속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가벼운 짐에 우의 따위는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옷은 모두 기능성 옷이라 얼추 방수는 되었지만, 결국 비는 무섭게 내려 방수고 나발이고 쫄딱 젖었다. 여튼, 잠바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쓰고 걸었다. 우산도 없기에 그냥 맞는 수 밖에 없었다. 손수건으로 목을 감싸고 최대한 체온을 뺏기지 않도록 하며 걸었다. 그러나 문제는 안개였다. 처음에는 100m 앞, 그 후에는 50m 점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길도 잘 모른다. 모르는 곳에서 길도 보이지 않으니, 불안이 올라왔다.
게다가 계속 쏟아지는 비로 내리막길은 진흙탕이 되어갔다. 이렇게 계속 걸어도 되는 걸까. 그러나 뒤로 갈 수도 없었다. 그저 앞으로만 가야 할 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몇 사람들 무리를 따라 걸었다. 그들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내가 따라다닌 무리는 아마도 단체여행객인 것 같았다. 어르신들이고 억양이 쎄서 어느 나라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스페인? 동유럽 어느 나라? 그 팀은 다행히 인솔자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쉬면 나도 쉬고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내가 자기들 때문에 못 가는 줄 알고 먼저 가라고 손짓을 보였다. 나는 손짓발짓으로 나도 쉬는 거다, 당신들을 따라 갈거다고 말했다.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그들은, 정확히는 인솔자는 내가 그 팀을 따라 오는 것을 받아주었다.
나와 미국인 할아버지 두 사람이 그 팀을 따라 피레네를 내려왔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가 보이고 정말 마음이 놓였다. 눈물이라도 쏙 빠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또 내 배낭이 무사히 도착했는가 걱정이 들었다. 인솔자 아저씨는 나에게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들어가는 작은 문을 알려주고는 늦게 내려오는 자신의 팀을 챙기러 갔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지만, 우리는 다음 날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