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16일 론세스바예스 출발 수비리 도착
그들은 바욘에서 만났던 비읍씨와 티긑씨이었다. 세상에!! 바욘에서 헤어지고 생장 순례자 사무소 앞에서 스쳐가며 인사 한 번 더 나눈 것이 전부였다. 여기서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두 번 스친 인연일 뿐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처럼 반가웠다. 그들도 숙소에서 쉬다가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마을에 맛있는 식당이 있다며 같이 식사를 했으면 하는 의사를 비쳤으나, 그때 나는 좀 지쳐있었다. 이틀 연속 긴장감 넘치게 산을 넘어 오다보니 긴장과 피로가 쌓여서 낯선 이들과의 자리가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중히 사양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 식사 꼭 하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날까지만 해도 모든 이들과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으며 인사를 했다. 헤어진 이와 다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없을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숙소에 들어가도 단체객들 사이에서 눈치보고 있을 것 같아서 최대한 밖에서 있었다. 무엇보다 주비리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는 다시 말짱하게 하늘이 게어서 밖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벤치에 앉아 발끝을 까딱이며 아는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비리 사진과 함께. 언니는 내가 이곳에 오기 직전에 서울에서 만났던 사람이다. 이전부터도 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얘기를 나에게 들려주던 사람이다. 여기 오겠다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지만 미리 연락하진 않았다. 이 길에 서기까지 나는 누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연락에 언니는 나보다 더 신나고 들떠보였다. 그리고 언니의 대부모님(가톨릭 세례 대모님 내외분)도 지금 이 길에 계시다고 했다. 일정이 비슷해지면 한 번 만나도 좋겠다 생각하며 연락을 마쳤다. 론세스바예스와는 또 다른 저녁이었다. 작은 마을이고 고즈넉했다.
뒤늦게 마을로 들어서는 다리 위로 한 가족이 나타났다. 길에서 보았던 가족이다. 젊은 부부와 등에 업은 아기와 아장아장 걷는 아기 그리고 개 한 마리. 이들이 왔을 때 주비리 모든 알베르게는 만실이었다. 아니 어쩌면 한두 자리 있었겠으나, 사람 넷 또는 개 한 마리까지 같이 묶을 숙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순례자 안내소에서 안내를 받으며 거기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다음 마을로 넘어갔다.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되는구나, 싶었다. 이 길에서는 ‘무조건’이라는 건 없다. 되는대로 하고자 하는대로, 우리는 매일 걸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