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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영 Sep 27. 2024

아침 일곱 시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다1

23년 9월 17일 수비리 출발 팜플로냐 도착

  아침 일곱 시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다. 이제 순례길 삼일 차, 피레네를 한 번에 넘을 때는 새벽 대여섯 시에 출발해야 했던 것이지만, 그 후에는 그렇게 일찍 출발할 필요는 없었다. 보통 일곱 시 전후로 출발하는 듯했다. 주비리 숙소에서는 아침도 거르고 나왔다. 단체팀과 얼른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그들과 엇비슷하게 계속 같이 걸어얄 것 같아서 부러 일찍 출발하려 한 것이다. 같은 방 사람들이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할 때 나는 공용거실에서 배낭을 정비하고 신발을 갈아 신고 있었다. 그때 단체팀을 이끄는 남자 가이드가 다가왔다. 아침 식사 안 하냐는 가벼운 대화와 함께 비타민 영양제를 하나 건네주었다. 지난밤 조금 늦게까지 시끄러웠던 단체객들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캄캄한 밤이었다. 9월이었고 아침 일곱 시인데 이렇게 캄캄하다니. 나는 스페인도 처음이고 유럽도 자주 여행하지 않아, 여행을 하더라도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나와본 적이 없어서 여기의 시간을 알지 못했다. 저녁 8시가 넘어서도 환한 하늘이 신기했고, 9월인데 아침 7시가 한밤중 같은 것에 놀랐다. 한국으로 치자면 새벽 네다섯 시쯤에 나온 것 같은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처음으로 내 배낭을 메고 걷기로 한 날이었다. 그동안 큰 산을 넘는다고, 진흙탕인 내리막 길이라고 하며 배낭은 동키를 보냈는데. 오늘은 한 번 메고 걸어보겠다 한 것이다. 

  시작은 기운찼다. 기운찬 시작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배낭을 메고 나서야 하나둘 나를 스쳐가는 이들의 배낭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배낭은 몹시 크다는 것이 점차 눈에, 어깨에, 온몸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배낭을 살 때 순례길은 계획에 있지 않았다. 퇴사 후 긴 여행을 떠날 거라 생각하고 나는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선택했다. 그리고 평소 봐 두었던 마음에 드는 브랜드의 배낭을 구입한 것이다. 이리저리 수정을 거듭하다가 여행 계획에 순례길이 포함되었다. 그때 등산화를 샀다. 새로 산 등산화는 다행히 삼 일간의 길에 큰 탈이 없었다. 오히려 미끄럼이 없는 등산화라 더욱 좋았다. 그러나 배낭은 문제였다.

  가다 쉬다 하는 횟수는 전보다 월등히 많아졌다. 게다가 도시를 지날 때, 어떤 공원을 지날 때의 끝없는 계단 등은 정말 이 배낭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꾸역꾸역 배낭을 메고 걸었다. 배낭 메는 법도 잘 몰라서 배낭에 달린 버클은 모두 채우고, 아기 업듯이 배낭을 어부바~하며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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