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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영 Sep 28. 2024

아침 일곱 시 아직 칠흑 같은 어둠이다2

23년 9월 17일 수비리 출발 팜플로냐 도착

  걷다가 어느 숲길에 자리한 작은 마을(마을이라기에는 서너 채의 주택만 있던 곳이었다.)을 지나갈 때였다. 아점을 먹고 쉬고 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지도에서는 분명 여기가 마을이라고 나와서, 바르에 가서 화장실을 가면 되겠다 했는데. 실상은 상점은 하나도 없는 주택만 몇 채 있는 곳이었다. 다음 마을까지는 조금 더 가야 했다. 이러다가는 배낭 던져두고 숲으로 들어가 노상방뇨를 해야 할 판이었다. 아직은 순례길 초반이라 그럴 자신은 없었다. (순례길에서 숲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또 실제로 이후 길에서 종종 목격했다.)

  어쩌지 하며 고민할 때였다. 분리수거 혹은 음식물쓰레기통 같은 대형 쓰레기통(아마도 마을 공동으로 모아서 한 번에 수거해 가는 통 같았다.)으로 한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이 마을 주민인 듯했다. 저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번역 어플을 켰다.

  ‘가까운 화장실을 알려주세요.’

  그녀는 뭐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 한 마디 알아들은 말 ‘까사’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흔쾌히 1층에 있는 작업실에 딸린 화장실로 안내해 주었다. 나는 배낭을 그 집 현관에 던져두고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나오니 그녀와 그녀의 남편도 나와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녀는 나에게 배낭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그녀의 손짓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미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던 터라 그녀의 말은 나에게 확정을 지어주는 것 같았다. 이제 들어갈 도시인 팜플로냐에서 나는 2박을 할 것이다. 일부러 숙소를 1인실로 잡았다. 팜플로냐에서는 데카트론에 많이들 간다고 한다. 나는 팜플로냐에 들어가면 데카트론부터 가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또 산길을 가던 중에 단체여행객을 만났다. 마음씨 좋은 분들은 지나가다 나를 알아보시고는 어젯밤에는 미안했다며 또 인사를 건넸다. 이분들이 미안해할 게 아닌데.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은 미안함을 모른다. 나는 오히려 민폐를 끼치던 그들과 내내 같이 다녀야 할 분들이 조금 안쓰러워졌다. 그러던 중 단체팀 여자 가이드도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혼자서 여기 오다니 멋지다고 말했다. 짧은 대화가 오고 가고 그녀는 나에게 멋지다, 대견하다 등의 말을 연신 건네더니 갑자기 내 주머니에 10유로를 찔러 넣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손시레를 치며 다시 주려고 하니 그녀는 커피 한 잔 사주고 싶은 마음이라며, 받아달라고 했다. 아침에 남자 가이드에게 받은 영양제와 같은 미안함이 담겨 있는 현금이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더 거절하지 않고 감사하다고 하며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번에 순례길 또 올 때 또는 여행사 필요할 때 자신들 여행사에서 자기 이름 말하라고 하며 떠났다. 나는 여행사를 통해 여행할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말이라도 참 고마웠다.

  걷다가 보면 산장 같은 바르가 나온다. 그곳에서 아점을 챙겨 먹어야겠다 싶어 얼른 빈자리에 배낭을 내려두고 주문 줄을 섰다. 이곳에서는 또르띠야라는 음식을 주로 팔았다. 으깬 감자와 계란을 섞은 반죽이 기본으로 취향에 따라 햄, 시금치 등등이 들어있다. 두툼하게 구워서 바게트 빵 한 조각과 같이 주는데, 나는 또르띠야 하나 만으로도 배가 차서 바게트 빵까지는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양이 많다. 이게 맛이 삼삼해서 내 입에는 딱이었다. 또르띠야 한 조각 먹을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주문줄에는 단채팀을 또 만나서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덕분에 한 가지 좋은 팁을 얻었다. 앞에 선 아저씨들이 맥주 주문하려고 하니 가이드가 스페인에는 레몬비어가 유명하다며 그걸 먹으라고 추천하는 것이었다. 뒤에서 귀동냥으로 얻어 듣고는 나도 또르띠야 한 조각과 레몬 비어를 주문했다. 자리에 와서 첫 모금을 마시는데...!! 캬~ 청량함이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너무 시원하고 너무 맛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점심을 지나 바르에 들려서는 무조건, ‘클라라 꼰 리몬!’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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