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9월 18일 팜플로냐 연박
혼자 일어나는 아침이 어색했다. 팜플로냐에서 이틀 묶었다 갈 생각이기에, 1인실을 예약했다. 고작 삼사 일이지만 2층 침대 빽빽한 알베르게에서 눈을 뜨다 넓은 침대에서 혼자 고즈넉하게 눈을 뜨니 어색했다. 어색함에 밤에 잠도 잘 못들 것 같았지만, 푹 잘 잤다. 며칠만에 편히 자는 것인지. 늦잠을 자려고 했지만 이미 길들여진 몸은 알람도 없이 일어났다. 오늘은 오전에 데카트론부터 가야했다.
전날 밤 근처 데카트론에 가는 교통편을 알아냈다. 숙소에서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갔다. 다행이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타국에서 버스를 타야하는 것이다. 전차, 지하철 등은 이용해봤지만 버스는 처음이었다. 다시 폭풍 검색을 했다. 스페인, 버스, 탑승, 버스비. 교통카드가 통용되는지도 몰랐고, 버스비를 어떻게 내야하는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더욱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버스에 타서 목적지를 말하면 버스 기사가 금액을 알려준다는 글을 보았다. 그것 하나만 믿고, 나는 미리 구글 지도에 내가 도착할 데카트론 근처 버스정류장을 찍어두었다.
한국에도 데카트론이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 데카트론은 꽤 유명한 창고형 스포츠 매장이다.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순례길에서 필요한 것은 데카트론 가서 사면 된다는 말만 듣고 팜플로냐 데카트론에 온 것이다. 와보니 세상에! 순례길이 아니라 캐리어를 들고 단순 여행 중이었다면, 정말 쇼핑에 눈이 돌아서 신나게 카드 긁어댈 뻔 했다. 코로나로 끊었던 수영도 괜히 다시 하고 싶어졌으며, 스쿠버다이빙용 마스크도 하나 사고 싶었고, 애꿎은 런닝 양말, 보호대, 기능성 옷, 수건 등등. 눈에 보이는 것마다 다 사고 싶었다. 그러나 꾹꾹 참으며 우선 배낭 코너로 갔다.
그렇다. 나는 배낭을 사러 온 것이다. 전날 밤 내내 생각을 했다. 내 배낭은 배낭여행용 배낭이지, 순례용 배낭은 아니었다. 크고 무거웠다. 큰 것은 괜찮았는데, 무거운 것이 문제였다. 동키를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배낭을 메고 하루 걸어보니 매일 동키를 보낼 것 같았다. 자주 동키를 보내더라도, 매일 동키로 배낭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과감히 나는 배낭을 새로 사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가 준비해간 배낭과 보조가방 모두가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맞지 않는 용이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심한 것이다.
다행히 배낭 코너에는 할인 제품이 많았다. 기능과 디자인 등을 따지면 가격이 자꾸 올라갔다. 그래서 꼭 필요한 기능이 들어간 배낭 중에서 제일 저렴한 것으로 하나 골랐다. 그리고 힙색인 보조가방도 하나 샀다. 괜히 기능성 양말도 하나 더 사고, 결제를 하니 얼추 10만원 정도 나왔다.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으니 이정도는 지불할 만 하다 하며, 데카트론에서 알차게 텍스리펀도 받아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