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9월 17일 수비리 출발 팜플로냐 도착
여기서 옆 자리에 앉은 혼자 온 한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이 길에 두 번째 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소소한 팁을 얻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아저씨는 내 배낭을 보았다. 그리고 ‘배낭이 너무 커’라고 한 소리 시작했다.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 또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썩 좋진 않았다. ‘네네, 저도 알고 있어요, 팜플로냐 가서 배낭 바꾸려고요, 너무 큰걸 샀네요, 그렇죠, 아하하하.’ 잔소리로 들렸지만 염려하는 아저씨의 마음도 알겠어서, 한 귀로 흘리며 적당히 넘어갔다. 내 배낭이 많이 크지, 배낭여행을 할 거라면 최적이었겠지만 이 길에서는 아니지.
그렇게 배낭을 어르고 달래며 이고지고 걸어서 팜플로냐에 도착했다. 앞서 만났던 루르드, 바욘, 생장, 론세스바예스, 주비리와는 다른, 도시였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있고 차들이 즐비했다. 상점과 광장, 사람들이 가득했다. 준비가 짧았던 터라 나는 순례길에 대해 길에서 만나는 마을이나 도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갑작스레 만난 도시에 나는 속으로 ‘우와’를 연발하며 예약해 둔 알베르게, 1인실 숙소로 향했다.
짐을 풀고 잠깐 쉬며 근처 데카트론 큰 매장 가는 길을 알아두고, 스페인에서 버스 타는 법도 검색하고 쉬었다. 이대로 마냥 쉴 수는 없어서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내일 답사를 위해 우체국은 어디인지, 버스 정류장은 어디인지 한 바퀴 걷고 바르가 즐비한 골목으로 갔다. 뭐라도 먹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혼자 바르에 들어가기에는 쑥스러웠다.
그래서 혼자서 여기 갈까, 저기 갈까 망설이다가 그냥 슈퍼를 찾아서 뭘 사들고 갈까 생각하며 발걸음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였다. 어느 식당 유리창 안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비읍과 티긑이었다! 세상에!! 나는 반가움에 슬며시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그들도 서로를 보며 대화를 나누다 다가오는 나를 보았다. 환히 반겨주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홀린 듯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이렇게 팜플로냐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의 가벼운 저녁식사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들은 영국인이었고, 티긑은 순례길 경험이 있고 비읍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들은 부부이고, 이 길을 마치면 곧 한국에 들어가서 한국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티긑은 한국계 영국인이다.) 우리는 바욘에서부터 만났던 인연으로 계속 만나고 있었다. 비읍과 카카오 ID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우리의 인연은 나중에 그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식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