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9월 18일 팜플로냐 연박
제일 큰 일이었던 배낭을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와 다시 짐싸기를 시작했다. 배낭뿐만 아니라 내 짐 자체가 배낭여행스러웠던 것이다. 아이패드와 충전기, 동영상 카메라까지 있었으니 말 다했지. 전자 기기들은 과감히 뺐다. 옷가지들도 다시 정리해서 순례길 전후에 입을 용인 옷들도 뺐다. 순례길용 배낭을 새로 싸고, 기존의 배낭에 남은 물건을 모두 싸서 우체국으로 갔다. 팜플로냐 우체국에서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낸 것이다. 산티아고 우체국에서 40일간 내 배낭을 맡아 줄 것이다. 동키로 매일 배낭을 보내며 지불할 돈보다 조금 더 들었지만, 하루라더 더 배낭을 메고 걸을 수 있다면 충분히 지불할 만했다. 여행을 하며 돈과 시간의 가치는 오로지 내 기준으로 정의되었고, 그것이 너무 편했다. 내가 정한 가치이기에 그 흠결도 내가 짊어지면 되는 것이니까.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제 팜플로냐에서 남은 시간은 반나절, 어디든 나가야 했다. 우선 미리 검색해둔 팜플로냐 맛집으로 갔다. 양송이 타파스와 감자튀김 타파스가 무척 맛있다는 곳이었다. 아직은 혼자 주문하는 것이 쭈뼛쭈뼛 서툴기만 했다. 종업원은 카드 달라고 했고, 내가 현금을 내미니 으쓱 하는 시늉을 했다. 뭔가 당연히 카드일 줄 알았는데 현금이었네? 싶은 제스쳐였다. 양송이와 감자튀김 타파스 그리고 화이트 와인. 야외 높은 의자가 있는 스탠딩 비슷한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아 맛있게 먹었다. 진짜 너무너무 맛있었다. 감탄을 하며, 아껴가며 먹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의 음식이 나오고서야 뭔가 나와 다르다는 걸 알았다. 같은 메뉴가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바게트가 있었고 나에게는 없었다. 순간 차별인가?! 싶었다가 이내 어차피 다 못 먹었을 것이니 괜찮다고 마음이 사그라졌다. 양송이는 조금 적은 듯 했지만 감자튀김이 크림 소스여서 포만감이 대단했다. 음식을 다 먹고 아쉬운 마음에 화이트 와인을 홀짝홀짝 아껴 마시고 있었는데, 아까 계산하던 그 종업원이 와서 내 빈 그릇을 획 거두어 가는 것이었다. 또 순간 빨리 나가라는 차별인가?! 싶었다가 그녀가 다른 손님에게도 비슷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는 성질 있는 분이네, 하며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도시라서 조금 더 긴장했던 터였는데, 이 정도는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