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9_오르니요스-카스트로헤리스
그리고 다시 길과 숲과 들을 걸었다. 파늘이 파랗게 맑았다는 것은 그늘이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쯤부터 발이 심상치 않았고 몸도 심상치 않았다. 그날 걸을 거리를 길게 잡지 않았음에도 쉬이 지쳤다. 그 길을 걸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는 계속 걷기만 했다. 바르나 나무 그늘이 없어도 적당히 쉬었어야 하는데, 나는 한 번 발동이 걸리면 계속 가는 편이라 그 길에서도 계속 걷기만 했다. 50분 수업을 하면 10분은 쉬는데, 나는 스스로 그 10분의 휴식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낡고 빈 수도원 건물이 나와서 배낭도 던져두고 신발도 벗고 쉬었다. 다 온 줄 알았던 것이다. 이게 마을 초입이겠지 했더니만, 아니었다. 그리고도 대략 몇 십 분을 더 걸어야 했다. 몸이 천근만근인데도 나는 지나간 길을 다시 돌아오기 싫어서 마을 초입에 있던 성당을 개조한 박물관 구경을 했다. 나도 참 못말린다.
그리고 작은 마을의 ‘울뜨레야’라는 이름을 가진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했다. 이 마을에서는 마을 초입에 한국식 비빔밥을 파는 알베르게가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닥 한식이 땡기지도 않았고 또 마을 초입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을 중간에 있는 그나마 평이 좋은 알베르게를 잡았다. 나 혼자라고 창가의 단층 침대를 내주었다. 혼자 2층 침대가 가득한 곳에 몇 없는 단층 침대였다. 씻고 빨래를 하고 짐을 적당히 풀고 마을을 잠시 돌아다녔다. 그러나 자꾸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 아저씨는 너무 친철하고 착하셨다. 저녁 식사에 꼭 오라고 말씀하시고 또 이곳에는 비밀 동굴이 있으니 식사 후 다 같이 구경 간다고 꼭 나오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 주인 아저씨가 식사하라고 깨웠다. 나는 비몽사몽으로 밥을 안 먹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한다고 마치 막내딸 어르듯이 나를 깨웠다. 이곳에만 있는 동굴 구경도 해야하지 않냐고 하시며. 이 알베르게를 잡은 이유 중의 하나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몇 번 어르던 아저씨는 조용히 불을 끄고 나가셨다.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