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9_오르니요스-카스트로헤리스
저무는 달을 향해 걸었다. 이른 아침 알베르게를 나서면 동이 튼 새벽 하늘이 아닌, 달이 지는 캄캄한 하늘인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절기로는 추석이 가까워오며 달은 점점 크고 밝아졌다. 그래서인지 저 멀리 지는 달을 향해 걷는 시작이었다. 해는 등뒤로 터오고 달은 눈 앞에서 지고 있다. 달이 지는 속도는 해가 뜨는 것보다 느린 듯 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차분히 가라앉는 달이, 저벅저벅 걸으면 저 끝에 걸려 질 듯이 지지 않았다. 그 풍경이 참으로 경이로워, 달이 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걸었다.
가을이라지만 시월이었고 이미 푸른 풀은 다 지고 난 풍경이었다. 어느 곳이든 이미 추수마저도 끝난 들이라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누런 마른 풀만 가득한 들판이었다. 그러나 또 기온은 아직 여름이었다. 이상고온으로 9월이 되어 시월로 넘어가는 이때까지도 낮기온이 30도를 웃돌았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졌고 무엇보다 해가 짧아졌다.
그래서 해 뜨는 시간도 점점 늦어졌다. 길을 시작한 초반만 해도 이미 환하게 동이 튼 새벽에 길을 나섰는데 이제는 캄캄한 새벽이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해는 30분, 1시간 점점 떠오르는 시간이 늦어져갔다. 해가 다 떴다 싶어 시간을 보면 어느새 꽤 걷고 난 후였다. 한국에서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새벽 운동을 여기와서 이렇게 맛보기처럼 해보고 있다.
가을이라고 느껴지는 건 비단 짧아진 해와 선선한 아침저녁만이 아니었다. 짙파란 하늘. 해가 다 뜨고 나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파란 물감을 칠해놓은 하늘 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게 될 정도로. 비유가 아니라 직유였구나.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많았고 맑은 하늘은 투명하다못해 짙파랬다.
그러다보니 아침 먹을 타이밍을 자꾸 놓쳤다. 애매하게 걷다가 만난 첫 번째 바르에서 잠시 짐을 내렸다. 멍- 하니 잠시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맞은편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부르고스에서 헤어졌던 할머니다. 그 후로 어떻게 걸으시는지는 종종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해들었다. 내가 걷던 그 시기에 유명인사(?)와 같았다. 아무래도 연세 많으신 할머니께서 시장에서 들 법한 수레로 이 먼길을 걸으시니.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며 민폐 아닌 민폐를 끼치기도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도 아시아권(아마도 대만인 듯 했다) 어느 여성분과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분은 할머니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조금 반가워하는 듯 보였으나, 미안하게도 나는 그들과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들은 이제 곧 일어날 채비였고 나는 막 도착한 때여서 자연스레 잘 걸으시라 인사를 하고 보냈다.
길은 사람을 선별하여 받지 않는다. 길을 걷는 목적, 의미, 수단 등은 모두 제각기 달랐다. 우리가 모두 제각각 다른 사람이듯이. 할머니 뿐만 아니라 가끔 ‘와, 그렇게도 걷는구나’ 싶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자칫 눈살을 찌푸리고 섣불리 평가와 비판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나라고 그런 생각이나 마음이 왜 없겠냐마는. 그 길에서는 그런 마음 보다는 이런 때에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더 생각했다. 나와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을 내 기준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순례자들의 선의를 이용하는 막무가내 같은 할머니의 모습 또는 이 길을 걷고자 하는 할머니의 열망과 그 세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이해해야지 하는 마음.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전자로 생각하기에는 가여운 마음이 앞섰고 후자로 생각하기에는 내가 나서서 그 도움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만남 이후로는 할머니를 뵙지 못했다. 소식도 간간히 들리다 끊겼다. 무사히 잘 걸으셨기를.
바르에서 나와 마을 성당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할머니와 같이 길을 나섰던 여성분이 있었다. 할머니는 차를 태워 보낸 것 같았다. 서로 살짝 눈인사를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