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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입학에 몰빵한 나의 치맛바람력

3월 1일 주제 - 입학

by 생각샘

우리 동네에 한때 이름을 날렸던 유치원이 있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인데 옛날엔 유치원 접수를 할 때 새벽부터 줄을 섰다는 둥, 유치원 앞에서 밤을 새웠다는 둥의 이야기가 엄마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내 아이가 5살이 되어 유치원에 갈 때는 선착순이 아닌 차량별 추첨제였다. 대기번호 28번. 택도 없는 순서였다. 하지만 나는 꼭 그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냉담을 하고 있었는데 성당 유치원을 보내면서 나도 다시 성당에 가고 아이에게도 종교를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며 다시 일 년을 기다렸다. 6살 반 추가모집은 전화 접수였다. 나는 신청 당일 아침 8시 50분부터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9시 정각이 되어야 신청을 받을 수 있다고 다시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8시 59분부터 전화를 했다. 제발 선생님이 전화를 안 받고 있다가 9시 정각에 받길 기도했다. 혹시나 선생님이 전화를 받으면 1분간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9시가 되길 기다려보려는 속셈이었다. 1분 동안 벨이 울렸지만 선생님은 받지 않았다. 9시 정각에 받았다. 대기 번호 1번.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감사하다고 선생님이 보시지도 못할 텐데 90도로 허리를 구부려 인사했다. 6살 반은 3명의 추가 입학생을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대기번호 2번 엄마는 주변인들한테까지 부탁해서 6대의 전화기를 돌렸다고 한다. 그런데 계속 통화중이라 아주 애가 닳았다고.


우리 아이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유치원에 입학했다.
행복한 꽃길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 만에 환상이 와장창 깨졌다. 아이는 적응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너무 무섭다며 날마다 밤마다 울었다. 그때 아이의 적응을 위해 선택한 것이 그림책이었다. 선생님과 유치원이나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에 관련된 그림책을 읽어주고 인형으로 역할극을 하며 선생님이 왜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는지, 왜 화난 것처럼 말하는지, 왜 무섭게 밥을 먹으라고 하는지 설명해줘야 했다. 그때 만났던 그림책들 중 한 권을 소개한다.


미국의 그림책 작가 피터 브라운의 <선생님은 몬스터>.

그림도 재미있고 스토리는 더 재밌다. 아이는 바비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술술 이야기했다.


“나도 무서웠어.”

“우리 선생님도 몬스터야.”

“선생님 목소리 무서워.”

“선생님이 나한테 화냈어. 친구가 악기를 세게 흔들어서 소리가 너무 커서 내가 귀를 막았는데 선생님이 나한테 화냈어. 선생님이 나한테 왜 화낸 거야?”


그림책을 통해 인형극을 하면서 아이의 상황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아이에게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아이는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바비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비의 선생님은 여전히 몬스터일까? 천만다행 우리 아이의 선생님은 몬스터에서 인간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엄마들 말만 듣고 아이가 가야 할 곳에 환상을 갖지 않는다. 그게 학교든 학원이든. 그게 어디든 결국은 나와 아이가 적응하고 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곳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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