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이 찔끔 났어.
학교 다녀와 소파에 누워 있던 딸이 나를 부른다. 화장실에 앉아 대답하니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문 앞까지 와서는
“엄마, 나 학교에서 혼났어"
하는데 잔뜩 풀이 죽어있다.
"제인이가 저 쪽에 있어서 할 말이 있어 크게 불렀는데 선생님이 시끄럽다고 혼냈어"
선생님 말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고 한다. 아이 표정을 살피며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놀랬겠다. 엄마도 그런 적 있는데. “
아이가 나를 궁금한 듯 쳐다본다.
2019년에 나는 이직을 준비 중이었다. 어깨에 늘 곰 세 마리가 앉아 있었다.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싶을 때 바꿔 볼 것은 회사뿐이었다. 종교가 있으면 좀 나을까 싶어 이직할 회사 근처 사찰에 불교대학을 등록했다.
그 선택이 어쩌다 보니 백일출가까지 이어졌다. 산속에서 조용히 명상하며 쉴 줄 알았는데 ‘일과 수행의 일치’를 모토로 하는 곳이어서 여기저기 외부 봉사도 있었다.
자기 살핌에 집중하며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밖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졌다. 일이 주어지면 나는 전쟁이 난 듯 초긴장에 초집중 상태가 되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도. 그날 내가 맡은 일은 100여 명 규모의 상차림이었다. 밥상 차리는 일을 나는 또 숨넘어가게 했다.
하필 나를 상차림 팀장으로 앉혔다. 나가야 할 상이 몇 개 인지 보며 쌓여있는 상의 개수, 다 세팅된 상이 지나갈 동선, 필요한 그릇 개수, 일이 되는 상황파악에 앞으로 남은 시간에 대한 계산으로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그러다가 늦어지겠구나 싶어 음식을 만들고 있는 방 문 바깥을 향해 무언 가를 빨리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였다.
"행자님! 왜 그렇게 큰 소리를 내요?" 경상도 쪽에서 봉사하러 오신 듯 해 보이는 보살님이 불호령을 내렸다.
백일출가 때 하는 일은 상황에 부딪힐 때 내 마음을 살피는 거다. 크게는 아침, 저녁으로 살피고 하루 중에 무슨 일을 하건 함께한 도반들과 일하며 내 마음은 어땠나를 나눴다. 습관처럼 그 순간에도 큰 소리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살펴졌다.
놀란 마음은 아주 큰 파도가 출렁이는 느낌보다 커다란 동심원이 멀리멀리 퍼져가는 느낌이었다. 보살님의 큰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상기된 얼굴, 동그랗게 모아진 입이 보였다. 그 모든 상황이 천천히 슬로비디오처럼 보였다.
아이에게 이 얘기를 들려줬다.
"엄마는 어디에서 그랬어?"
"절에서 봉사할 때. 엄마가 뭐가 필요해서 큰 소리로 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어떤 아주머니가 왜 그렇게 크게 말하냐고 소리 질러서 진짜 깜짝 놀랐었어"
아이 눈이 동그래진다.
"근데 그때 일 겪고 나서 목소리 조절하는 걸 배웠어. 학교는 배우는 곳이니까 인해도 소리 적당히 조절하는 걸 배운 거야"
아이가 표정으로 ‘오케이’하더니 돌아갔다.
아이의 뒤에 대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선생님도 교실에서 큰 소리 내지 말라는 말을 너 놀라지 않을 만큼으로 말하는 조절은 잘 못하셨네."
온갖 상황을 지나며,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하고 가슴이
벌렁거리기도 하지만 그때, 내 마음을 살필 수 있다면 상처가 남지 않더라. 우리 이런저런 일을 통해 배워야 할 것만 남기고 흘러가자꾸나, 딸아.
다음엔 어떤 일이 생길까, 늘 새롭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