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 : 백두대간 46구간 (한계령-희운각)
위치 : 강원도 양양 - 강원도 속초
날씨 : 최저 18도-최고 26도
산행거리 : 10.6km
소요시간 : 선두(9시간 42분) 후미(10시간 56분)
참여인원 : 49명
구간 : 백두대간 47구간 (희운각-마등령)
위치 : 강원도 양양 - 강원도 속초
날씨 : 최저 20도 최고 28도
산행거리 : 12.7(마루금 4.2km+구간 외 8.5km)
소요시간 : 선두(9시간) 후미(10시간 31분)
참여인원 : 49명
설악산 종주는 대피소 자리도 적고, 대피소까지 오는 빠른 길도 없어서 지원팀이 없었다. 종주동안 먹을 식량과 조리도구를 가져가야 해서 조를 나눴다. 산행 전에 어른과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모여 조별로 메뉴를 정하고 준비물도 나눴다.
새벽 4시에 한계령에 도착해 개인 보급품도 받고 조별 보급품도 나눴다. 이틀 치 옷과 간식으로 이미 꽉 차 있는 가방에 보급품을 넣느라 한바탕 분주했다.
이제껏 산행 중 가장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야 하는데 대청봉까지 가는 9km가 계속 오르막이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발했다. 힘들게 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하늘에서 돌을 쏟아붓고 정리는 안 해 놓은 것 같아"
함께 걷던 동료가 한계령 서부능선 길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설악산은 참 한결같이 험했다. '악'자가 들어간 산은 험하다더니 괜히 설'악'산이 아니었다. 다들 무겁다, 힘들다, 역대급 산행이라며 갔다. 그중 제일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올라온 아빠가 있었는데 배낭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대피소에 도착해 초등학생들을 먹일 컵라면과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아이들이 얼마나 밝게 웃고 좋아하던지 보는 내 마음도 흐뭇했다. 무거운 내 짐만 생각할 때 어떻게 제일 약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더 무겁게 짐을 지고 올 수 있는 걸까? 산에서 만나는 이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인간이란 본래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된다.
대청봉을 다녀오기 위해 배낭을 벗어두고 다녀오기로 했다. 배낭만 벗어도 날아갈 듯했다. 아쉽게도 대청봉에는 구름이 가득해서 맑은 날 볼 수 있다는 동해바다를 볼 수 없었다. 저 구름 뒤에 바다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대청봉에 도착한 기쁨을 누렸다.
기쁨은 잠시였고 희운각까지 내려가는 길은 내리막길이 고통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갈만 했는데 한 발 디뎌 내려가는 계단이 높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내리막길에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곧 무릎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종아리에 쥐가 날듯 말듯한 상태가 되었을 때 희운각에 도착했다. 대피소 옆에 계곡은 말랐지만 물이 콸콸 나오는 고무 호수가 있었다. 흐르는 물에 간단히 씻을 수 있었다.
조별로 저녁을 해 먹는데 먹는 기쁨만큼이나 내일은 짐이 줄어든다는 게 행복했다.
숙소에 누워 쉬고 있는데 설악산 와보셨던 분이 조금만 가면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예전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모았다.
가서 직접 보고 싶은 마음과 쉬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진짜 조금만 가면 되는지 여러 번 확인한 후에 따라나섰다. 내일 가야 하는 방향으로 정말 조금 올라가니 전망대가 있었다. 더 이상은 한 걸음도 못 간다고 생각했는데 또 오르막을 가지는 게 신기했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 건지. 몸은 갈 수 있는데 생각이 못 가는 거였을까? 설악의 노을은 안 봤으면 후회했을 만큼 아름다웠다.
이튿날 산행은 어두울 때 시작하면 위험하다 판단되어 한 시간 늦춰 5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피소에 울린 새벽 3시 알람에 모두 일어났다. 새벽 별 보며 떡국을 해 먹고, 산행 짐을 다시 꾸리고, 마당에서 체조를 하는데 해가 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백두에서 험한 길로 소문난 공룡능선을 타는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디가 공룡능선의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로프를 타고 오르기를 여러 번 하다 암벽에 'ㄷ'자 쇠가 박힌 곳도 올랐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났는지 시작하는 부분의 쇠가 크게 휘어있는 걸 보니 무서웠다.
오르막에서 한 번 무서워지면 몸이 굳을까 봐 일부러 씩씩하게 올라갔다. 앞사람 발이 올라가면 그 자리를 손으로 잡으며 바로 붙어갔다. 아랫사람이 바로바로 붙어 올라오고 있어 무서워할 틈이 없기도 했다. 단체 산행의 장점이었다.
앞사람을 따라가다 보니 사람들이 멈춰있었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내설악의 풍경이 발아래 펼쳐졌다. 신선들이 사는 곳이 있으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이곳의 이름이 신선봉이었다.
구름을 품고 있는 내설악의 뾰족뾰족한 산세를 담고자 다가가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들은 무섭지 않은지 바위 위를 산양처럼 올라가 자리 잡고 앉아 내려다보았다.
이후 1275봉, 큰 새봉, 킹콩바위, 나한봉을 지났다. 설악산 대간길은 역대 나이도에서 최고였다. 아찔한 절벽을 넘으며 가다 보니 어제의 서북능선은 양반으로 여겨졌다. 마등령에 도착하니 구간 외 길이 8.5km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연속 산행으로 어깨와 무릎에 충격이 쌓였다. 배낭을 멘 어깨와 내리막 길을 걷는 무릎에 통증이 계속됐다. 산행 후반이 되면 힘들어하던 아이들은 앞으로 뛰어가고 없고 엄마들만 남았었는데 설악산에서는 새로운 아빠 부상자들이 많았다. 어제 대피소에서 발목이 아프다고 했던 아빠는 더 부었고, 선두로 가던 아빠 한 분은 종아리에 쥐가 났다. 후미에 컨디션이 안 좋은 아빠들이 모였다.
아빠들은 도움을 참 낯설어했다. 누가 배낭을 메주면 기어야 가서 다시 받아왔다. 지금은 도움을 받고 가야 한다고 해도 자꾸 따라와 배낭을 두 개씩 맨 대장님들이 안 보일 만큼 앞질러 가버렸다.
거친 호흡과 함께 귀에서 뛰던 심장이 마등령을 지나 내리막에서 발바닥으로 옮겨가 뛰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쿵쾅쿵쾅 했다. 쉴 때마다 보호대를 풀러 무릎에 쿨링젤을 바르고 파스를 뿌렸다. 진한 파스냄새가 위로가 되었다.
내리막 끝에 도착하니 날머리로 간식지원온 선배들이 얼음물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계곡에서 아이스크림도 있다고 했다. 새 희망이 솟는 기분이었다.
계곡 길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하자 내리막에서 참았던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다리를 높이 올리고 한 동안 누워있다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여기부턴 중학생 서연이와 함께 갔는데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 드디어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이 가득했다.
평지에선 좀 아파도 괜찮다. 얼마든지 아파도 다리를 끌고 갈 수 있다. 계곡 물에 무릎을 담가 식히고 맨발로 걸어가는데 누가 가방에서 슬리퍼를 꺼내주었다. 구름 위에 올라탄 듯 발바닥이 편했다.
설악산을 다녀와서 일상의 대화가 달라졌다. "설악산도 다녀왔는데 할 수 있지"라고 말하게 된다. 산에 함께 갔던 사람들끼리는 "공룡능선도 다녀왔는데!"라고 말하기도 한다. 설악산을 안 갔지만 백두를 함께 다니는 딸에게 자꾸 산행에 빗대 얘기하게 된다.
"힘들어도 그것만 지나면 또 갈 힘이 생겨, 넌 몇 번이나 해냈잖아?" 밑도 끝도 없는 내 말에 아이의 눈빛이 지난 산행에 가 있는 게 느껴진다. 이럴 때문 우리 집에 백두 혈통이 흐르고 있는 기분이다.
설악산을 다녀온 후기에 "정말 힘들었지만 만약에 백두에서 한 번 더 설악산을 간다면 신청하겠다. "라고 한 중학생 웅태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힘들었는데 우리를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심장이 귀에서도 뛰다, 발바닥에서도 뛰다 할 만큼 너무 힘들었지만 나도 다시 한번 가고 싶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러 한 번 더 다녀올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