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 : 백두대간 1 구간 (중산리-벽소령대피소)
위치 : 경남 산청군 시천면 - 경남 함양군 마천면
날씨 : 최저 15도-최고 25도
산행거리 : 18.4km (마루금 10.9km+구간 외 7.5km)
소요시간 : 선두(12시간 16분) 후미(14시간 15분)
참여인원 : 47명
구간 : 백두대간 2구간 (벽소령대피소-성삼재)
위치 : 경남 산청군 시천면 - 경남 함양군 마천면
날씨 : 최저 12도-최고 20도
산행거리 : 17.2km
소요시간 : 선두(7시간 35분) 후미(8시간 5분)
참여인원 : 47명
지리산은 가족 산행을 시작했던 곳이다. 남편이 네 살 된 딸을 등산 캐리어에 메고, 나와 열 살이었던 아들이 배낭을 메고 갔었다. 위험하다는 남편의 반대를 설득해 다녀왔던 그 산행에서 아이들은 가는 곳마다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았었다. 대피소에 도착해 깡총깡총 뛰어다니던 딸, 나무 지팡이 하나 주워 씩씩하게 가던 아들, 안갯속에 갑자기 나타난 다람쥐 등 잊지 못할 순간들이 남았다.
그곳을 아들의 중학교 친구, 학부모들과 무려 백두대간 종주로 다시 가게 되다니! 너무 설레었다. 그러나 내 맘과는 다르게 아들은 주말 이틀을 다 산에서 보내기 싫다고 했다. 설득에 실패해 아들은 집에 남기로 했다. 딸도 종주는 무리라 결국 남편과 둘만 가기로 했다.
금요일 밤 11시에 버스가 출발했다. 이렇게 일찍 출발하는 이유는 대피소까지 도착 시간 때문이다. 대피소 도착 예상 시간은 선두 저녁 6시, 후미 밤 10시였다.
새벽 3시에 중산리에 도착했다. 주차장이 공사 중이라 길 가에 내려야 했다. 여기부터 천왕봉까지 5km가 계속 오르막이었다. 종주를 앞두고 후미그룹은 금주를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자기 때문에 늦어질 까봐 러닝을 꾸준히 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거의 쉬지 않고 올라갔다. 아침 8시 도착을 예상했는데 천왕봉에 도착하니 6시였다. 무려 두 시간 당겨졌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 정상석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날이 밝아졌다. 새소리 들으며 오솔길을 걸었다. 언젠가 잠이 안 오는 날 이곳의 풍경, 발소리, 새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영상에 담으며 걸었다.
"지리산은 메이저리그구만!" 백두대간으로 등산을 시작한 정현이 아빠가 말했다. 그동안의 대간길과 달리 지리산은 국립공원답게 곳곳이 잘 정비되어 있다고 감탄했다. 쓰러진 표지판도 없고, 선두가 방향표시 종이를 놓고 갈 필요가 없게 길표시도 곳곳에 있었다.
트레일러닝 대회가 있어서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이 계속 있어 거미줄도 다 치워져 있었다. 대피소에 들려 물보충도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대피소 테이블에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다웠다.
도대체 사람들이 지리산 종주를 앞두고 얼마나 긴장했던 걸까? 첫날 숙소인 벽소령대피소 도착 시간이 무려 4시간이나 당겨졌다. 밤 10시로 예상했던 후미가 6시 전에 다 들어왔다.
지리산 보급을 위해 먼저 와 있던 선배들이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열 명이 우리를 먹일 식량을 나눠지고 중간 길로 올라왔다고 했다. 대피소에 짐을 풀고 나오니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불고기 덮밥에서 꿀 맛이 났다. 산에서만 먹어야만 이 맛이 난다.
우리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었던 이유에는 지원팀이 식사준비를 맡아주어서 짐이 가벼워진 것도 한 몫했다.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서 저녁 별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낭만파들이 있었다. 나는 무릎이 내일까지 버텨줄지 걱정되어 진통제를 먹고, 발바닥에 휴족,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짐을 다 싸서 나갔더니 떡국이 준비되어 있었다. 떡국을 가져다주는 초등학생이 있었는데 작년에 종주를 마쳤다고 했다. 짐에서 쓰레기를 두고 가라고 했다. 선배들이 음식을 지고 왔던 배낭에 쓰레기를 넣어가겠다고 했다. 지리산 종주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길래 지원산행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나도 내년엔 여기에 와 있을지,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궁금해졌다.
백두종주를 하며 몸으로 배운 것이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가야 끝이 난다는 것이다. 들머리에 도착해 언제 가나 하는 걱정은 산행이 거듭 될수록 작아졌다. 왜냐하면 결국엔 끝난 다는 걸 아니까. 가다가 아프면 약 먹고, 힘들면 쉬고, 안 되겠으면 돌아 내려가고, 갈만하면 그냥 가면 되었다. 산을 가는 다른 방법은 없다. 걷다 보면 날머리가 나온다. 그 길을 어떻게 채워 갈 지만 오직 내 몫으로 남는다. 나는 오늘 어떤 모습으로 걸을까?
걱정과 달리 이튿날 산행은 가벼워진 배낭만큼이나 몸도 가벼웠다. 날씨도, 길도 걷기 좋았다. 멋진 풍경에도 발걸음을 자주 멈춰야 했다. 끝없이 펼쳐진 산등성이와 운해의 모습에 발 길을 멈췄고, 갑자기 나타난 동물에도 멈춰 섰다. 다람쥐가 손을 내밀면 가까이 왔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울타리 아래 모여 먹이를 찾고 있는 멧돼지 가족들도 봤다. 동물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혹시나 반달가슴곰을 만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곰은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는 걷고, 또 걷고, 계속 걸었다. 그러다 앞사람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가득한 노고단에 도착했다. 안개 때문에 아이들이 날머리로 가는 길을 헤맬까 봐 걱정됐다. 무전으로 노고단으로 곧 도착할 아이들이 누군지 확인하며 서로 챙겼다.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니 안개가 점점 옅어졌다. 이제 성삼재까지는 평평한 내리막길만 남았다. 이제 날머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사히 종주가 끝났다는 기쁨이 차올랐다. 등산은, 끝나기 직전이 가장 좋다.
무릎 주사를 맞고 와서인지 종주하는 동안 무릎 통증이 더 커지지 않고 걸을 만한 정도여서 다행이었다. 성삼재 주차장에는 종주에 함께 못한 동료들이 먼 길을 운전해 와 있었다.
중탈자 없이 47명 모두 무사히 내려왔다. 서로 돕는 산행이 얼마나 수월한지 느꼈다. 날머리에 도착하니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내년에 다시 오고 싶어졌다. 변치 않을 지리산 길에 또 하나의 추억이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