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요망기 - 곰피미역

레시피만 한번 찾아봤어도!

by 안녕나무 Mar 13. 2025

요망기는 요리 망한 기록의 줄임말이다. 쓰고 싶은 망한 요리들이 계속 쌓여갔는데 요리가 복잡한 만큼 망한 스토리도 복잡해 글로 풀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곰피미역은 요리라고 할 것도 없이 간단하다. 그걸 망했다. 곰피미역 망한 얘기를 들은 친구가 “살리는 법 없을까?” 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망한 요리 살리는 법에 대한 글이 없다. 예쁜 요리 사진과 성공비법들만 난무했다.


반복되는 일에는 원인이 있다. 내 요리는 왜 계속 망할까. 글을 쓰며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부턴 곰피 미역 요리 망한 스토리다.

동네 슈퍼에서 곰피를 발견했다. 삶아서 초고추장 찍어 먹는 상상을 하며 샀다. 갈색 미역줄기가 돌돌 손바닥만 흰색 플라스틱 접시 위에 래핑 되어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에 넣었다가 큰맘 먹고 오늘 삶아놓자 결심했다. 의지가 사라지기 전에 비닐 랩을 주욱 찢었다.


물을 끓이며 미역을 반 뽑으니 엉망이 되었다. 짧은건

개수대로 떨어지고, 탱탱한 미역 줄기가 삐죽삐죽 커졌다. 거침없이 요리를 하다 자신이 없어졌다. 왜 물을 충분히 넣고 한 번에 삶을 생각은 안 들었을까. 시간 맞춰 나가야 하는데 날에 왜 어쩌자고 요리를 시작했을까. 모든 실패엔 이유가 많이 붙는다.


첫 번째는 잘 삶아졌다. 굵은 줄기를 손으로 움켜잡고 부들부들한 잎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 넣자마자 갈색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흙색이던 냉이가 뜨거운 물에 들어가 초록초록 해지는 것만큼이나 신기했다. 양이 많아 부드러운 줄기만 먹어도 될 것 같아 손에 잡은 탱탱한 줄기는 잘라 버리기로 했다. 삶지 않은 줄기가 가위질을 튕겨내어 한참을 씨름했다. 등 뒤에서는 나머지 미역이 삶아지고 있었다. 그렇다. 너무 푹 삶아졌다.


너무 풀어져버린 미역줄기를 하나 먹어보니 싱겁다. ‘원래 이 맛인가?‘, ’너무 헹궈서 그런가?’ 원인을 찾아 달리다 ‘안되면 미역국 하지 뭐‘ 미래지향적 사고를 했다.


회의에 늦지 않으려면 이제 나가야 했다. 선생님이 오시는 아이 학교회의르 늦지 않아야 한다! 대충 자른 미역 줄기들이 정신없이 쌓였다. ‘먹을 때 가지런히 놓지

뭐‘ 스스로 한없이 관대하다. 그래서 발전이 없는 걸까. 손으로 채반에 쌓은 미역을 꾹꾹 누르다 뜨겁기도 학고 시간도 없어 시간과 중력에 미역을 맡기고 나왔다.


회의 쉬는 시간에 곰피미역 레시피를 찾아봤다. 망했구나. 미역을 소금물에 삶는 거였구나. 어쩐지 싱겁더라. 굵은 줄기를 10초 먼저 담그고  나머지를 다 넣어 20초 더 삶으라고 나와있다. 내가 한건 데치기가 아니고 삶기네. 진짜 미역국으로나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레시피 굵은 줄기, 얇은 줄기가 꼬들꼬들한 느낌으로 나란히 놓여있다. 당장 젓가락을 들어 초고추장을 콕 찍어 먹어진다.


데친 미역줄기는 중력에 의지해 물을 빼는 게 아니었다. 찬 물에 헹구면 꼭 짤 수 있었구나.


내 곰피는 꼭 짜면 먹을 수 있게 될까? 곰피미역국은 맛있나? 망한 요리들이 쌓여 망한 요리 살리기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나도 요리 잘하고 싶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보통식으로 가는 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