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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r 26. 2023

극우의 두 번째 탄핵소추안

처참한 실패로 또다른 역풍만 일으키다.

최근 스페인 의회에서는 총리 불신임안이 제기되었다. 스페인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지금까지 총 일곱 번의 탄핵 시도가 있었고, 그중 단 한 번만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 유일한 성공을 이뤄낸 총리가 현재 집권 중인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 총리.  그는 2020년 극우 정당이 제기한 첫 번째 탄핵안도 이겨냈고, 아마 동일한 정당에서 재차 시도하는 두 번째 도전도 무난히 견뎌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탄핵안 통과를 위해 필요한 득표 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 총리를 대신해 새로운 정부를 이끌겠다고 나선 인물이 오는 의회에서 보여준 태도가 아주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준비한 연설을 다 읽기도 전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얼마나 길게 연설을 해야 하는지 불평하고, 현재 정부가 가진 여러 문제에 대한 논평만을 늘어놓고 실질적으로 어떤 정부를 만들어 정치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어떠한 메시지도 던지지 않았다. 약 한 시간 반 이상 이어지던 현 총리의 연설 도중 '서류 한 더미를 듣고 와서 끝없이 이야기한다'라고 불평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벌인다 대체 왜 이런 무의미하고 우스운 토론이 벌어진 것일까?

시작은 지난 2020년, Vox의 대표 산티아고 아바스칼(Santiago Abascal)이 직접 자신을 앞세워 추진한 불신임안이 실패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콜렁비스 광장에서 찍힌 집회 사진으로 거센 역풍을 맞고, 약 200표 이상의 반대표를 받아 역사에 남을 처참한 실패를 기록했다. 그 사이 정부는 다양한 법안을 도입했는데, 그중 반역죄에 대한 개정을 두고 ‘이는 카탈루냐 정치범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임을 규탄하며 Vox의 제2차 탄핵이 추진된다.

그런데 과연 누구를 후보로 내세울 것인가?

섣불리 다른 정당과 어울리지 못하는 Vox의 성격과 지난 뼈아픈 패배로 인해, 다수에게 소구 될 수 있는 후보를 찾겠다는 노력은 계속되고, 무려 3개월이 지난다. 수많은 인물들이 언급되었지만 결국 Vox와의 협력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좌편향 이력으로 가득 찬 고령의 후보로 ‘물타기’를 시도한다. 숙고 끝에 Vox가 내세운 후보는 올해 89세의 라몬 타마메스(Ramón Tamames). 그는 프랑코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 시기에 공산당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현재 극우정당에 속해있지도 않고, 선출된 국회의원도 아니며, 심지어 현재 정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3월 초 있었던 갑작스러운 후보 발표는 스페인 사회를 혼돈에 빠트렸다. 좌파 연정 정부에 대항해서 새로운 정부를 만들려는 극우정당이 내세운 후보가 사회주의자라니. 이는 극우 내부에서도 의문스러운 시선을 받게 되었고, 의회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지다 못해 과거를 미화하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을 비판받으며 처참한 실패를 낳고 말았다.

이번 탄핵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물론 현 정권의 연결고리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도 있지만 중도 우파 PP당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사실상 반대에 가까웠기 때문도 있었다.

새롭게 취임한 알베르토 누녜즈 페이호(Alberto Nuñez Feijóo) 체제 상에서 온건한 노선을 타게 된 PP당은 야금야금 Vox의 지지세력을 잠식하며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보여주게 되었다. 연 중순에 있을 지역선거를 통해 기반을 다지고 연말에 있을 총선으로 분위기를 차분하게 연계하고 싶어 하는 PP에게는 굳이 무리수를 던질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 결국 좌편향 후보를 내세워서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PP와의 협력을 만들어 정권을 바꾸려고 했던 Vox의 시도는 혼자만의 꿈이었던 셈이다.

낮아지는 지지율로 인해 조바심을 낸 Vox는 설익은 탄핵안을 제기하며 내분의 씨앗을 심고 자멸의 길을 걷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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