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치유 방법
내 산후우울증의 증상은 종잡을 수 없는 무기력, 분노, 짜증, 불면증, 폭식 등이었다.
물론 갓 태어난 아이한테 그 화살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대신 남편에게 그 화살이 돌아갔다.
하지만 육아하느라 시간이 부족해 상담을 받을 수도 없고
(받았어도 언어 때문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힘들어 이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밤에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힘든 현실은 점점 잊혀갔다.
가족들이 모두 자는 밤에 내 방에서 그림들을 그리고 있으면
우울한 감정과 누구를 향한 건지 알 수 없는 분노들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상담을 받기도 사람들을 만나기도 힘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치유 방법이었다.
밤에 그림을 그리느라 부족한 잠은 아가가 낮잠 잘 때 재우면서
그 옆에서 기절하듯이 잤다.
인스타그램에 만든 계정에서 쓰는 부캐의 이름은 "애플맘"이라고 정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그 누구도 서로에게
00 엄마, 00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전히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끔은 '애플맘'이라고 불리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엄마라는 나를 자각하고 싶었고 또 아기 이름에게 기대서라도 힘을 내서
임신, 육아일기를 그리고 쓰면서 번아웃과 백지 공포 증후군, 산후 우울증, 향수병 등을 벗어나
그러면서 점차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리고 애플이가 6개월 되었을 무렵 만든 이 계정은 육아와 출산 때문에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한 일이었지만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저 애플맘 계정으로 인해 인터넷으로 친절한 동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은 여성분들인데 사는 곳은 달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재까지도 서로 조언해주고 공감, 응원하는 마음들에 많은 힘을 얻었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분들과 그림을 그리면서 갖는 내 시간들 덕분에 산후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인터넷에 글과 그림들을 올리며
나는 새삼스럽게 여성들의 연대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소통하는 여성들은 한국, 네덜란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살고 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고마운 그들은 홀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외롭고 힘든 내 옆에 항상 든든하게 서 있는 자매들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애플이의 사진들을 올리면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되었냐고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고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내가 애플 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애플이가 너무 많이 울어 걱정이라는
글과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자신들도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도 해주셨다. 심지어 네덜란드에 사시는 분 중 하나는 직접 만든 김치와 애플이의 선물들을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그림과 글들, 간혹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리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브런치 계정도 처음 만들었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파생된 계정 중 하나이다.
그림과 글들을 올리면서 다양한 매체에 소개도 되고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과거의 나는 내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남에게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듯이
출산 후 나의 짙었던 산후우울증이라는 그림자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강한 빛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You need chaos in your soul to give birth to a dancing star.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ch Nietzsche-
물론 애플이가 21개월이 된 지금도 육아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예전보다 산후우울증의 증상들은 많이 사라졌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아래 주소는 위에서 언급한 제 인스타그램 주소인데 궁금하신 분은 놀러 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applemom_nl/
그리고 아래 있는 만화는 제가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 했던 만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