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by 애플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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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베이비시터의 가족 중 3분이 코로나에 걸려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분께는 더 이상 일을 부탁드리기 힘들었다.

특히 그분은 대중교통을 타고 우리 집에 오셨기 때문에 갈수록 코로나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집에 오시게 하기가 심적으로 불편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애플 이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했기에

그 후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신 다른 베이비 시터분을 지인에게 소개받아

잠시 애플이를 부탁드렸다.


그때는 내가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빠 일주일에 2~3일을 맡겨야 되어서

급하게 찾아봤던 거였는데 운 좋게도 그분은 우리 집에 도보로 오실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계셨고

무엇보다도 애플이가 잘 따라서 한시름 놓았었다.


하지만 갈수록 네덜란드의 코로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그 베이비시터 분이 간혹 감기 기운이 있다고 당일 일정을 취소하고

못 오게 된 적도 여러 번 있었는데

내게는 그러한 상황들이 점차 힘들다고 느껴졌다.


당시에는 네덜란드에 충분한 코로나 검사 키트가 없어

의심 갈 만한 증상이 보여도 검사를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베이비 시터든 누구든 간에 매주 우리 집에 온다는 것 자체가

불안했다.


그래서 베이비 시터 분께 말씀드려

결국 몇 달은 내가 다시 독박 육아하며 밤에 일을 하다가

애플이 가 19개월이 되었을 무렵

큰 마음을 먹고 남편과 상의해 애플이를 마침내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사실 내 희망사항보다는 빠른 시기에 내린 결심이었다.

나는 원래 애플이가 2살이 되면 네덜란드의 다른 아이들처럼

Peuterspeelzalen이라는 놀이학교에 보내려고 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어린이들이 4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2살~4살까지 놀이학교에 아기의 사회성 발달 등을 위해 일주일에 2~3일을 보낸다.


그래서 나도 애플이가 2살이 될 때까지 최대한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미루고 있었지만

(코로나 사태와 어린이집 비용도 부담이 되었고)

나 홀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애플이가 19개월이 되었을 무렵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하필이면 애플이를 보낼 놀이학교는 2살 반 이상인 아이들만 입학 허가가 났기에

그때까지 또 1년을 육아와 일을 함께 병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밤에는 일을 하다가 몇 시간 쪽잠을 잔 뒤

하루 종일 애플이를 돌보기가 점차 쉽지 았았고

피곤해서인지 원인 모를 코피도 종종 났다.

두통 때문에 한 달 내내 두통약을 수시로 달고 산 적도 있다.

피곤하고 예민하니까 남편과도 많이 다투게 되었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육아와 일 모두를 잘 병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를 온전히 갈아 넣어야만 가능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내 몸을 혹사시키다가 만약 코로나나 다른 병에 걸린다면
어떡하지...?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면 병에 걸리기 더 쉬울 텐데...
내가 지금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코로나가 들어온 이후 네덜란드는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지만

어린이집들과 초등학교들은 코로나 사태 초기에만 잠시 문을 닫았었다.

(그래도 양 쪽 모두가 의료, 교육 등 현장에서 일해야만 하는 필수 직업군에 있다면

아이들을 교육시설에 보낼 순 있긴 했다.)

현재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모든 아이들은 코로나 사태 이전처럼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까지 네덜란드에서 아이들이 코로나에 감염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래서 나도 조금은 안심하고 애플이를 보낼 수 있었다.

어린이집을 보냈던 처음 한 달 애플이는 어린이집 앞에서

나와 남편 L과 떨어지기 싫어 울고불고했는데

그때는 마음속으로 정말 이게 옳은 결정인 건지 계속 혼자 물어봤다.


남편이 한 결정도 아니고 오로지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남편과는 애플이를 보낼 어린이집을 같이 둘러보고 충분한 대화를 하기는 했지만

최종 결정을 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래서 애플이가 울 때마다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껴서 나는 첫 한 달은 아무 때나 수시로 울컥했다.

첫 한달은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올까 봐 핸드폰을 항상 쥐고 다녔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내 일은 하지 말고 집에서 애플이를 돌봐야 할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애를 이렇게 울리면서까지
엄마, 아빠 없는 낯선 곳으로 보내야 할까...게다가 이 코로나 시대에...'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아기는 어린이집에 적응한다는

육아 선배님들의 말을 믿고 계속 애플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마 친정 가족이나 시댁 가족이 가까이 살았다면 애플이를 어린이집에 굳이 보내지 않아도

또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다.

양쪽에 하루씩만 부탁드리면 충분히 되니까...

아니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잠깐 부탁드려도 나는 충분하니까...


베이비 시터와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고민하며

친정이나 시댁이 집 근처에 살아서 수시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워킹맘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는 뭐를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고군분투하며 사는 걸까 울컥했던 적이 많았다.


'이럴때 친정 가족 옆에 사는 엄마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이민자이고 여기는 타지인 네덜란드.

나는 나의 육아를 도와줄 가족들의 옆에 사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가 워킹맘이 되고 싶다면 돈을 써서 애플이를 돌봐줄 인력을 구해야 했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하기보다는

현재의 내 상황에서 최선인 방법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사람마다 각자 처한 상황은 다 다르고 각자에 알맞은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

라고 생각하니 울컥하던 마음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따라서 나와 상황이 다른 다른 사람들 말은 듣지 않고

내가 애플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대신 일주일에 2일만 보내고

다른 날들은 내가 잠을 줄이고 여전히 밤에 일을 하기로 했다.



아가야, 우리 잘 할 수 있겠지?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들이 지금보다는 쉬워질꺼야
엄마도 아빠도 너도 모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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