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베이비 시터를 구하기로 결심했지만...

정말 산 넘어 산이다

by 애플맘
IMG_0308.PNG
IMG_0322.PNG
IMG_0323.PNG
IMG_0311.PNG
IMG_0319 2.PNG
IMG_0314.PNG
IMG_0320.PNG
IMG_0321.PNG
IMG_0316.PNG
IMG_0318.PNG



애플이가 무사히 돌을 넘기자 나는 일이 하고 싶어 졌다.

집에서 아기와 함께 있는 것은 행복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웠다.

나라는 사람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점점 잃어만 가는 것 같았다.


아기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집에서 애착육아를 해야 한다는 말도 듣긴 했지만

내 주변에는 아기가 6개월이 되었을 때 척척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나가는 (주로 네덜란드) 엄마들이 더 많았다.


또 애플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꼭 붙어서 육아를 한다고 해도

나는 애플이의 형제들은 두, 세 살의 터울이 있도록 낳고 싶은데

만약 둘째 애가 태어나면 적어도 약 6년은 내가 아무 경력이 없이 붕 뜨게 된다는

생각이 나에겐 공포스러웠다.


'그러다가 만약 셋째까지 낳게 된다면 적어도 십 년은 아무 일도 못하게 되는데...
십 년 후에 내가 일을 하고 싶어 해도 내 손과 몸이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십 년의 경력 단절이 있었던 중년 아줌마를 믿고
일을 주는 클라이언트가 있을까?
그때쯤이면 지금의 내 작업 포트폴리오는 전혀 트렌디하지 않을 텐데...'


물론 이 세상에는 집에서 풀타임으로 아이를 돌보며 육아도 일도 전부 척척 해내는 엄마들이 많지만...

나는 그럴만한 그릇이 안 된다는 것을 아이가 돌 되기도 전에 깨달았다.

(육아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한계를 매 순간 깨닫는 일 같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다가는 비상시에

내 일과 육아와 살림을 옆에서 조금이나마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나는 그만큼 대단한 슈퍼우먼이 아니라는 것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애플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맡아서 독박 육아와 함께 병행한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의 기간이 짧아 아기가 자는 밤에 작업하느라 잠이 부족한 것은 괜찮았다.

사실 오랜만에 일을 해서 힘든 것보다도 신났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안에 대해 클라이언트 분과 전화통화를 해야 할 때

다른 방에서 낮잠을 자던 애플이가 깨서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진땀 나던지......

아기가 울기 때문에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하면 나를 프로페셔널하게 보지 않을까 봐 그런 말도 못 하고...

아기가 우는 방에 전화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어서 발을 동동 굴리며 가능한 전화를 짧게 끊으려고 했다.

'제발 끊어라... 끊어라... 아이고... 어쩌지....
전화는 끊을 기미가 안 보이고 애플에는 계속 우네.....
미안해 애플아...

엄마가 금방 갈게...'


대충 대답을 해서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기억 안나는 일분이 하루 같았던 전화를 끊자마자

어두운 방에서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우는 애플이에게 달려가서 꼭 껴안았다.

다행히 애플이는 내가 오자 또다시 금세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잠든 애플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는 아기가 돌을 넘겨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베이비 시터에게 맡기기 전까진

절대 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난 나에게 일 년이라는 육아 휴직을 스스로 주었고

그 기간 동안은 애플이의 육아에만 집중을 해

온 정성을 다해 키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애플이와 매일 붙어있으면서

이유식 책들도 뒤져가며 매끼 골고루 이유식도 잘 챙겨 먹이고

책도 많이 읽어주고 놀기도 잘 놀아주었다.


물론 중간중간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많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불안감과 답답함. 또 타지에서 홀로 육아한다는 부담감 등 때문에 결국 내게는 산후우울증이 왔고

애플이가 6개월이 되었을 무렵부터 인터넷에 글과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이 브런치 북의 다른 에피소드에도 썼다.)


그리고 애플이가 돌을 넘기자 나는 본격적으로 일이 하고 싶어 져서

베이비 시터를 열심히 구하기 시작했다.

찾는 기간과 과정은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좋은 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분은 5명의 손녀, 손자를 둔 할머니 베이비시터 분이셨다.

그분께 애플이를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맡기고

안심한 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베이비 시터 비용은

한 시간에 8유로였다.

(한국돈으로는 16000원 이상)

베이비 시터 비용은 내게는 비쌌지만

정부 지원금 제도는 없어서 100% 자비 부담을 해야 했다.

또 그 당시에는 내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게 바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예전에 모아둔 돈을 베이비 시터 비용으로 써야 했었다.


하지만 내가 한 집에 애플이와 가깝게 있을 수도 있어서 안심이 되었고

또 그때 당시 내가 준비하던 새로운 일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몇 주 뒤 코로나가 네덜란드에 들어오자

모든 학교, 은행, 카페나 레스토랑들을 닫는 럭다운이 실행되었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집에 초대하는 것이 제한되었다.

게다가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 베이비 시터분의 가족들 중 3명이나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나는 다시는 그 베이비 시터분께 일을 요청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그분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다시는 베이비 시터 일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누군가가 들이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일을 하고 싶다면

나는 새로운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내 일을 계속 지속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욕심 아닐까....?

대체 내게 일은 뭘까?









keyword
이전 04화산후 우울증 덕분에 내 글과 그림들을 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