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깜짝 놀랐던 어린이 집의 한 주 식단표
애플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식단표들 중 하나. 일주일을 기준으로 매주 메뉴들이 바뀐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급식 선생님들께서 쉬시기 때문에 식단표에는 안 적혀있다.
그날은 주로 빵을 먹는다고 들었다.
나는 음식에 관심이 많다.
다양한 레시피를 찾아 직접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한다.
인생을 아주 단순하게 보자면 결국 "먹고 자고 음식을 찾는 일(노동)"이 아닐까라고 남편과 진지하게 대화한 적도 있다.
그래서 애플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부터 이곳 아이들은 어떤 음식을 먹을까 몹시 궁금했다.
'한국 어린이집에서는 밥과 국, 반찬들을 먹는다면 여기 어린이집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처음으로 나와 남편이 애플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을 상담 겸 방문했던 날 친절한 선생님은
교실은 물론이고 주방과 그곳에 쌓여있는 재료들,
매주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식단표까지 함께 둘러보며 전부 공개해주셨다.
주방은 먼지 한 톨 없이 반짝반짝 깨끗했고
역시나 발도로프 어린이집답게 모든 재료들은 근처 유기농 농장과 가게들에서 배달 해온
유기농의 싱싱한 과일들과 야채, 빵 등이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의 식단표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식단표를 본 나는 깜짝 놀라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이건 100프로 비건 식단표인가요? 고기, 해산물, 계란, 치즈를 전혀 쓰지 않으셨나요?"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네. 그럼요. 저희 어린이집에서는 비건 음식들만 아이들에게 준답니다.
그리고 물론 푸드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별도의 음식이 준비돼서 나간답니다."
애플이의 이유식을 준비할 때 주로 한국에서 출판된 이유식 레시피 책들을 참고했던 나는 얼마나 고기에 들어있는 철분이 아이들의 성장에 중요한지 매번 책을 볼 때마다 설득당했었고 모태 채식주의자인 남편과 그 주제로 몇 번이나 격렬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과거형이다. 현재는 전혀 싸우지 않는다.
나는 고기, 해산물이 들어간 한식들을 요리해 애플이에게 주고
남편은 서양식 채식 음식들을 요리해 애플이에게 주기로 합의를 본 후 지금까지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나는 놀라서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왜 이 어린이집에서는 비건 음식만 주시나요?"
"그건 고기나 해산물은 관리나 보관이 야채보다 힘들어서 자칫 방심하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 있어서요.
그리고 종교, 문화 혹은 채식주의자나 비건인 부모님들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도 있는데 각각의 그룹들을 위한 식단을 따로 챙기기에는 너무 복잡하답니다. 이미 푸드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별도록 음식을 준비해야 되니까요.
또 비건 음식들도 고기와 생선 못지않게 영양분이 풍부하답니다."
자기 자신도 비건인데 충분히 건강하다고 마무리하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예전 한 대형 페스트 업체 체인점에서 충분히 익히지 않은 고기 패티를 먹고 큰 피해를 입었던 어린이들에 관련된 뉴스를 떠올렸다. 또한 얼마 전 상한 고기를 제공해 아이들이 대거 입원하여 뉴스에 나왔던 어린이집도 떠올렸다.
나는 고기와 생선은 차마 끊지 못해 일주일에 한 번씩 챙겨 먹는 플렉시 테리안이고
또 고기 속 철분이나 생선 속 오메가 3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애플이에게도 매주 한번 이상 고기와 생선 요리를 만들어주는 엄마인데도
왠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자 이곳 어린이집에서 제공하는 비건 식단이 좋아지고 또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이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앞으로 상했거나 덜 익은 고기/해산물을 먹어 생기는 사건사고는 없을 것 같았다.
(야채는 상해봤자 고기나 생선보다는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더 쉽고 훨씬 덜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한 가지 마음에 든 점은 이 어린이집의 식단표는 내가 요리하는 집밥보다 더 다양하게 나온다는 점이었다.
집에서 나는 주로 한식을 요리하는데 그러다 보면 탄수화물은 주로 쌀(혹은 잡곡) 밥이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이유식들도 그렇고 이곳 어린이집의 식단표의 탄수화물들은 쿠스쿠스, 감자, 고구마, 파스타 등 정말 다양한 재료들이 탄수화물을 대신하고 있었다.
애플이는 집에서 아침을 먹고 7시 반에 어린이집에 도착.
놀다가 9시면 다 같이 간식으로 과일들을 먹고 그 후 11시 반이 되면 식단표대로 비건 점심을 먹는다.
더 오래 머물러 있는 아이들은 역시 식단표에 나와 있는 대로 비건 점심, 간식, 저녁을 전부 먹는다.
그리고 모든 식사는 한꺼번에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전채, 메인 디쉬, 디저트 이렇게 차례대로 아이들에게 제공된다고 한다.
선생님은 덧붙여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마실 것은 물, (무 카페인) 어린이용 차라고 들었다.
과일 주스는 특별한 행사 때만 제공한다고 했다.
슈퍼에서 파는 과자는 전혀 주지 않는다고 덧붙이셨다.
식단표에 나오는 당근 쿠키나 호박 파이 등 디저트들은 구입해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설탕 등을 적게 첨부하기 위해 전부 직접 주방에서 유기농 비건 재료들로만 만들어서 제공한다고도 했다.
나는 애플이의 어린이집 식단표가 흥미로웠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사진 찍어온 식단표를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고
곧 몇몇 친한 팔로워 분들의 디엠을 받았다.
'와 이곳은 태릉 선수촌인가요? 식단이 정말 끝내주네요. 저도 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싶어요.'
나는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답변을 보냈다.
'네 사실 저도 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싶어요.'
참고로 남은 음식들은 전부 주변 농장에 있는 닭들에게 준다고 한다.
나는 이 친환경적인 잔반 처리 방법도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고기를 쓰지 않은 식단이니 남은 음식들을 동물들에게 주는 것도 쉽지 않을까 싶다.
네덜란드에는 비건이나 나의 남편 L 같은 채식주의자, 나 같은 플렉시테리안들이 많이 산다.
레스토랑이나 카페들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위한 메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잡지나 서적에서도 그런 메뉴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고기나 생선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조금만 리서치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애플이가 일주일에 한두 번이 아니라 좀 더 자주 육류나 해산물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혼자 고민이 많았는데 이번에 어린이집 식단표를 보고 안심이 되었다.
충분히 비건, 채식 메뉴도 다양한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알다시피 우리의 몸은 매일 고기나 생선을 먹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일주일에 몇 끼라도 비건, 채식으로 아이들의 식단을 준비한다면 어렸을 때부터 그것들을 대체한 다양한 재료들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편식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환경문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에는 각기 다른 교육 철학을 가진 다양한 학교들, 어린이집들이 있다.
모든 네덜란드의 어린이집들이 애플이가 다니는 발도로프 어린이집처럼 유기농 비건 메뉴를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내 친구의 딸은 네덜란드 정부에서 세운 어린이집에 다니는 데 이 칼럼을 쓰기 위해 그곳의 식단표를 물어보니 그곳에서는 물론 과일을 주지만 대부분의 식단은 빵이랑 치즈, 우유 등이라고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데 그때는 고기도 준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각 어린이집, 학교들의 교육 철학에 맞춰 교육 방식, 인테리어, 식단 등은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 수 있었다.
애플이가 어린이집을 가던 첫날 점심 메뉴이다.
발도로프 어린이집은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위해서
초반 며칠은 부모가 함께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 옆에 함께 있을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삼일밖에 허용 안되었지만 나도 따라가서 하루를 같이 보냈고 덕분에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