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쥬 Apr 19. 2024

잘하고 싶어 미쳐버리겠다

나의 성장욕구를 자극하는 이런 52g!

두 집 살림을 드디어 청산했다. 낮에는 52g(지주사의 혁신조직) , 밤에는 본사 인사팀을 오가며 마침 체력이 거덜 날 때쯤이었다.


52g에 온몸을 퐁당 담근 나는 너무 신이 났다. 하지만 즐겁고 신나는 시간도 잠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니 나의 허점이 여기저기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내가 느꼈던 가장 큰 구멍은 나의 부족한 협업경험이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협업은 협업이 아니었다. 과거 내 방식은 내가 가진 공을 재빨리 다른 담당자에게 패스하는 방식이었다. 내 공의 개수가 많으면 ‘야근’, 공을 전부 패스했으면 ‘퇴근’. 최대한 많은 공을 신속한 속도로 상대방에게 넘겨야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52g의 협업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각기 다른 블록을 가지고 함께 성을 쌓아가는 방식이다. 내가 블록을 빨리 쌓는다고 성은 완성되지 않는다. 각자 머릿속에 있는 완성물의 그림이 다르면 엉뚱한 결과물이 나온다. 같은 이해도를 가지고 함께 같은 속도로 성을 쌓아야 한다. 만약 합의되지 않은 다른 블록을 쌓고 싶을 때는 모두의 공감과 동의가 필요하다.


나는 이런 협업 방식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의 스타일은 매우 일방적이고 터프했다. 모두의 공감과 동의를 구하기보다는 일방적인 ‘통보’ 방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나의 업무 방식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힘들어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힘든 사람은 나였다. 모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업무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52g에 오자마자 맡은 프로젝트는 ‘카탈리스트 과정‘이었다. 52g 인재 발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만큼 모두의 공감과 동의가 필요한 고난도의 협업 프로젝트였다.


하필 난 이때 코로나 팬데믹 태풍의 한가운데를 뚫고 가고 있었다. 모두가 오프라인에서 함께 모여 의논을 할 수 없었고, 주로 채팅창과 화상회의로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채팅창으로 오고 가는 민감한 대화 가운데 동료의 단어 하나, 추임새 하나에 상처를 받았다.


처음으로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많은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팀장과 나 1대 1의 업무 체계가 그립기까지 했다. 원래대로라면 업무를 추진할 때 팀장의 동의만 구하면 그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52g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이해관계자가 너무너무 많았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또 한 가지, 고객 중심으로 일한다는 건, 언제라도 고객의 피드백에 따라 우리 계획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고객의 반응과 의견에 따라 계획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계획을 바꾼다는 것은 실무자에게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야근을 하고, 집에 와서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했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잦은 계획 변경은 너무나 많은 열정페이를 요구했다.


하지만, 난 잘하고 싶었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이게 맞다고 굳게 믿었다. 야근을 할 때도, 집에서 밤늦게 까지 일할 때도, 나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나와 함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였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동료가 되고 싶었다.


일 중독, 워커홀릭이 되어 52g와 함께 한 1년이 어느새 지나갔다. 그야말로 압축성장을 해버린, 밀도 높은 1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