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를 키우고 있는 좋은 어른들에 대해
사회인이 된 후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온갖 인간 군상들이 나를 괴롭혔고, 그런 날들을 나는 버텨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도망갈 수 없었다.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게 원래 그렇게 힘든 거야. “
많은 어른들이 괴로워하는 내게 주로 이런 조언을 했다. 이를 악물며 출근하고 매일 울며 퇴근하는 스물여섯 살의 내가 2014년에 존재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이 나쁜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괴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독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서른여섯, 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회사는 원래 괴로운 곳이라는 어른들의 조언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를 성장시킨 좋은 어른들이 2024년, 이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2024년 이곳에는 더 이상 울면서 회사를 다니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회사는 더 이상 괴로운 곳이 아니다. 매일 자아실현을 하고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했다. 어떻게 이런 변화를 겪게 됐는지 이야기하자면 먼저 나를 성장시킨 세 명의 키다리 아저씨들을 소개해야 한다.
사실 키다리 아저씨의 성별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아저씨가 아니고 아주머니다. 그녀는 때로는 친한 옆집 언니 같고 때로는 따끔한 가르침을 주는 코치와 같다. 냉담하고 직설적인 코칭 덕에 눈물 찔끔한 적도 있지만 내 눈물의 근원은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더 잘하고 싶었는데 이 것밖에 못한 내 자신이 안타까워서 이다.
그녀의 코칭은 언제나 나를 전진시킨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래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는 그녀를 어김없이 찾아간다. 그녀를 찾아가면 항상 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Key)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너무 자랑스럽다!”
그녀가 내게 하는 말 중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다.
나와 두 번째 키다리 아저씨와의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팀원이 아니었을 때 그는 나를 매우 방어적으로 대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공격적으로 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여갈 때 나는 그의 팀원이 되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쌓인 오해를 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대화했다.
내 꿈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쩌다 그의 팀원으로 오게 되었는지 서사가 풀릴 때 즈음 내 두 번째 키다리 아저씨는 나에 대한 방어를 완벽히 풀었다.
그는 내가 겪어 본 모든 리더들 중 가장 진심이다. 팀원들이 성장하여 승승장구하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하는 리더. 그 진심이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와닿는다. 그래서 가끔 그 뜨거운 진심이 내 눈물샘을 치고 지나간다. 그의 진심을 느꼈을 뿐인데 무엇이 눈물샘을 자극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오~ 너무 좋아! 계속 얘기해 봐! “
그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스스로 말을 많이 하는 법이 없고 항상 내 이야기에 이런 반응을 하며 그는 진지하게 경청한다.
나와 그의 첫 만남을 연상해 보자면, 미스터 선샤인에서 노비의 자식이었던 유진초이(이병헌)가 고종(이승준)을 알현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시대가 변하며 모든 규칙이 새로 정립되던 격동의 2022년. 이전 같으면 과장 나부랭이었던 나는 세 번째 키다리 아저씨와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 세 번째 키다리 아저씨는 땅과 하늘 같은 직급차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고민을 나누고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해 줬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단계만큼의 높은 목표 제시, 따뜻한 격려와 진심 어린 응원. 그는 나를 그렇게 성장시켰다.
그가 제시해 준 목표 덕에 나는 우리 회사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싱킹 워크숍을 수차례 진행하고. 실리콘밸리 이노베이션 트레이닝 프로그램의 총괄로 입지를 다졌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나는 300명이 모인 HRD포럼에 연사로도 설 수 있었다.
“우리 회사 직장 동료들이에요.”
내 세 번째 키다리아저씨가 그의 가족들에게 우리 팀원들을 그렇게 소개했다.
“동료”
평소 그가 우리를 어떤 시선과 마음으로 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그 순간을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나도 만약 언젠가 한 회사의 사장이 된다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나의 동료’라고 소개할 테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회사에서 좋은 어른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결국 좋은 어른이 또 다른 좋은 어른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오래도록 나를 키우고 있는 세명의 키다리아저씨들 옆에 꼭 붙어 좋은 어른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좋은 어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