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서른 살들을 위한 응원과 위로
36살의 나는 여전히 퇴근길이다. 오늘 퇴근길의 나는 언제나 그렇듯 근심 가득하다. 풀리지 않는 숙제를 한가득 집에 가져가고 있는 기분이다. 그만큼 퇴근길의 나는 가벼웠던 적이 없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구혜선 씨의 인터뷰를 봤다. 마흔 살의 그녀는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에 대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인정받고 싶어서’라고 했다. 화가, 작곡가, 배우, 영화감독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재능을 드러내고 있는 그녀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싶다니.
그만큼 인정욕구는 불치병이다.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내 욕구 역시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잘하고 싶다. 유능해지고 싶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사회적으로 더욱 높은 위치로 가고 싶다.
드러나는 야망을 가려야 할 만큼 나는 높은 위치에 있지도, 겸손해야 할 만큼 부러워할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 많은 직장인 중 직장인 1일뿐이다.
이런 내가 오늘도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일한다. 여전히 나는 넘어야 할 능력의 한계치가 존재한다. 월급을 받는 일 이외에 회사가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싶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행위는 나에게는 생계수단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내가 그동안 했던 수많은 노력을 인정받고 보상받는 일이다. 15살 때 부모님을 떠나 추운 기숙사에서 덜덜 떨며 지내던 유학 세월에 대한 보상, 부모님의 젊음을 팔아 10년간 유학생활을 해왔던 것에 대한 보상. 매일 울면서 사회초년생활을 버텨냈던 시간에 대한 보상. 긴 세월 동안 내가 쌓아왔던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현재의 내가 세상에 청구하기엔 지금 내가 가진 능력이 보잘것없어 보인다.
스물여섯 살, 10년 후 내가 상상했던 서른여섯의 나는 이런 불완전한 모습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어리숙하다. 여전히 초보처럼 실수하고 사회초년생처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렇지만, 딱 한 가지 스물여섯의 나와 다른 게 있다면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제 기뻐하는지, 언제 슬퍼하는지, 무슨 일을 할 때 성취감을 느끼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괴로워하는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서른여섯의 나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마흔여섯의 나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조금 더 좋은 선택을 하고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낼 것이다.
그러니 서른여섯 살, 좌절하지 말자.
분명 마흔여섯의 너는 달라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