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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May 23. 2024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마음

#4 경이와 관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마음


만삭 때 남편과 동네 호수를 걷다가 청록색 털을 가진 새 한쌍을 만났다. 지면에 닿을 만큼 낮게 날아들어 서로 수신호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힘차게 나무 사이를 오가다 카메라를 들기도 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처음 보는 종에 호기심이 발동해 바로 검색엔진을 켰다. '파란 새', '호수 파란 새', '도심 파란 새'를 차례로 검색창에 입력하고 그 새가 파란어치(블루제이)라고 결론 내리기까지 든 시간은 고작 3분 남짓. 미국과 캐나다에 흔한 종을 한국, 그것도 우리 집 앞에서 만날 확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검색엔진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내가 사는 시에는 블루제이라는 카페가 있었고, 걸어 다니는 나무위키인 남편은 류현진 선수가 몸담았던 블루제이스의 마스코트가 블루제이인 점을 지연의 증거로 내밀었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우리의 경이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경이란 원래 이토록 놀랍고 신비한 일이 아니던가.


남편은 그 뒤로도 동네에서 파란어치를 꽤 자주 목격했다. 그때마다 집으로 돌아와 나를 앉혀놓고 경이의 순간을 펼쳐놓았다. 어느 날 파란어치 세 마리가 인적이 드문 보도블록 위를 일렬로 콩콩 튀기며 걸었다나. 어릴 때 트램펄린을 타던 자신처럼 정말 콩콩 튀어 올랐는데, 제각기 다른 박자가 귀여움 한도초과라 하마터면 차를 멈춰 세울 뻔했다고 고백했다. 처음 파란어치를 만난 뒤 그 존재를 다시 목격하지 못했던 나는 남편의 목격담을 들으며 내적 경이를 한 뼘씩 키워갔다. 


며칠 전 아이와 둘만의 산책길에 드디어 파란어치를 다시 목격했다. 하늘과 파랑 사이를 오가는 오묘한 빛깔의 꼬리털이 여전했으나 가까이서 목격한 파란어치는 어쩐지 까치의 생김새를 풍겼다. 다시 검색엔진을 켜 이번엔 '파란 꼬리 새'를 검색하니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새와 같은 모습의 이미지가 주르륵 떴다. 태그된 이름은 물까치. 파란어치와 같은 까마귀과지만 그 생김새는 전혀 달랐다. 파란어치를 다시 검색해 보니 파란어치는 몸의 대부분이 파란 깃털이었다. 조금만 더 검색해 보면 알게 되었을 경이의 진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그냥 우리는 파란어치라고 부르자." 했다. 아 그렇구나, 남편의 명쾌함에 무릎을 탁 쳤다. 그 뒤로 동네에서 물까치를 만나는 일이 잦았는데, 우리는 구태여 "파란어치다!" 하며 우리만의 경이를 이어갔다. 경이의 순간은 어쩌면 마음가짐의 문제일 테니까.



이 마음가짐은 어디까지나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자라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 6개월 정도까지는 엄마 아빠로서 삶에 쉬이 적응하지 못했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와 성장을 비교하기 바빴다. 지금의 아이보다 한 발 앞서 살기 위해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국 지나간 사진을 보다 언제 이렇게 컸지?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아이가 스스로 앉고, 기려고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기 시작할 무렵 우리도 부모로서 생활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게다가 상승세를 탄 아이의 성장은 밀린 숙제를 벼락치기하듯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매일이 경이와 함께였다. 장난감을 정리하는 새에 아이는 혼자 앉기를 성공하고 내게  웃어 보였고, 서툰 네 발 기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자리를 뜨면 쿵쾅쿵쾅 쫓아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르게 기는 탓에 무릎에 멍이 가실 틈이 없었다. 지금은 잡고 일어나기, 갑.분. 스쾃, 소파나 벽 잡고 옆으로 걷기, 가구 밀면서 걷기를 지나 혼자 일어나 손을 떼고 몇 초 뒤 털썩 앉기에 매진하고 있다. 또 박수를 시작으로 죔죔, 하이파이브, 사랑해 동작을 배운 뒤 스스로 해내는 것이 즐거운지 동작을 하고 혼자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가끔 둘러앉아 있는 사람을 응시하며 박수를 유도하는데 이때 박수를 치지 않으면 한참 쳐다보기도 한다.


남편과 나는 그저 관조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기로 했다. 주변의 선배 부모가 모두 말했듯 "늦더라도 언젠가는 다 한다"는 생각으로. 다만 이제는 아이가 무언가 하나 해낼 때마다 마치 파란어치를 만났을 때처럼 눈가에 경이가 그렁그렁 맺힌다. 그리고는 아이를 향해 격려와 칭찬,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는 더 신이 나서 우리와 소통하고 나누기 위해 혼자 노는 시간에 무언가를 연습하며 고군분투를 한다. 어제는 퇴근한 남편을 향해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씩 웃어줬는데, 이 작은 몸짓과 표정이 뭐라고 한바탕 웃는 저녁이 됐다. 남편은 하루의 피로가 가셨노라 환희에 찼다. 사실 며칠 전부터 아이는 고개를 한 번씩 어깨에 닿게 해 보며 나를 골똘히 쳐다봤다. 그때마다 웃으며 나도 고개를 갸우뚱 하니, 아이에겐 그게 또 하나의 재미난 놀이가 되었다. 남편에게는 마치 어제 처음 목격한 것처럼 함께 경이를 나눴다. 파란어치가 물까치라는 진실은 이제 중요하지 않으니까.


사실 지금 아이가 겪는 모든 건 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겪는 성장의 과정이다. 조카도 친구의 아이도, 옆집 아이도 모두 거쳐간 성장곡선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물까치를 파란어치로 조금 더 특별하게 바라보는 마음가짐은 처음부터 모든 부모에게 있지 않다. 어떤 마음들에는 노력이 필요하듯. 오늘도 남편과 둘러앉아 아이의 작은 성장에도 열렬한 환희와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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