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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Oct 15. 2015

Barkly Highway 66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04


Barkly Highway 66

Greyhound Bus

from Brisbane to Barkly Homestead

Australia


      


Barkly Highway 66


이름도 긴 이 고속도로는 호주 동부 브리즈번에서 바다를 등지고 내륙으로 하루를 꼬박 달리면 나오는 작은 도시 마운트 아이자와 아웃백 마을 테넌트 크릭을 연결한다. 하늘 꼭대기에 뜬 태양이 사정없이 볕을 쬐어 흙까지 붉게 태운 아웃백의 고속도로. 그 한가운데에 바클리 66번 고속도로의 오아시스, 바클리 홈스테드가 있다.

      


한 달간 동생과 여행을 마치고 통장 잔고가 그 어느 때보다도 낮아진 상태로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시드니에서 만나 연락을 주고받던 언니가 살고 있는 집에 안착하여 소개받을 일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시간은 자꾸 가는데 소개해주겠다던 일은 감감무소식.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고 계속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도 없이 2주가 지나고 통장 잔고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급하게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뿌려댔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하루 종일 소득 없이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날이 길어질수록 도시의 모든 것이 크게만 느껴졌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건물들, 넓게 뻗은 다리, 그 위를 지나가는 버스도, 차도, 사람들도 한참 커 보였다. 그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밤늦도록 어두운 방 안에서 눈만 깜빡이며 잠들지 못했고, 아침이면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때로 일 할 곳이 없는 건 괜찮다. 그리고 돈이 좀 없어도 나쁘지 않다. 일 할 곳이 없으면 모아둔 돈으로 버티며 풍족한 시간을 즐기고, 돈이 없으면 일을 해서 벌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패닉 상태가 된다. 도서관에서 프린트한 이력서 몇 장을 들고 하루 종일 온 도시를 쏘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유학 온 중국인 룸메이트가 행복하게 잠든 방에 누워 새벽이 올 때까지 내일을, 한국을, 앞날을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몸속에 있던 모든 긍정적인 기운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린 기분이었다.



어느 서늘한 저녁에 허허벌판 아웃백에 있는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

"여기 일 구하기가 너무 힘드네요. 이제 돈도 별로 없는데..."

"그래? 일이 없어? 브리즈번이 원래 일 구하기가 좀 어려운가 봐."

"일도 일이고...... 돈도 없고. 좀 무서워졌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힘들어? 그럼 여기로 올래?"


언니가 일하고 있는 바클리 홈스테드에서 곧 누군가가 떠나 그 빈자리에 나를 추천해 주겠단다. 나는 4주째 일이 없었고, 가련한 통장 잔고는 버스표 끊을 돈도 빠듯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일단 좋다고 했다.


다음 날 버스표를 끊고 보니, 이름도 가물가물한 목적지는 너무 작아 지도에 표시도 안 되는 아웃백 어딘가. 브리즈번에서 버스로 장장 32시간이 걸리는, 바클리 하이웨이 66번 한가운데에 자리한 로드하우스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으로, 주유소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식당, 편의점뿐만 아니라 모텔과 캠핑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풀었던 배낭을 다시 싸고, 남은 식재료와 집기들을 모두 언니에게 넘기고 나니 정리할 것도 없었다. 남은 돈으로 가면서 먹을 것을 몇 가지 사고, 오후 3시에 버스에 올랐다. 다음 날 밤 11시에나 최종 목적지인 바클리 홈스테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나는 여행에서 늘 다음 발이 닿을 곳을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다음에 갈 곳을 예상하고 이루지도 못할 아주 많은 계획을 세우고, 그다음 꺾어질 골목과 고달픈 언덕길을 준비했다.


"여행이란 원래 갑자기 시작되고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거지!"라고 말하는 순간조차. 모든 것은 이미 준비된 허용치 안에서의 불확실성일 뿐이었다. 그러다 이렇게 갑자기, 영혼의 밑바닥까지 탈탈 털린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아웃백으로 달려가는 날을 맞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때부터였나 보다.

여행도, 인생도. 아무리 계획하고 열심히 준비해도, 그대로 흘러가진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칠흑같이 어둡다는 말이 실감 나는 밤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 지났다. 나무가 점점 작아지고, 흙이 점점 더 붉어졌다. 해가 지고 뜨고 다시 지는 동안에도 버스는 내리 달렸다.


바클리 66번 고속도로의 오아시스.

바클리 홈스테드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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