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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Oct 11. 2015

Radio Heaven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02


Radio Heaven

Atherton, Queensland

Australia



여기는 애서튼 외곽에 있는 감자농장.

볕은 쏟아지고 붉은 흙이 사정없이 날리는 것도 모자라 가끔 먹구름이 만화처럼 한 곳에만 비를 퍼붓는 곳. 이 작은 마을의 커다란 감자밭에서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트랙터에 올라 감자를 고른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을 하다 보면 지루하기 마련. 농장에 들어오기 전에 산 MP3 플레이어는 그새 붉은 흙가루가 꼈는지 작동하지 않는다. 겨우 들을 수 있는 건 그전에 듣다가 그대로 고정돼 버린 97.7 MHz HOT FM 뿐이다.


매일 아침 모닝쇼부터 시작해서 온갖 HIT LIST 노래들을 적어도 대여섯 번씩 반복하며 뇌를 멍하게 만든다. 그러면 아주 단순한 일도 지치지 않고 8시간이고 9시간이고 계속해 낼 수 있다.



DJ들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이해하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다 이내 포기해 버리기도 하고, 가끔은 배를 잡고 웃기도 하면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어서 장 보러 오라는 동네 슈퍼 광고부터, 올여름에는 오직 Biggest Hit만 틀어주겠다는 라디오 스테이션 광고까지 ─ 그게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가 되뇌면서. 트랙터 맞은편에서 감자를 고르는 독일 & 스웨덴 친구들도 같은 라디오 스테이션을 듣고 있다는 걸 안 후로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목청껏 노래를 불러가면서.


매일 흙바람과 비를 맞아가면서.

그렇게 지냈다. 지난 16주를.

이젠 끝이지만.



무엇보다도 라디오를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MERRY CHRISTMAS!

NOTHING LIKE A SUMMER TIME!

(What the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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