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상 인문학적인 미술사>에 담긴 내용을 일부 편집하여 업로드한 내용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우리는 지금까지 저 먼 옛날, 그러니까 기록이라는 것이 남기도 전부터 고대,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 천 년 동안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 미술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것만 같았던 미술도 인간의 삶,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의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까지 책을 열심히 읽은 분 중에는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된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요즘 미술은 어떨까?’라는 궁금증 말이죠. 사실 지난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최근 20여 년 동안 만들어진 예술은 아직 통용된 명칭으로 불리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이전 시대의 미술 사조들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았어요. 극히 일부의 경우(모네의 그림을 비판하려다가 엉뚱하게도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선물하게 된 루이 르루와의 이야기, 기억하시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간이 지난 뒤 후대의 예술가 혹은 평론가들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지난 장에서 살펴본 포스트모더니즘은 운동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에야 그 용어가 비로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통용되기 시작했죠.
용어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오늘날의 미술이 이전 시대의 미술과 비교해 아무런 특색도 발견할 수 없다거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또한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예술 작품, 나아가 미술계 전체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죠. 카르스텐 휠러(Carsten Höller 1961-)와 같은 예술가들은 나선형 미끄럼틀과 회전하는 침대 등을 설치해 조용하고 진지하기만 한 미술관을 ‘체험과 활동의 장’으로 만들었고, 데미안 허스트(Damien Steven Hirst, 1965)는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철학적(?) 이름을 붙인 거대 박제상어를 갤러리로 가지고 들어왔죠.
미술시장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거대하고 화려한 미술관과 갤러리가 속속 생겨나고 있고, 사람들은 언론이나 SNS를 통해 알게 된 작품을 보기 위해 수 분, 길게는 수 시간 기다리기를 주저하지 않죠. 당연히 그중 일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마음에 드는 작품에 투자하기도 하고요. 뿐만 아닙니다. 작가들은 자신의 몸값,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일례로 허스트는 200점이 넘는 자신의 작품을 전속 화상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경매장으로 옮겨 판매하는 새로운 유통 실험을 전개했으며, 기업인이자 광고 재벌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와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죠.
기술의 발전도 미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22년 8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AI에 의해 만들어진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란 제목의 그림이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건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참고로 이 작품의 작가 이름은 ‘미드저니를 사용한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 via Midjourney)’이었습니다. 즉, 이 그림은 앨런이 직접 그린 게 아니라, 앨런이 미드저니라는 AI 프로그램에 입력한 명령어에 맞춰 ‘그려진’ 작품이었던 거죠. 논쟁 끝에 1등 상금은 앨런의 차지가 되었지만, 이 사건은 이후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기술과 예술의 관계,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심도 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런 변화들과 더 많이, 더 자주 마주하게 될 겁니다. 심지어 어떤 변화들은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형태 혹은 스케일로 다가올 수도 있겠죠.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미술은 대체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요. 아니, 나아가 이 세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혹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은 다가올 미래에도 같은 대우를 받게 될까요? 우리의 ‘삶’은 대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