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 위에 세워진 이타적인 관계
“평생을 함께 할 친구가 3명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다” 라는 말 만큼 폭력적인 말이 있을까. 환경이 어려워서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할 수도 있고, 성인이 되어서도 먹고 살기에 급급해 친구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고 유지하는 것도 어느정도 삶이 안정화가 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친구가 없다 한들 함부로 그 삶을 성공이다 아니다 말할 수 있을까. 성공까지 들먹일 정도로 친구라는 게 본인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영역일까. 이 말에 이렇게 민감하게 구는 이유는 나야 말로 그 공식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명이 몰려 있으면 쉽게 피로해지는 성향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함께 있다보면 예민해지고 상처도 잘 받는다. 그럼에도 이 말을 꽤 신봉했었기에, 친구가 없으면 인성적으로 부족한 것 같았고 실제로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이 떨어졌다 싶으면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릴 적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어릴 적부터 언니들과 복닥거리며 성장한 탓인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했지만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는 것도 좋아했다. 정확히는 혼자 있으면 불안한 타입이었다. 그러면서도 의지하는 식의 관계가 싫어서 ‘진실한 우정’에 대해 꽤나 고민을 했었다. 이렇게 작정하고 고민을 하니 학창시절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가까워지는 친구들과 나는 어떤 감정과 자세를 취해야할 지 허둥댔던 것 같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각자 다른 삶의 경로로 적정한 거리두기를 하며 ‘긴 세월’에 기댄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성인이 되었을 때 나타났다. 결혼한 친구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는 없었다. 사회에서 만나는 친구들을 어릴 적 그들처럼 순수하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보이고 내 취향과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보였다. 그런 요소로 사람을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다 보니 더 이상 나에게 우정은 없는 건가 싶었다.
“인생에서 친구는 소중하다”는 명제를 여전히 신봉했던 나는 내 가족 없이 싱글로 계속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친구에 대한 간절함은 더 강해졌다. 즉, 가족이 없는 40대 싱글에게 혼자 고립되지 않고 사회성의 촉을 유지시켜줄 캐주얼한 관계는 친구라고 여긴 것이다. 20대 때 열심히 봤던 미드 섹스앤더시티의 영향도 컸다. 성공한 40대 뉴요커 여성들은 그 자체로도 화려하지만, 매주 토요일 잘 차려 입고 브런치를 같이 먹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완벽했다. 일과 사랑을 논할 수 있는 비슷한 입장의 친구들은 싱글로 초라하지 않게 살려면 필요한 요소처럼 보였다. 이 때에도 ‘진정한 친구’의 정의는 여전히 미궁이었기에 우정에 대한 입장은 더 부자연스러워졌다.
다행히 나에게 함께 직장의 노고와 불안한 미래를 털어 놓을 미혼의 친구들이 있었다. 일하는 분야는 달랐지만 여행과 예술을 좋아하고 정치에 대한 입장 – 진보 vs. 보수 차원에서만 본다면 – 도 비슷했다. 비슷한 입장의 우리는 자주 만나서 여행도 다니고 식사도 하며 일상의 헛헛함이나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수다를 많이 나눴다. 나는 중 한 명은 이사할 집도 소개해 주어 가까운 동네에 살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나의 완급조절은 무너졌다. 마흔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비슷한 싱글 친구라는 점에서 나는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품앗이 수준의 동지의식을 기대해도 된다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 마침 깊은 우울증이 시작되고 말았다. 번아웃으로 퇴사를 하고 칩거 생활을 했을 때 나는 이 친구에게 가족 같은 기대를 했지만, 친구는 나의 반복되는 우울한 대화에 지쳤는데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다. 마치 가족에게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미란다의 출산을 함께하고, 사만다의 폐경을 축하했던 ‘섹스앤더시티’ 속 주인공들처럼 인생의 동고동락을 함께할 줄 알았는데 내 우정은 10년 동안 여행과 여러 기념일을 함께 하면서도 어려움 앞에서는 소멸해 버린 듯했다. 우울증은 심해지는 와중에 평소 의심했던 ‘진정한 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다들 그렇게 말하는 진정한 우정은 어디 있는가’
‘그 우정이 느껴지지 않는 데 나는 왜 초라함을 느낄까’
혼자의 삶을 살고, 어릴 적 친구들이 결혼을 하면서 나는 싱글 친구들을 ‘나를 외롭게 해 주지 않을 동지’로 여기고 있었다. ‘이 싱글 친구마저 멀어지면 나는 혼자가 되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감도 함께 말이다. 우울증에서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친구와의 거리 변화가 더 힘들었다. 그렇다고 참으면서 관계를 유지하자니 혼자가 될 두려움으로 나를 속이는 것 같은 비굴한 감정이 들었다. 어떤 경우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내 마음 밭은 건강하지 못했다. 나는 가만히 생각했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위만 직시했다. 친구의 서운한 행동에 서운하다고 표현하지 못했다. 속으로 삭히고 관계를 이어가는 데에만 주력했던 것이다.
--- 하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