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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enye Kwon Feb 19. 2021

#4. 사랑

- 유일하게 감정에 충실해도 되는 영역

올해로 마흔네 살에 접어든 나는 미혼이다. 동거도 하지 않는 혼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나에게 사랑은 먼 개념이 아니다. 눈에 띄게 예쁜 편은 아니지만 아주 매력이 없지는 않은 지 20대와 30대까지 연애의 공백기는 별로 없었다. 그동안의 연애를 보면 8년을 넘게 만난 긴 연애를 넘어 2주도 못 가서 헤어진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2~3년은 만나는 편이었다.

그중 가장 긴 연애였던 8년의 연애는 대학교 때 만난 친구였다. 그 친구도 나도 4학년 때 만났지만 둘 다 열심히 공부도 하고 취업준비도 하며 성실하게 연애를 했다. 졸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결혼 적령기가 되었고 그때 그 친구와 나는 결혼을 해도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 젊음은 그 친구와의 연애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결국 프러포즈를 거절했다.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했지만 내 안에서는 희미해도 명확하게 집히는 먹먹함이 있었다. 그것은 자유를 구속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내게 사랑은 여전히 판타지인데 결혼을 하면 현실에 모두 꺼져버릴 것 같았다.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에게 ‘사랑’은 인생의 파트너 혹은 동거인을 찾는 일과 연관이 없다. ‘사랑’에 있어 판타지는 여전하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을 만났을 때만 울리는 ‘떨림’이 있고, 흐려지지 않은 공통된 연결고리를 느껴야 하고, 그래서 함께 있으면 지겹지 않는 것이 내가 버리지 못하는 ‘사랑의 판타지’이다. 그런 감정이 차고 넘쳐 같이 살지 않으면 힘들 정도가 되었을 때. 바로 그 시점에 결혼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이런 과정으로 배우자를 만나겠지만, 간혹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자를 선택할 때 살짝 감도는 감정이나 점화(ignitor)정도의 역할만 기대하는 경우도 본다. 이런 경우까지는 아니더라도 흔히 하는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 혹은 ‘배우자를 선택한다’라는 말은 듣기가 불편하다. ‘사랑하는 상대’를 ‘외로움을 상쇄해 줄 한낮 동거인’으로 격하시키는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말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상대를 사랑할 준비와 태도의 뉘앙스는 전혀 없이 누가 누구를 선택한다는 말인가. 그러기 전에 나는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을 준비는 되어 있는가. 이것은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찌 보면 팍팍한 삶에서 가장 감성적일 수 있는 영역, 나의 감정에 가장 충실해도 되는 영역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혼자서 기분 좋게 떠올리는 추억이 있다. 30대 초반 나는 영국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주변 유럽 국가를 돌아보기로 했다. 여행 루트는 포르투갈 – 스페인 – 이탈리아였다. 평소에도 관심이 많은 이탈리아에 비중을 두고, 리스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만 살짝 본 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비행기 티켓도 리스본 in – 베네치아 out이었다. 이탈리아 중에서도 신비로운 베네치아에 며칠을 묵을 생각에 베네치아 마르코폴로 공항 out 예매를 한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어도 배우고, 어떻게 하면 이탈리아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하던 때였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일종의 식전 애피타이저였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여행을 하는데 마드리드에서 소매치기 시도를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잃은 건 없지만 매일 매고 다녀야 할 크로스 백 안쪽 면이 길게 찢어졌다. 찢어진 결을 보니 꽤 날카로운 면도날이었고 조금만 안쪽으로 댔으면 내 배를 찌를 수도 있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마음 둘 곳 없이 생경한 낯섦이 주는 긴장감이 슬슬 지쳐갔다. 게다가 마드리드는 너무 거대하고 무미건조했다. 이래저래 마음이 상한 나는 바로 다음날 오전에 떠나는 바르셀로나 행 기차를 예매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나 온 바르셀로나는 곡선의 도시였다. 약간의 오기 같은 마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훤칠한 키의 잘 생긴 스페인 남자였다. 그는 숙소를 찾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나는 근방까지 와서 길을 헤맨 것이다. 그는 주소를 보더니 금세 숙소를 찾아 주었다. 마드리드와 달리 기분 좋은 시작이구나 싶었는데 그가 내 연락처를 물으며 저녁에 만나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의 나는 누군가와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어 할 정도로 혼자의 시간이 길었었다. 그런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출근길이라며 저녁 약속을 잡고 홀연히 갔다.


‘와우, 현지인과 데이트라니!’


나는 여행지의 판타지를 제대로 실현한 기분이었다. 그날 저녁 마침 금요일이라 도시는 들떠 있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온 그는 오전과 다른 차림이었다. 집에 들렀다 온 모양이다. 그의 안내로 유명하다는 로컬 레스토랑에 가서 타파스와 샹그리아를 먹고 마셨다. 한껏 건조했던 몸에 감성이 깃드는 기분이었다. 영어를 잘했던 그는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울 내 영어를 잘 이해해주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해 긴 데이트 시간이 전혀 지겹지 않았다. 서로의 SNS 주소를 나누고 이틀 뒤 나는 이탈리아로 떠났다. 짧지만 강한 만남이었던 터라 좋은 추억 만든 것 정도로 여기면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곤 했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며칠을 보내다 오랜만에 인터넷이 되는 숙소에 머물게 되어 내 SNS 계정에 접속을 했는데, 그로부터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부분은 ‘보고 싶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다시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메시지를 본 나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마와 아시시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보다 가도 그와의 데이트 기억이 문득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렌체였던 당시 이후 일정은 이번 여행의 목표에 다름 없는 베네치아였다. 남은 예산과 일정은 모두 베네치아의 것이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 남자의 메시지 앞에서 갈등이 일었다. 마음을 잡으려 피렌체 시내를 돌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에서 결론은 내려져 있었다.

급히 숙소로 돌아온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주고, 바로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연수를 올 때부터 계획한 베네치아였지만 우연한 데이트의 설렘 앞에서는 얼마든지 취소될 수 있었다. 머리와 계획보다 감성에 충실한 나는 거칠 것이 없었다. 바르셀로나 숙소를 예약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봤다. 모두가 감탄하는 피렌체 광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다음날 바르셀로나에서 그를 만날 생각에 실실 웃음만 나오고 있었다.


호기롭게 바르셀로나에 갔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당시 나는 pay phone을 쓰고 있었고 숙소에서도 인터넷을 쓸 수 없어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이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잘 연락이 되지 않거나, 메시지를 보내도 곧 전화하겠다는 메시지만 왔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고 결국 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피렌체 광장처럼 내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내가 뭘 한 거지?’

‘난 왜 이렇게 경솔하지? 어쩌다가 그 알지도 못한 남자 때문에 계획을 다 망친 거지?’


며칠을 이런저런 생각으로 보내다 베네치아 out 행 비행기를 타러 마르코 폴로 공항에 왔다. 20분 거리에 산마르코 광장이 있었지만 갈 만한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결국 텅 빈 마음을 끌고 런던으로 복귀를 했다.


한동안 이 사건은 너무 창피해서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했다. 나 스스로도 처리 못해 떠오를 때마다 애써 누르곤 했다. 그 이후 그는 ‘미안하다, 다음에 꼭 만나자’ 같은 메신저를 여러 번 보냈다. 알다 가도 모를 행동이지만 내가 그들의 언어 온도에 둔감했던 것이리라.


그때 아쉬움에 사 온 곤돌라가 그려진 작은 보석함은 내 화장대 위에 있다. 아직 베네치아에 못 가본 나는 보석함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꼭 가리라며 다짐을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당시를 상기해 본다.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는가. 계획대로 베네치아에 갔다면 어떠했을까’


다행인 건 다시 생각해도 베네치아에 간 것보다, 우연히 데이트 한 남자를 만나러 바르셀로나에 간 건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결과는 쓸쓸했지만, 베네치아에 갔다면 그를 포기한 나 자신에 대해 더 쓸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런 것 같다. 조용한 자족에서 벗어나 나를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게 하고, 나 자체로 꽃 피우게 하려는 에너지를 준다. 10년 전 일이지만 피렌체 숙소에서 바르셀로나 행 티켓을 끊었을 때의 들뜬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로마와 아시시, 피렌체의 멋들어진 건축과 그림도 나를 그렇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게 사랑의 힘인 것 같다.


마흔이 넘은 나에게 이런 설렘의 기회는 현저히 줄었다. 기회만 줄은 게 아니고, ‘남성’,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처럼 여기는 시선마저 느낀다. 나이 든 사람의 ‘사랑’에 관대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조차 ‘사랑’의 감정을 멀리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사랑’을 젊은이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 풍토나 흔히 들리는 중년 부부의 ‘정으로 산다’는 말들에 나도 모르게 젖어든다.

하지만 사랑은 결실의 유무와 상관없이 타인과 교감하겠다는 노력과 시도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건 잠재적인 남자 친구가 없다 해도 필요하다. 결혼한 이들에게도 ‘정과 의리’보다는 ‘사랑’의 감정이 소중하고, 나이 든 싱글에게도 ‘같이 살 적당한 배우자’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의미가 있다.

나에게 사랑할 기회는 분명히 줄었다. 하지만 사랑 전에 찾아오는 설렘까지 버리기에 내 인생은 너무 많이 남았다. 내가 사랑할 사람,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상상하는 것만큼 삶을 생기 있게 해 주는 건 없다. 그건 베네치아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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