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에서 돈은 산소통 안에 든 산소와 같다
돈에 대한 입장은 항상 나를 괴롭혀 왔다. 구속되지 않고 의연하게 대하면서도 격을 갖춘 좋은 물건도 갖고 싶었다. 적당히 소유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적당한 자유 역시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적당히’라는 기준은 매년 심지어 매 순간 바뀌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입장을 정한다는 건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과 괘를 같이한다.
14년 간 직장 생활을 했지만 월급을 대가로 자유와 영혼을 빼기는 느낌은 여전했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야근과 회식을 번갈아 하다 보면 일주일 내내 하루 18시간 정도 회사에 매여 있곤 했다. 그러다 보면 회사 업무와 인간관계들이 내 생활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에서 '일 – 돈 – 자아'의 균형이 어려웠고, 시간이 갈수록 돈을 위해 자아를 헌납한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30대 초반 일과 사생활의 균형은 거의 무너진 상태였던 나는 이런 생각이 극에 달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즉 돈에 대한 내 불만을 가장 크게 표출한 게 ‘퇴사 후 쿠바 여행’이었다. 마침 그때 우리 회사에는 큰 변화 속에 있었다. 업계의 흡수 합병이 한창이었고 우리 회사는 나름의 독자적인 입지를 유지했는데, 업계 1위의 외국계 회사가 중간 수준의 외국계 회사를 흡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흡수되지 못한 인력이 우리 회사로 대거 입사한 것이다. 그들은 특유의 친화적인 태도로 다가왔지만 기존의 문화를 따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소란스러웠고 이리저리 말을 만들며 드러나지 않는 파벌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본부장은 새로 온 이사진에 밀려 퇴사를 했다. 조용하고 우직한 기존 사람들과 달리 새로 유입된 그들은 밝으면서도 소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매일같이 오래 있던 사람들의 퇴사와 새로운 사람들이 입사가 반복되었다. 본부장이 사라진 우리 팀을 차지하려는 이사진들의 부름에 부장님은 매일 점심과 저녁 약속이 잡혔고, 부장님의 한숨에서 과장밖에 안된 나도 느낄 만큼 소리 없는 정치가 느껴졌다. 애초에 그런 판에 관심이 없었고 환멸을 느끼던 나였기에 그들의 이런 '세 몰이'에 멀미가 났다. 마침 돈 대신 자유를 선택하는 삶의 형태에 고심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퇴사를 하고 쿠바에 갔다.
“왜 쿠바로 갔어?”
쿠바 여행을 두고 지금까지 내내 듣는 질문이다. 그러면 나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같은 대답을 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으려고”
물론 나는 그 대안 찾기에 실패했다. 대안은커녕 시들어가는 사회주의와 독버섯처럼 피어난 부정부패, 그리고 드러내지 못해 더 은밀하고 어설픈 ‘자본 추종적 태도’만 발견했다. 그나마 10년 전 쿠바에 갔을 때는 조금 덜했었다. 궁핍에 대한 고충을 토로할지 언정 ‘돈을 따르는 태도’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에 간 쿠바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미국과 수교 후 개방의 영향인지 10년 전 머물었던 숙소와 친구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작고 아담했던 숙소를 넓히고 고치면서도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불평만 했다. 쿠바에서 그 정도의 공사를 할 정도면 꽤 부유한 층에 속하는 것일 텐데, 얼굴은 예전보다 어두웠다. 골목길에도 밝게 웃어주던 사람들 대신 리큐어 상점 앞에 초조하게 줄을 서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물론 작은 숙소 운영에 자족하고, 길거리에서 하릴없이 수다만 떠는 모습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시장이 개방되고 자본이 유입되어서 조금 더 발전적이고 좋은 삶을 누리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유입된 자본 앞에서 쿠바인들은 불나방 떼처럼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소비활동을 배운 적이 없는 그들에게 이런 모습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배급품으로 기본적인 생필품을 충당하고, 교육과 구직은 나라에서 알아서 해 주었다. 이러한 환경에 익숙한 그들은 ‘소유 자본’을 어떻게 ‘잘 소비하는지’ 모르는 듯했고 럼주며 시가 따위를 소비하는 데에만 사용할 줄 아는 것 같았다. 이런 식의 가난한 이들의 가벼운 소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경기가 나빠지면 술과 담배의 소비가 늘고, 가난한 지역에서 코카콜라 같은 탄산음료가 더 소비되는 것이 그렇다. 한 번도 자본을 자신의 의지대로 운영해본 적인 없는 쿠바인들에게 이런 들뜸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돈에 익숙한 우리들은 의연할까. 달뜬 표정으로 리큐어 상점에 줄 서 있는 쿠바노를 보면서 돈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나 역시 그들처럼 우왕좌왕하고 있지 않은 지 돌아보게 된다.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자본은 더 다양한 형태로 복잡한 메커니즘을 탄다. 그런 돈의 실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견고하게 갖추어야 할 것이 바로 돈에 대한 입장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대안 찾기’에는 실패했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쿠바 여행기를 썼다. 또래의 친구들은 과장 – 차장 승진을 하고, 집을 옮기며 자산을 늘려갈 때 나는 모은 돈을 써가며 수개월 간 글을 써 내려갔다. 계획한 일이었지만 마음은 계획처럼 올곧지 못했다. ‘벌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긍심도 있었지만 사회에 속하지 못한 부적응자가 된 것 같았다. 구름 위에 마냥 세상만사에 초탈한 자유를 누리다 가도 지하 바닥으로 꺼질 것 같은 허탈감이 매일 반복되었다. 나는 그때 돈의 효용을 깨달을 것 같다. ‘돈’은 그 자체보다 부가적으로 가진 이미지가 더 강했다. ‘돈’을 번다는 행위는 분명 성취감과 사회적 인간으로 인정을 의미했다. 적어도 자본주의에서는 그랬다. 그 이미지를 간과했고 결국 그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쿠바 다이어리’를 출간한 후 작가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성급히 취직을 했다. 그리고 쿠바로 떠나기 전 미덥지 않게 봤던 글로벌 대행사였다. 업무 성격은 같았지만 글로벌 기업의 매출 압박은 심했고, 매출과 팀 관리를 불도저처럼 밀어 부쳐야 했던 팀장 자리는 내게 너무 버거웠다. 일에 대한 성취감이나 동료의식은 사치였다. 그저 매출을 위해 상대 팀과의 경쟁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남들보다 약한 ‘돈벌이의 당위성’이 다시 발동했다. 누구는 회사에 다닐 명분을 만들기 위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차를 바꾼다고 했다. 의식적으로 ‘돈이 필요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가족 부양이라는 책임이 없는 미혼 팀장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에게 그것은 내 삶을 파괴하는 일 같았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을 마치 쓰레기 같은 감정 찌꺼기로 채우고 대가로 월급을 받는 거였다. 그리고 그 대가는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결국 나는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 진단을 받고 1년 만에 퇴사를 했다. 이후 글을 쓰며 살지 다시 업계로 돌아갈지 핑퐁 게임 같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처음 쿠바로 떠났을 때부터 10년 가까이 이어진 고민이었지만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돈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였는가’
‘아니 돈을 제대로 바라본 적은 있었는가’
남들의 돈에 대한 태도를 비난할 줄만 알았지, 돈에 초연하게 구는 내 태도가 위선인 줄은 몰랐다. 마흔이 넘어가고 사회에 나의 효용가치를 증명해야 할 시점이 되니 이제야 현실이 보이는 것이다. 100세 인생에서 경제활동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뭉근한 걱정이 올라올 때마다 ‘삶’과 연결된 ‘돈의 힘’을 느낀다. 여기에는 소비하고 누리는 기능적 차원도 있겠지만, 경제활동을 통한 성취감이나 사회적 주체로서의 존재감도 포함된다. 노동이든 자본 수익이든 돈을 버는 행위는 분명 인간을 고립되지 않게 한다. 즉 그 행위 자체로도 의미가 깊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 온 나에게 사회적 주체의 존재감은 연봉으로 확인되었다. 그랬으니 글 쓰던 시절 우울감은 경제활동의 중단에서 오는 성취감의 부재와 이로 인한 자존감 하락 때문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야 나는 돈을 버는 행위의 소중함을 인정한다. 자본주의가 없는 쿠바에서 대안을 찾으려 했고, 가능하면 그곳에서 살려는 마음까지 먹었던 시절 조차 자본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건 이전에 쌓은 노력에 기대어 잠깐의 자유를 누린 것뿐이다.
‘돈’을 향한 맹목적 추종이나 경시 모두 불안하다. 추종과 경시는 돈에 대한 나의 시선과 태도이다. 이제 이 미흡한 입장을 버리고 ‘돈을 버는 행위’에 관심을 옮겨보고자 한다. 돈을 버는 방식을 지속 가능하게 내 삶에 반영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이 깊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운'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조율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다행인 건 그 방안을 찾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린다면 괴로움과 굴욕감을 꾹 참고 돈을 벌 만큼의 용기는 생겼다. 이 용기는 나의 위선을 인정한 용기일 테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산소통 안의 산소와 같다.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산소이지만 산소통을 구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이 사실을 마흔 넘은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