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관점에서 환경 관점’으로 전환하는 최초의 혁신기술, 수소환원제철
전 지구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탄소중립 이슈
지난 2015년 파리 협약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1.5℃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선진국-개도국이 모두가 참여하는 최초의 기후 합의였다. 최근 6차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보고서를 통해 그간 논란이 되었던 ‘인간의 활동이 온난화 현상에 영향을 끼친 것이 과학적으로 명백’하다는 결론 또한 도출되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스스로 정해 국제사회에 약속하는 자발적 실천에 따라 유럽 각국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도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특히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이 주를 이루며 전체 배출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 일본에 이어 미국도 바이든 정부의 시작과 함께 동참하면서, 탄소 중립은 글로벌 신 패러다임이 되었다. 탄소 중립은 2050년까지 배출한 탄소와 대책을 세워 흡수한 탄소의 량을 맞추어 실질적인 탄소배출량을 zero로 하는 방안이다.
철강산업이 직면한 도전 상황
석탄은 철광석의 환원(reduction)을 위해서 뿐 아니라, 반응에 필요한 온도 유지, 용융 및 제품화를 위한 가열, 전력생산 등의 석탄에너지 최적화를 통해 생산된 철을 경제적인 소재(commodity)로 전방 산업에 공급하고 있다. 비록 고유 반응인 환원 반응(reduction reaction)에 대략 50% 정도 석탄이 활용되고, 나머지는 단순 열원으로 활용되지만, 철강은 화석연료로부터 배출되는 CO2의 7~9%를, 전체 산업의 배출량 비중이 24%에 달하고 있어서 환경적인 부담을 갖는 산업이 되었다. 반면 세계 인구의 증가와 에너지 전환 등에 필요한 철강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공급량을 유지 혹은 증대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철강업은 배출가스 관리에서부터 핵심 공정인 야금 기술의 중대한 전환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석탄화력발전부문과 철강산업은 CO2 배출에 가장 높은 관련 산업으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기존 공정의 조기 폐쇄와 제조공정의 근본적인 혁신이 요청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유럽집행위원회는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한 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탄소 국경 조정제도(CBAM)를 도입 예고하고 있다. 제도의 취지는 결국 탄소 유출(carbon leakage)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기후 위기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가 동참해야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고 철강산업은 항상 그 중심에 서 있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한 혁신기술의 등장
근대 철강기술은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인류의 삶에 절대적인 기여 했다. 나무를 건류하여 사용했던 목탄 사용 제철기술로 인해 순식간에 주변 삼림파괴의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이후 개발된 석탄 사용 제철법은 석탄의 열 응집력이 낮아 고온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 어렵고, 석탄의 유황 성분이 철강제품에 그대로 옮겨지는 문제점을 가졌다. 이를 해결한 영국의 다비(Darby)가 발견한 목탄 대용 석탄의 이용기술은 코크스였다. 이후 석탄을 가열하여 코크스를 만들어 용광로에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급증한 철강 생산량을 통해 산업혁명을 가속화시켰다. 현재는 상식이 된 철로 만든 교량, 선박, 건물, 기계장치 등 모든 산업의 기본 소재로 공급되는 혁신기술이었다.
또 하나의 혁신기술은 1950년 초에 Austria의 Voest Alpine사가 개발한 LD제강법이다. 개발 당시만 해도 주류 제강법이었던 평로 법을 제치고 청정한 강철을 고속으로 생산하여 다시 한번 철강사용의 보편화를 이끌게 되었다. LD전로는 오스트리아 뵈스트알피네 사의 린쯔(Linz), 도나비쯔(Donawitz) 제철소의 첫자의 알파벳을 따온 신 제강법의 명칭이다. 제련된 고온의 쇳물은 석탄으로 제조된 탓에 탄소가 포화되어 중량비로 4.5%까지 높아진 탓에 너무 단단하여 형상을 만들기 어렵고 깨지기 쉬운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대로부터 쇳물 속에 있는 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나무 막대기로 휘젔거나 산업혁명기에는 공기를 불어넣어 탈탄 처리를 하였다. 이를 제강(steelmaking)이라 하고 이전까지는 평로(open hearth)라는 설비가 유용하게 활용되었고, 이후 적극적인 압축공기를 활용한 설비인 염기성 전로(Converter)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공기 사용의 문제점은 공기 중의 질소(N2)가 용강 내부에 고용되어 다시 철강이 딱딱해지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21%만이 포함된 산소만을 이용하였기에 처리량에 비해 사용 후 처리해야 할 가스의 량이 커지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대안으로 공기 대신 순산소를 사용하는 방법이 제안되었다. 순산소를 대규모 철강제조에 사용한다는 발상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아니 무모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산소 제조를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여 공기 중의 산소를 분리해 내야 하기에 현재에도 산소제조는 전력비용이 부담이 되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개의 제철소에서 시험조업을 통해 비록 고가의 산소를 사용하는 부담은 있지만 생산성을 기존 공기법에 비해 5배 이상 높일 수 있고, 질소 흡수에 따른 품질 저하를 방지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일본 철강산업에서 도입 및 대규모 투자를 통해 철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의 두 건의 혁신기술은 모두 현대의 철강산업이 급성장하여 생수보다 싼 소재로 공급될 수 있는 혁신기술이었는데 공통점은 효율성과 경제성 관점에서 개발된 상식적인 동기를 가졌다.
혁신, 시대적 여건, 발상의 전환, 결단
기존 질서를 점유하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그 외의 것을 대안, 대체(alternativ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대안학교, 대체의학, 그리고 대체공정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기존 질서에 도전하여 자신이 표준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기존 질서보다 더 나은 것을 증명해야 한다. 예컨대 더 큰 경제성, 편리함, 매력도, 그리고 안정성과 확장성 등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대두된 전 세계적 흐름 중의 하나인 탄소의 과다한 사용 버리기 시도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더 나은'것에 대한 관점이 크게 변경되었다. 즉, 대안이 주류로 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상식적인 판단기준이 달라졌다. 인류는 그동안 생산성, 효율을 개선하는 것을 증명하는 대체기술이 주류로 되는 과정을 지지해 왔다. 하지만 21세기 이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기후환경의 급속한 악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새로운 관점인 '환경적 관점(ecological perspective)'에서 익숙한 효율과 경제성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선택하고 있다.
수소환원 제철기술은 기존의 석탄에서 얻어진 일산화탄소와 함께 발생된 열을 이용하여 경제적으로 높은 효율로 생산하던 방법을 버리고 그린 수소와 그린 전력으로 제철하는 방식이다. 100여 년 전에 이미 원리적으로 잘 알려진 기술이지만 석탄에 비할 수 없는 비 경제성 때문에 외면하던 기술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총체적인 여파를 고려하면 불편하고 비싸 보이는 수소 사용이 오히려 미래에는 더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우세하게 되었다. 이 기술개발의 상업적 실현을 앞 당기기 위해서는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각 개인이 누리게 될 기후환경적 가치를 고려하여 조금씩 양보하고 감내하는 모든 측면에서의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수소환원 제철기술은 근대 철강산업의 혁신을 가져온 코크스 개발과 LD전로에 이어 철강 제조를 ‘산업관점에서 환경 관점’으로 전환하여 적용하는 최초의 혁신 공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