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며칠간 하루 종일 머리에 먹구름이 끼면서 온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오는 것을 느꼈다. 밥맛이 없어져서 음식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영구치를 뺀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그 자리에 뭔가를 박는다는 시술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들렸다. 혹시나 이를 빼지 않고 살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지 한 군데는 더 가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임플란트이지, 현대판 '틀니'가 아닌가? 나는 진단만 받을 거니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작업실 앞 대로변에 ‘임플란트 센터’라며 광고를 하고 있는 새로 생긴 병원에 한 번 더 가보기로 했다.
병원은 처음 간 동네 병원보다 내부가 크고 깨끗했으며, 의사 선생님은 한 명인데 비해 직원과 진료의자가 많았다. 그런데, 치아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기계가 중간에 자꾸 멈춰 서서 몇 번을 반복했다. 나는 이러다 방사선에 피폭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급기야는 기계의 가동을 멈추고 직원이 기기업체에 연락을 해서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다른 환자를 치료 중인 의사 선생님까지 나와서 자신의 치아를 가지고 몇 번의 시험촬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은 문제가 없었는데, 유난히 미동도 안 하고 숨죽여있던 내 치아를 찍을 때만 기계가 멈추었다.
혹시나 해서 내가 앞니 치아들이 잘 물리지 않아서 촬영의 오류가 난 게 아닐까 의견을 건넸더니, 직원은 바로 뭔가가 떠오른 듯 "아, 오픈 바이트 (Open Bite: 위아래 앞니가 물리지 않고 벌어져 있는 개방교합)이시네요!"라고 하더니, 입에 흰색의 원통형 스펀지 같은 것을 물고 있으라고 건넸다. 그랬더니 촬영이 문제없이 해결되었다. 때로는 전문가의 치밀한 지식보다, 단순한 시선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나는 엑스레이를 찍는 사소한 것에도 이렇게 우왕좌왕한다면, 그 어렵다는 임플란트 시술을 맡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치과의자에 앉기가 두려웠는데, 마침 도망갈 핑계를 찾은 듯했고, 그냥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우 친절한 직원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병원문을 나서려는 나를 잡았고, 스케일링 정도는 하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동네 치과에 가게 된다면 다른 치과에 다녀온 것이 들통이 나서 의리가 없는 환자처럼 보일 텐데, 그냥 검진만 하고 갈걸 그랬다고 곧바로 후회를 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검진을 갔는데 스케일링도 권하지 않고 어금니를 먼저 뽑자고 한 동네 치과가 서운하기도 했다. 치위생사 선생님은 오랜만에 검진을 하는 것 치고는 치석이 별로 심하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돌 수준의 외모를 하고 있는 젊은 의사 선생님은 동네 치과의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치아 아래에만 염증이 생겨서 '빼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병원이 새로 생겨 더 크고 좋지만, 어차피 진단이 같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면 처음 이를 진단한 동네 치과의사 선생님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왠지 그렇게 하는 게 의리를 지키는 일 같았다. 그냥 동네 치과의사 선생님을 응원하고 싶었다.
데스크에서 이 날 치료받은 내역을 수납하려는데, 직원이 전단지 같은 종이를 건네며 ‘뼈이식’과 ‘내비게이션'이 포함된 '당일 임플란트' 비용을 안내해 주었다. 특정 기간 동안 ‘이벤트 할인’을 적용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당시 그 모든 단어들이 생소했다. 특히 병원에서 ‘이벤트’나 ‘할인’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마치 기간이 임박한 백화점 세일용품을 처분하듯이 진료를 안내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평생 함께 한 양쪽의 어금니 두 개를 갑자기 잃게 생겼다는데, 추후 진료는커녕 심리적 충격도 추스르지 못한 상황에 대해 아무런 공감을 못하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묻지도 않은 '할인 이벤트' 홍보를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인지 의아했다.
나는 우선 가격과 '이벤트'의 문제보다는, 이 충격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각종 용어에 대해서도 익숙해져야 했다. 내가 사골국도 자동차도 아닌데 '뼈이식'과 '내비게이션'이란 또 뭐람!
데스크 직원은 당장 일정을 잡고 종이에 서명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나의 결정을 재촉하고 있었다.
"치아 두 개는 이제 보내줘야 돼요. 빨리 뽑지 않으면 옆으로 염증이 다 퍼져서 다른 이들도 뽑아야 돼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은 더 우울하고 급해졌다. 치아의 염증이 그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이 아닌 줄 나중에 알았는데, 잇몸염증에 대한 치과상식도 없고, 하필이면 시각적 상상력이 풍부한 내게 그 말은 두려움을 증가시켰다. 염증이 밀물처럼 스멀스멀 밀려 나와 주변의 치아와 잇몸을 마구 덮치는 장면이 그려졌다.
직원은 또한 이 치과가 ‘임플란트센터’라는 것을 강조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임플란트센터’ 같은 것은 따로 있거나 누가 자격을 주어야 쓸 수 있는 명칭이 아니었다. 임플란트 시술은 치과대학 정규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학교 밖 세미나나 학회 등에서 따로 시술을 익혀야 하는 분야라 임상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임플란트센터라고 하는 곳은 임플란트를 대단히 잘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다른 대안적 치료보다 임플란트를 많이 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임플란트 치료가 나쁜 건 아니지만, 수술전문병원에 가면 수술을 주로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라고나 할까?
나는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병원에서 진료 대신 ‘가격할인’이나 '이벤트'라는 단어를 듣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마땅히 받아야 하는 치료라면 가격을 흥정하고 싶지는 않을뿐더러, 가격을 흥정하는 병원에 대해서는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내 몸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비용을 깎아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저럴까 싶어서, 내가 돈이 없게 생겼나, 나와서 잠시 내 차림새를 거울로 비춰 보기도 했다.
두 개의 병원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면 동네 병원으로 다시 가야 할 것처럼 느꼈는데, 임플란트가 쉬워 보여도 많은 경험이 필요한 중요한 시술이니 이왕이면 큰 병원에 한 번 가보는 게 어떠냐는 식구들의 말에 마지막으로 가까운 대학병원에도 가보기로 했다.
걱정을 하는 건지 신이 난 건지, 주변 지인들은 옆 동네, 뒷 동네, 건너 건너 사는 그들의 이웃과 또 그 이웃이 아는 누군가가 임플란트 시술을 하고 마비가 왔다든지, 감각을 잃어다든지, 심한 염증이 생겼다든지, 밥을 못 먹었다든지, 언어 장애가 생겼다든지, 몹시 아파서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다는 등의 온갖 부정적인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걱정을 빙자한 불안감을 내게 들이붓기 시작했다. 나의 불행에 대한 반응을 보면 사람들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대학병원에 들어서긴 했는데, 접수를 하는 것에 있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치과대학 안에서도 여러 전문 진료과목이 있었는데, 내 증상이 여러 진료과목에 모두 해당되는 것 같아 혼란이 왔다.
치아를 살려야 하면 보존과를 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잇몸에 염증이 있다니 치주과를 가야 할 것도 같다가, 어금니 두 개 중 하나에는 크라운을 씌운 보철물이 있으니 보철과를 먼저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건가도 싶고, 임플란트를 하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구강 악안면외과나 임플란트센터라고 표기된 곳에 가서 접수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접수처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직원은 나의 상황을 듣더니 보존과를 먼저 가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이를 보존하고 싶은 게 맞으니 그게 적절해 보였는데, 나는 ‘보존과’라는 게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치아를 보존할 수 있다면, 왜 사람들이 치아를 보존하지 않고 보철이나 임플란트 치료부터 하는지 등 호기심이 일었다.
병원이 거의 처음이라 어리바리했던 나는, 치아가 안 좋은데 난데없이 앞에 있는 기계를 사용해서 심박수를 재서 달라는 말에 동굴같이 생긴 기계에 손목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동굴에 손을 넣으면 안에서 괴물 같은 기계가 내 손을 물거나 잡아먹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를 답답하게 지켜보던 직원은 손목이 아니라 팔을 넣는 거라 가르쳐주기도 했다. 손목에서 뛰고 있는 맥박을 재는 기계가 아니었던가 보다.
건물의 각 층마다 각기 다른 전문과들이 있었는데, 대기자들이 문 앞에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문의 진료는 6개월이 지나야 받을 수 있고, 전공의 진료도 괜찮냐고 묻길래, 당장 문제가 있는 걸 6개월이 지난 다음에 진료를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6개월 후면 염증이 다 퍼져서 악화되거나, 치아가 이미 빠져서 없어진 상태이지 않을까?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잠시 후 진료실 안에서 덩치가 크고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남자가 나타나서 따라오라고 했다. 학생인지 의사 선생님인지 모를 그를 따라 거대하고 복잡한 건물의 위압감을 이겨내며 낡고 오래된 사무실 안에 있는 진료 칸막이 안의 오래된 꾸질꾸질한 의자에 앉았다. 그곳은 보통 상상할 수 있는 깨끗하고 산뜻한 병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학병원에는 새로운 기기가 많다던데, 아무리 봐도 모든 게 낡아 있었고, 그래서 자꾸 또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병원의 인테리어도 심리적 안정감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치료라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사람이란 게 감성이 결합된 존재가 아닌가. 나는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기름때와 세월의 손때가 꼬질꼬질 베여있는 기계수리실의 고장 난 낡은 부품처럼 느껴졌다.
나를 앉힌 남자 선생님은 뭔가 어설프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나름 교과서적인 문진절차를 열심히 수행해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사소하지만 중요했을 것들을 자꾸 묻고 또 물으면서 내 입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리고 엑스레이 사진을 유심히 보면서 컴퓨터에 뭔가를 계속 써넣었다. 한참을 지나도 그는 계속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혹시 숙제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덩치는 커다란데 얼굴은 피곤한지 붉고 허옇게 다 일어나서 뭔가 안쓰러운 인상이었다. 그래도 친절과 성의를 다해 나름 열심히라 가서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었다. 대학병원 진료는 1분 아니면 3분 컷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로 느릿느릿 혹은 정성껏 물어본 걸 또 물어보고 해 본 걸 또 해보며 겨우 1교시 수업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중간중간 그의 고민에 찬 얼굴에 대고 나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했다. 마치 그가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데,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그러라고 한 것은 아니고, 나도 그가 필요할 때마다 간간히 내게 와서 물어보는 질문에 충실히 답변을 하며 있었기에 내가 미안할 상황도 아니긴 했다.
오래 앉아있다 보니 덕분에 긴장감과 두려움은 덜해졌지만, 내가 환자인지 사무실에 놀러 온 사람인지 분간이 가지 않기 시작했다. 환자인 내가 주인공이었고, 내 치아의 문제는 심각한 것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남들 공부하는데 옆에 앉아 훼방을 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한참을 지나니 이번엔 다른 의사 선생님이 와서 다시 일련의 절차를 반복하고 갔다. 그건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탐침검사(뾰족한 기구를 잇몸 안 쪽 깊숙이 집어넣는 검사)와 얼음조각 검사, 전기자극 검사와 같은 것이었다. 아프고 시리냐고 물었는데, 벌떡 일어나서 '당연히 찌르니까 자극이 있고 시리지 않겠냐'라고 되묻고 싶었으나, 표현은 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딱히 할 일이 없는 나는, 검진의 대상이 아니라 그 칸막이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인 정체 모를 남자의 행동을 뒤에서 하나하나 내가 검진하고 분석하는 것에 빠져있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길고양이가 내 스튜디오 통창 너머로 내가 하고 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듯이 말이다.
동네 병원에서 사진만 딱 보고 진단을 몇 문장으로 일축한 것에 비하면 확실히 뭔가 매뉴얼에 따른 연구자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그렇지만 재야에서 숙련이 된 동네의사 선생님과 같은 노련미는 없어서 치료를 맡겨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피곤하니까 내가 있는 칸에 잠시 와서 쉬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꾸 아늑하고 세련된 첨단 인테리어를 갖춘 온 동네 병원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여러 의료진들의 태도는 하나도 안 대단한 것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찾아내려는 것 같은 학구적인 것이었는데, 어쩌다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자적 모드로 같이 사진을 보고 회의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학생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나중에 온 의사 선생님은 손놀림이 더 빠르고 노련한 게 아마도 선임처럼 보였는데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치아를 한 번 살려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병원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