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랑니를 이식하는 시대

by 이영선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은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나는 거기에 적극 동의했다. 나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그리고 어떻게라는 방법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라 덩달아 신이 났다. 어차피 빼버려야 할 치아에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밑져야 본전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 선생님은 사진을 수십 번 확대해서 보여주더니, "한 치아 주변 모두에 검은 공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만 있는 것이 보이세요?"라고 물었다. 그건 단순히 치주질환이 원인이기보다는 오래전 신경치료를 한 치아가 크랙 (Crack: 금이 간 치아) 등으로 뿌리 쪽 염증이 위로 빠져나가지 못해 생긴 것일 수도 있으니 치아재식술(치아를 뽑아 치료를 하고 얼른 다시 제자리에 넣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거라 했다. 뿌리 상태가 안 좋으면 어차피 발치하려 했던 치아이니, 치아는 그저 발치한 상태가 되는 것이라 손해 볼 일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있던 치아를 막상 못쓰게 되더라도, 같은 쪽 치아에 마취가 되어있는 동안, 바로 옆에 있는 멀쩡한 사랑니를 이식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드디어 남겨둔 사랑니를 이식할 수 있는 게 가능한 시대가 도래한 것에 대해 신이 났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미 사랑니 이식술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면 나는 임플란트라는 추후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나는 사랑니를 이식해 본 보기 드문 사람들의 그룹에 속하고 싶었다. 나는 창의적인 예술가이니까 말이다. 참신한 어떤 것을 시도한다는 사실 앞에서 나의 공포증은 자취를 감추고 용감해졌다.


두 개의 옵션이나 가지고 있으니 갑자기 뭔가 든든해진 느낌이 들었다. 빼야 한다던 나머지 치아도 신경이 살아있고 충치가 있는 것은 아니니 치주과에서 잇몸치료를 우선 받아볼 것을 권했다. 나는 잇몸치료가 뭔지도 모른 채, 두 개의 치아를 모두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발걸음이 날아갈 듯했다. 다시 다른 층을 내려가 무겁게 생긴 방탄조끼 같은 것을 입고 CT를 찍었다. 시간을 보니 병원에 머문 지 2시간 반이 더 지나 있었다. 마감시간이라 치주과 진료실엔 나만 남았고, 다른 곳은 이미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거기에서도 처음엔 뭔가 어리숙해 보이는 선생님이 첫 문진을 하고, 조금 더 숙련되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마 대학병원은 그런 식으로 수련을 하는 체계인 듯했다. 그런데 예술가적 상상의 나래가 푹 꺼져버린 것은 바로 거기에서였다. 해당 의사 선생님은 희망 없는 회의적인 표정으로 동네 의사 선생님과 비슷한 의견을 바로 내어놓았다.


"두 치아의 수명이 이미 다 되었어요."


그는 나름 최대한 간접적인 표현을 써서 일축했다. 나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아까는 모든 모험적인 상황에 긍정적이었는데, 이제는 같은 상황이 모두 부정적으로 변했다. 3대 1로 역시나 빼야 하는 쪽의 판단이 더 우세해 보였다.


밝아졌던 하늘이 푹 주저앉았고 다시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꾸질꾸질한 사무실처럼 보이는 실내와는 달리 내가 앉아 있던 진료실 의자 앞에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와 연꽃들이 슬프도록 아름답게 눈에 들어왔다. 내 마음과 실내의 우울함과는 상관없이 외부의 풍경은 징그럽도록 아름다웠다.


앞서 방문한 보존과에서 1주일 후 어금니 재식 및 사랑니 이식에 대한 진료예약을 잡은 상태에서, 집에 오는데 모든 게 짜증이 나고 우울감이 밀려왔다. 하루 종일 치과에 견학을 가 있던 것처럼 심신이 지쳐있었는데, 병원 건물 앞 장미 정원에 우후죽순으로 피어있는 장미꽃들에게도 괜스레 짜증이 났다. "뾰족한 게 다 시들어 가지고...... 나도 집에 장미 화분 있거든!" 도도하게 생긴 장미꽃들이 내 시들어 버린 치아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좀 전까지 신나게 수술에 동의를 하고 모든 결정이 내려진 듯했는데,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는 서둘러 집에 와서 해당 수술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고, 오늘 경험한 여러 의사 선생님들의 말과 행동과 나의 상태를 계속 되새겨 보았다. 그런데 말이라는 게 들을 땐 분명하더라도 되새기면 자꾸 흩어지고 변형이 되어 서로 엉키고 혼란스럽게 되기 마련이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병원에 갔다가 온 것만으로도 없던 병이 생길 것 같았다.


전문가들이 한 번에 딱 정답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는데,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병원엔 만능신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나와 같은 사람들과 각자의 진료방향이 있을 뿐이다. 거기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필요도 반영이 된다. 세상일의 대부분은 정답이 아닌 상황에 따른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결국 내 몸에 대한 선택과 최종 판단은 나에게 달려 있는 듯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밤새 내 고민을 추려보았다:


*주의: 이건 순전히 나의 선택을 합리화기 위한 어설픈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에 대한 모든 것은 의료기관에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제한된 의료지식으로 자신의 몸에 대해 치명적일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어떤 사고의 과정과 감정 상태가 진행되는지 참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시술 자체는 여건이 맞으면 상당히 좋은 시술이다. 단 내 치아의 문제가 해당 잇몸이 이미 일부 녹은 상태라서 아무리 새로운 치아가 그 자리에 자리한다고 해도 고생만 하고 결국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반대편 같은 자리에 거의 같은 잇몸 상태로 있는 멀쩡한 치아는 뽑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나와야 하는데, 그 치아는 멀쩡해도 염증 때문에 발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염증을 제거해서 나았을 것 같으면 발치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고로 건강한 사랑니 이식도 불발이 되는 것이다.


사랑니의 크기와 모양이 발치할 어금니와 다른데 안 그래도 치조골이 일부 녹은 상태에서 발치와 동시에 짧은 순간에 치조골의 모양을 깎아서 사랑니를 이식하기도 힘들 것 같다. 얼추 당일의 수술이 성공적이었다 하더라도 이후 안착이 안되면 나는 임플란트도 당장 하기 힘든 상태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아래 사랑니가 없어지면 위에 있는 멀쩡한 사랑니는 대합치(맞물리는 이)가 없어져서 점점 내려오게 될 텐데, 그걸 반대편 어금니에 이식하면 안 되는 건가?'


대학병원에 며칠 더 머물면서 관련 정보를 찾아본다면 훨씬 더 전문적인 의학적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시간도 없고 굳이 그렇게 내 이를 가지고 험난한 여정을 겪고 싶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는 나의 상황이 아주 좋은 연구 시술 케이스였을 것이다. 치아재식술이나 어금니 이식에 딱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같은 쪽 이를 발치하면서 바로 뒤에 안 쓰는 건강한 사랑니가 있었고, 아무런 투약이나 병적 증세도 없는 깨끗한 피실험체이므로 치아보존과의 임상 연구나 두 어설픈 의사 선생님의 경험치를 쌓기에 아주 좋은 과제였을 것이다. 당연히 성공을 위해 그들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보람도 컸을 것이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는 나는 실험비도 내가 내는 좋은 마루타가 되어 심신이 폐허가 되어버릴 위험을 감수했어야 할 것이다.


이 수술은 고난도 수술이라 임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가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전문의는 6개월 후에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좀 전에 본 손가락이 얇고 길어서 부러질 것처럼 생긴 여자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의사 선생님은 이를 빼다가 본인의 손가락 관절부터 탈구가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덩치 큰 의사 선생님이 도와준다고 해도, 오누이처럼 생긴 그 뭔가 어설픈 듯 느껴지는 두 의사 선생님들에게 선뜻 이 시술을 맡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학병원에 두어 시간 동안 있으면서 이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동네 치과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상당히 노련하고 이 모든 과정을 꿰뚫고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병원에 와서 오히려 처음 간 동네 치과 의사 선생님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는 이런 모든 과정을 이미 다 알고 있고, 내가 어떻게 헤매고 있을 것 까지도 계산하고 있었을 것 같았다.


또한 두 번째 간 병원은 가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더 확실시하게 되었다. 대학병원 치주과 의사 선생님은 해당 대학병원에서는 내 현재 잇몸상태로서는 골폭이 충분하기에 뼈이식을 할 이유가 없으며, 발치 후 최소 2달이 지난 후 잇몸뼈가 차오르면 임플란트를 진행한다고 했다. 동네 병원에서는 발치 후 6개월 이후 뼈가 차오르면 검사를 해서 식립을 하게 된다고 했다. 두 번째 방문한, 소위 임플란트센터를 자처하는 병원에서는 당일 뼈이식과 함께 내비게이션을 이용해서 임플란트식립까지 한다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6개월은 보수적인 치료 방법이나, 더 안전할 수 있고, 나는 교과서적인 보수적 치료방법을 선호하는 사람이니 역시 동네 치과의사 선생님에게 더 마음이 갔다. 발치로 인한 상처 위에 뼈를 이식하고 바로 임플란트까지 식립하는, 생각만 해도 통증이 심할 것 같은 급발진적인 치료과정은 굳이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국 대학병원 진료예약을 취소하고, 처음 갔던 동네 치과에 연락을 해서 당장 이를 빼달라고 했다.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깊고 짧게 고민하고 급히 결단을 내리는 편이다. 그리고 '염증이 퍼진다'는 말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일주일 동안 고민하느라 허비한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 다음날 발치 예약을 하고 일찍 집에 가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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