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도착한 사람들이 처음 하는 말은 풍차가 돌고 튤립도 피고 젖소도 돌아다니는 그런 풍경을 기대했건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풍차로 유명하다고 해서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 한 곳을 소개하자면 바로 풍차마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네덜란드를 목적지로 여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유럽 각 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혹 네덜란드를 여행한다고 하더라도 길어야 이틀 정도 머문다. 이런 짧은 일정으로는 네덜란드의 진면목(?)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친구나 친지가 오면 꼭 데리고 가는 곳이 이 곳이다. 잔세스칸스에 오면 풍차를 배경으로 넓은 초원과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는 오리들을 볼 수 있으니까!
가족들과 네덜란드 여행을 왔을 때도 어김없이 이 곳을 향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잔디크 잔세스칸스Zaandijk Zaanse Schans역까지 기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아 한나절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가족과 함께 기차를 타고 잔세스칸스에 도착하니 진한 초콜렛 냄새가 코를 찌른다. 기차역 바로 앞에 초콜렛 공장이 있기 때문인데, 초콜렛 냄새를 맡으며 10분 정도 산책하듯 걸었더니 큰 폭의 도로와 보행로가 갖추어진 다리가 나타났다. 풍차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잔Zaan강을 가로지르는 줄리아나 다리Julianabrug이다. 잔세스칸스의 풍경은 이 다리에서부터 시작한다 해도 무방하다. 이 다리에서 풍차마을의 전경이 다 보인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것들과 똑같은 풍차가 진짜로 강 너머에 자리하고 있다. 넓게 탁 트인 목초 지대에 드문드문 서 있는 풍차들과 풀을 뜯는 양 떼, 네덜란드 전통가옥이 어우러진 풍경이 마치 그림책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네덜란드 풍차마을의 이미지 그대로다.
잔세스칸스라는 이름은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침입에 대항해 싸웠던 80년 전쟁(1568~1648) 중에 지어진 흙으로 만든 요새에서 유래한 것이다. 16세기에 잔Zaan지역에는 이와 비슷한 형태의 요새가 13개나 있었다. 덕분에 잔세스칸스는 네덜란드에서 스페인의 공격을 받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다. ‘스칸스Schans’는 요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잔세스칸스는 ‘잔의 요새’가 되는 셈이다. 풍차를 주 동력원으로 삼았던 18~19세기에 잔지역에는 약 600개가량의 풍차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풍차마을은 산업혁명으로 기계화가 진행되고 1961년 잔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주변에 있던 풍차 11개와 전통 가옥 35채를 모아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같은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전통마을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풍차가 있는 강변 옆으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잔세스칸스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풍차 덕분이지만 마을을 자세히 둘러보면 작은 박물관과 공방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시계 박물관, 베이커리 박물관, 코코아 공방 등 너무 많아 내가 미처 찾지 못한 박물관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을 꼽으라면 치즈 농장The Catharina Hoeve Cheese Farm과 나막신 공방Clog workshop이다. 잔세스칸스 마을에 들러 이 두 곳만 보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풍차 산책로를 따라 한참 걷다 보니 저 멀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치즈 농장이었다. 우리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와 보니 명칭은 치즈 농장이지만 농장은 아니고 치즈를 판매하는 매장이다.
매장 밖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치즈 덩어리가 탐스러워 안으로 들어갔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치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판매용으로!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종종 시연하기도 한다던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그냥 기계들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럼에도 상관없다. 미각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시식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으니까. 모든 치즈들이 방문객의 시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식 치즈 크기도 큼직큼직해서 치즈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맛의 바다를 헤엄쳤다. 우리 가족은 들어서면서부터 그리 크지도 않은 매장을 세 번이나 강강술래 하듯 돌았다. 훈제 치즈는 처음 만났는데 시식하고는 ‘음~ 바로 이거야!’하는 감탄사가 동시에 나왔다. 훈제 치즈와 몇 가지 치즈를 사 가지고 기분 좋게 매장을 나왔다. 조만간 나 혼자 다시 들이닥칠 것 같다. 우리는 바로 나막신 공방으로 향했다. 나막신 공방은 치즈 농장에서 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치즈 농장이 입을 즐겁게 해 준다면 나막신 공방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공방 앞은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로 항상 장사진이다. 나막신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전통이다. 지표면이 해수면보다 낮아서 질퍽질퍽한 땅이 많다 보니 항상 물에 젖어있던 축축한 땅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기 시작한 투박한 신발이지만 공방에 들어서니 화려하게 채색된 나막신부터 특별한 날에만 신었다는 정교한 조각이 들어간 나막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네덜란드 나막신과 그 외 다른 나라들의 전통 나막신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과 이어져있는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니 실제로 장인이 나막신을 깎는 방법을 설명하며 시범을 보여준다. 크게 세 단계의 공정을 거쳐서 신발을 만들어 낸다. 첫 단계는 사각형의 통나무 목재를 어떤 기계장치에 넣고 2~3분 정도 돌리니 통나무가 나막신 모양으로 깎여져 나왔다. 이것을 다른 기계장치에 올려놓고 장인이 이리저리 조정하여 발을 집어넣을 공간을 파냈다. 마지막으로 장인이 절단기 같은 공구로 외형을 다듬질하며 마무리한다. 장인이 앞에 있는 방문객들에게 결과물을 보여주자, ‘와~’하는 환호와 박수로 호응한다. 통나무가 어느새 나막신으로 변신해있었다. 이 세 단계의 공정은 단 5분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후 공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단다. 필요한 대로 색을 칠한다든가 무늬를 넣는다든가 장식들을 첨가한 후, 4주 정도 말려야 상품성 있는 단단한 나막신으로 완성품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나막신의 원재료가 되는 나무는 포플러Poplar나무로써 일종의 버드나무 과에 속하는데, 이 나무는 물이 많아 깎고 파내기가 쉽지만 일단 오랜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의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하여 나막신을 만들기에 최적이라고 한다. 장인이 방문객 앞에서 공구로 막 다듬질한 나막신 안을 입으로 훅 불자 물이 후두두 떨어졌다. 방문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공방 앞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큰 나막신 모형 안에 들어가 살포시 앉은 부모님 그리고 우리 자매의 사진을 찍고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