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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예 Jan 09. 2019

눈과 입이 즐거운 치즈 천국_알크마르

어린 시절, 프랑스에 잠깐 살 동안 나는 소젖으로 만든 고소하고 부드러운 전통 치즈부터 냄새 지독한 푸른 곰팡이 치즈까지 다양한 치즈의 맛을 경험했다. 유년기의 나에게 치즈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맛의 세계를 선보였다. 귀국 후에 그 때의 맛을 잊지 못해 대형마트의 치즈코너를 둘러보곤 했지만 우리나라에 수입된 치즈는 그 종류도 빈약할 뿐 아니라, 가격도 너무 비쌌다. 전에 비하여 요즈음에는 그래도 비교적 여러 나라의 다양한 치즈들이 대형마트의 판매대를 장식하고 있지만, 나의 ‘그 때 그 맛’을 되살려 줄만한 치즈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 맛이나 보자’하며 구입한 네덜란드 치즈가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인지, 나는 치즈하면, 우리나라 김치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는 프랑스산 치즈를 최고로 생각했는데, 네덜란드 치즈가 이렇게 맛있다니… 나의 고정관념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더치항공에 입사하고, 암스테르담을 오가면서 네덜란드가 프랑스 못지 않은 치즈 생산국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즈와 관련하여 프랑스와 네덜란드 간에 음미할만한 조그마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전쟁(1672-1678)으로 양국간의 무역이 금지되자, 프랑스인들은 그동안 즐겨먹던 네덜란드의 에담Edam치즈를 더 이상 접할 수 없었다. 프랑스인들이 여전히 에담치즈를 먹고 싶어하자, 루이 14세는 에담치즈와 같은 치즈를 만들도록 전국에 포고령을 내렸다고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치즈 중 하나인 까망베르Camembert는 흰색 곰팡이로 싸여져 있고 감촉이 말랑말랑하면서 맛이 강렬하다고 할 수 있으며 흔히들 말하는 꼬랑내같은 냄새가 나는 반면에(프랑스인 중에는 꼬랑내가 많이 날수록 깊은 맛이 있다고 하는 치즈 마니아들도 있음.-저자주) 네덜란드의 에담 치즈는 노란색의 딱딱한 촉감에 꼬랑내같은 냄새가 없다. 맛은 우유가 풍부해서 그런지 좀 더 순해 한국인의 입맛에 알맞다. 특이한 건 치즈의 전체 면을 왁스로 코팅했다는 점이다. 비즈니스에 능한 네덜란드 국민들답게 치즈가 외국으로 수출될 수 있게끔 오랜 시간의 항해에서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그 덕분에 네덜란드 치즈는 냉장보관이 아니라 실온보관도 가능하다. 한국으로 가져갈 때 집에 도착해서 여행가방을 열면 프랑스 치즈는 그 사이에 숙성(?)이 되어 코를 톡 쏘는 경우가 많지만 네덜란드 치즈는 아무 문제가 없다.



6월 어느 날, 나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치즈마을인 알크마르Alkmaar를 방문했다. 치즈축제 여행이었다. 동료인 주희언니와 기차를 타고 알크마르역에서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줄지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이 사람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마을 중앙으로 들어가는 길에 늘어서 있는 꽃다발 또는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예쁜 노점상들을 구경하며 가다 보니 사방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치즈마켓이 열리는 바흐광장Waagplein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광장 주위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하면서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광장 안쪽을 바라보니, 오 마이 갓! 엄청난 크기의 치즈 덩어리들이 광장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다.


노랗고 탐스럽고 빤지르르한 맷돌만한 크기의 치즈가 광장 전체에 질서 정연하게 깔려 있다. 플란더스의 개에서 나올법한 그런 둥그런 치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같은 복장의 여성들이 치즈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고, 둥근 챙의 올드한 모자를 쓰고 흰 옷을 쫙 빼 입은 거구의 아저씨들이 여기저기서 치즈를 옮기고 있다. 마치 17~18세기 유럽의 어느 농촌 마을에 와있는 것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다.


치즈를 운반하는 일명 ‘치즈 아저씨’들은 각기 빨강, 노랑, 초록, 파랑 4가지 색의 서로 다른 모자를 쓰고 있다. 그들은 같은 색끼리 2인 1조가 되어 한 개당 대략 15키로 정도 하는 치즈를 썰매처럼 생긴 들것에 8개씩 쌓아서 운반한다. 그런데, 운반하는 요령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이 들것의 앞뒤에 위치하여 특수하게 제작된 어깨멜빵을 활용하여 가볍게 조깅을 하듯 치즈를 운반한다. 물론 손은 들것을 전혀 잡지 않고 완전 자유롭다. 들것 하나에 120~130키로의 무거운 중량의 치즈를 싣고 있는데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헛둘헛둘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 마치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의 운동회 날 동심으로 돌아가 장난 삼아 기차놀이를 하는 것 같다. 앞 뒤 사람이 호흡과 발을 맞추어 뛰어야만 스텝이 꼬이지 않는다. 쉬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들 엄청난 내공의 장인들이다. 광장을 가로질러 계량소까지, 계량소에서 치즈의 무게를 잰 다음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손수레에 쌓아 놓았다가 차에 싣는다. 한 시간여 동안 이 같은 운반작업을 수십 번 반복적으로 보았는데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어느 때는 약간은 뒤뚱뒤뚱 경보 하듯이 걷고, 또 때로는 우렁차게 기합 같은 것을 넣으면서 걷기도 하는데, 아무튼 이 모든 동작들이 하나같이 귀엽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주 흥미롭다. 네덜란드인의 삶에서 치즈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이 중요한 일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치즈 마켓의 주변에는 임시 천막들이 들어서 있는데, 치즈를 판매하거나 치즈를 이용한 간단한 간식이나 요기거리를 판매한다. 나와 주희언니도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다. 모든 치즈는 대부분 다 시식이 가능하고 맛보기 치즈 치고는 꽤나 큼직큼직하게 썰어준다. 우리도 즉석에서 잘라주는 치즈를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세상에 이렇게 쫄깃하고도 촉촉하고 신선하고 고소한 치즈가 있다니! 시금치, 후추, 토마토, 트러플 등 갖가지 재료를 첨가한 이색 치즈들이 사람들의 구미를 당긴다.


치즈를 판매하는 상인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 전통의상을 입고 있으니 축제분위기가 더 사는 듯하다. 바로 옆 천막을 지나치지 못하고 군것질로 치즈 토스트도 사먹었다. 빵에 치즈만 올린건데 부드럽게 녹아든 짭조름한 맛으로도 충분하다.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게 즐겼다. 오후 1시 정도가 되었을까? 어느새 광장을 가득 채웠던 치즈가 모두 사라졌다. 시장이 파할 시간이다. 시장은 파하지만, 축제의 주최측은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어린이 관광객들을 지게에 태우거나 관광객들에게 직접 치즈를 운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기도 한다. 또한 치즈 계량소에서는 무게를 측정하는 대형저울로 관광객들의 몸무게를 측정하고 기념증서를 발급해주기도 한다.



알크마르 치즈마켓은 해마다 3월부터 9월까지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열린다. 그러나, 사실 오늘 내가 본 치즈 마켓 풍경은 모두 관광을 위한 쇼(?)이다. 현재는 당연히 이런 방식으로 치즈마켓이 운영되고 있지 않다. 전통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여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알크마르 치즈 마켓이 1593년 처음으로 개장했다고 하니, 네덜란드인의 치즈사랑도 꽤 오래된 듯 하다.


오늘 저녁은 주희 언니와 함께 에담치즈에 와인 한 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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