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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예 Jan 02. 2019

움직이는 커다란 그림책_에프텔링

오랜 비행 끝에 보이는 암스테르담은 꽤나 반갑다. 드디어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이 끝나간다. 비행기가 지면에 닿으면 승객과의 만남이 이별로 이어지는 승객의 하기(下機)를 시작으로 기내 점검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진다. 기내 점검을 마무리하고 나면 승무원들은 긴 여정을 잘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피곤한 기색을 감춘 채 우아한(?) 걸음으로 기내용 백과 캐리어를 끌고 크루 센터로 향한다. 나는 보통 이때 더치Dutch크루에게 네덜란드 여행의 꿀팁을 구한다. ‘너는 어디 사니?’, ‘네가 사는 고장의 특징은 뭐야?’, ‘추천해 줄 만한 곳 있어?’ 그럴 때마다 그들은 얼마나 정성스럽게 말해주던지! 한 번은 세상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듯 이제껏 일만 열심히 하던 중년의 아줌마 부사무장이 나와 동료들 간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면서, 제발 이 곳을 가달라고 부탁해왔다.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승무원들한테 매번 이 곳을 알려주지만 그동안 이 곳에 간 아시아 승무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네가 꼭 가줬으면 해.” 그곳은 바로 놀이공원 에프텔링Efteling이었다. 나는 즉시 “유가릿! 싸운즈 그레잇!You got it! Sounds great!”하며 엄지척을 내밀었다.


에프텔링은 카츠헤우벨Kaatsheuvel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있다. 이른 아침에 동기인 문선언니와 현진이랑 에프텔링을 향하여 출발했다. 우리는 암스테르담 남쪽에 있는 스타시옹 라이Station RAI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더 남쪽으로 내려가 세어토헨보스S-Hertogenbosch역에서 내린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또 한 시간쯤 걸려 에프텔링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아우라가 풍긴다. 왠지 날개 달린 원숭이들이 날아다니고, 마녀가 울부짖을 듯한(?) 느낌의 뾰족한 마녀의 성이 보인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다. 이곳 입장권은 무조건 자유입장권. 손목에 팔찌나 도장을 찍을 필요도 없다. 입장만 하면 모든 놀이기구 이용 가능! 38유로를 내고 방방 뛰는 가슴으로 정문을 통과하고 팸플릿을 펼쳐 들었다. 입헌군주제 국가여서 그런지 모든 테마를 왕국 이름으로 명명했다. 여행의 왕국, 요정의 왕국, 모험의 왕국, 환상의 왕국, 상상의 왕국 등 총 다섯 가지 왕국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 하루 동안 ‘뽕’ 뽑고 놀기 위해서는 사전에 계획을 잘 세워야지!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세웠다.



먼저 요정의 왕국에 있는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기로 했다. 꼬불꼬불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화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 동화의 숲 스프록켜스보스Sprookjesbos에 이르게 된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에는 거의 다 ‘숲’이 등장한다. 숲과 그대로 동화된 듯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 진짜처럼 움직이고 있다. 투명인간이 신은 구두인가? 사람은 보이지 않고 구두만 움직인다. 빨간 구두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아저씨의 공방도 보인다. 공방 안은 마치 인형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저기에서 귀여운 인형들과 동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각종 기구들이 살아 움직인다. 어른이든 아이든 빨려 들어갈 듯 눈을 떼지 못한다.



숲 한가운데에는 망루 하나가 서 있다. 동화 ‘라푼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망루 안에는 어여쁜 라푼젤 공주가 갇혀있다. 때마침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기괴한 모습의 마녀 할멈이 나타났다. 마녀 할멈이 ‘라푼젤, 줄을 내려다오!’라고 외치자, 라푼젤의 머리카락으로 엮어진 밧줄이 내려오고 마녀 할멈이 그것을 타고 망루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 무섭고 진지해서 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안돼~!’하고 탄식한다.



좀 더 숲 속으로 들어가자 동화 ‘빨간 모자’의 한 장면이 재현되고 있었다. 빨간 모자를 쓴 소녀가 할머니의 오두막집 앞에 도착해있고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가 집안에서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다. 자세히 보면 자는 척 연기하는 늑대의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숨 쉬는 것까지 볼 수 있다. 빨간 모자 소녀는 과연 이 늑대의 마수에서 벗어날 것인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볼 수 있었다. 공주는 잠자고 있었고 공주를 지키는 병정도 잠자고 있었다. 코 고는 소리도 나고, 꾸벅꾸벅 목을 흔들며 조는 수염 난 병정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푸치니의 오페라 네순도르마Nessun dorma의 아름다운 선율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말로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번역되는 곡이어서 공주가 연상되었던 모양이다. 잠 못 이루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결국 공주는 저렇게 평화롭게 잠들었을 테지. 


눈코입이 다 움직이는 나무 할아버지(?)도 있다. 멀리서 볼 때 진짜 나무인 줄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다. 우리나라 시골마을 입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비슷하다. 나무 할아버지가 갖가지 재미있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주변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무척 재미난 얘기인 것 같다. 여기저기서 ‘꺄르륵~꺄르륵~’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터지고 어떤 개구쟁이 녀석은 짓궂은 질문도 하는 모양이다. 나무 할아버지의 답변에 또 한바탕 웃음소리가 터지고…… 


엄마 아빠도 보았을 법한 동화의 숲에서 아이와 어른이 다 같이 지켜보는 모습이 참 따뜻하고 좋아 보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 사진 찍었던 그곳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엄마 아빠의 추억이 스며있는 곳에서 아이들은 또 새로운 추억을 쌓아간다. 이 동화의 숲에는 익숙한 이야기부터 낯선 네덜란드 설화 속 인물까지 총 29가지 동화 속 세계가 재현되어 있다. 


가족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이상적인 모든 것을 갖춘 놀이공원 에프텔링! 집에 가기에는 아쉬운 시간인 초저녁 6시에 폐장한다. 착하게 집에 일찍 돌아가는 네덜란드인들을 따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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