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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예 Jan 16. 2019

네덜란드 전통의상 체험하기_볼렌담, 마르켄

요즘 한국으로 여행 오는 외국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다양한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간다. 여행을 가면 대개의 사람들은 그 동네 사람처럼 하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야 진짜 여행 같기도 하고. 대학 친구와 함께 네덜란드에 왔으니 전통 의상을 입어보자고 했다. 오늘 하루 서양여자가 되기로 했다. 네덜란드는 국가를 대표하는 전통의상은 딱히 없지만 독특하게도 각 지역별로 다른 전통의상을 갖고 있다. 네덜란드의 전통의상 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볼렌담Volendam지역의 의상이다. 부근의 마르켄Marken섬과 함께 작은 어항이었으나 주민의 특이한 복장이 관광대상이 되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된 곳이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20분만에 볼렌담에 도착했다. 암스테르담 북동쪽에서 23.5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볼렌담은 한적한 시골동네였다. 독특한 모양의 단층집들이 거리를 예쁘게 장식했다. 엄밀히 말하면 단층집에 다락방을 얹어놓은 모양새다. 거리를 따라 걸었더니 곧 바다가 나타났다. 땅과 하늘이 끝이 없다. 초록의 땅과 파란 하늘, 그 사이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태고에 온 것 같다. 마음은 한없이 평안해지고.. 아, 그리고 바람, 바람도 있다. 겨울철 찬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친다. 아마도 사진 찍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아 좋다.. 눈 감아봐..'이런 느낌.. 우리는 각종 보트와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마을로 들어섰다. 치즈 상점, 기념품샵, 사진 촬영 스튜디오 그리고 레스토랑들이 즐비했지만, 겨울철이어서 그런지 한산했다. 왠지 겨울바다의 외로움마저 느껴졌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전통 의상을 입혀서 사진 촬영을 해주는 스튜디오를 찾았다. 네다섯 개 정도의 스튜디오가 밀집해 있는데 마지막 스튜디오 입구에 실물보다 큰 전신 소녀 사진이 간판으로 걸려있다. 전통의상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듯하다. 우리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1명 촬영은 15유로, 2명 함께 촬영은 20유로로 개인당 10유로, 여러 명이 함께 찍을수록 가격은 싸진다. 현상 사진 큰 사이즈 1장 또는 중간 사이즈 2장의 옵션이 있다. 중간 사이즈 2장으로 고르자 마자 아주머니 두 분이 내가 입고 있는 옷 위로 휘리리릭 옷을 입혀주신다. 순식간에 의상이 마법처럼 바뀌었다. 발목까지 오는 세로 줄무늬의 치마를 재빠르게 둘러주시고 가슴과 어깨 등을 덮는 천인 카플랍Kraplap을 입혀주셨다. 화훼 국가답게 유난히 꽃무늬 장식이 많았다. 비슷한 장식이 있는 앞치마도 치마 위에 매주셨다. 날개가 달린 듯한 모자는 간호사 모자와 비슷했다. 레이스로 만들어졌는데 모자를 쓰는 전통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여자의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빈티지한 빨간 산호 목걸이까지 걸고 나니 제대로 된 네덜란드 전통 패션이 완성되었다.



"어때? 네덜란드 여자 같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대기도 하고 실없는 얘기를 나누며 순식간에 이루어진 깜짝 변신을 즐겼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우리 둘 모두 볼도 빨갛고 옷을 덧입어서 불룩한 상체를 지닌 영락없는 우람한 체격의 네덜란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발을 고르는 순서였다. 신발의 선택은 언제나 중요하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전통신발인 나막신을 선택했다. 네덜란드의 나막신은 발 전체를 감싸는 구두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색이나 프린팅 종류가 다양했다. 나는 풍차와 꽃이 그려진 하얀색 나막신을, 친구는 빨간색 나막신을 신었다. 나막신을 신기 전에는 나무로 만든 신발이 과연 실용성이 있을지 의심하며 상당히 불편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신어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신발자체가 아주 가볍고 착용감이 좋았다. 신축성이 전혀 없는 나무로 만든 신발인데 걷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촬영 부스는 세 개가 있는데 각각 배경이 달랐다. 아늑한 벽난로가 있는 부엌, 항구에 정박 중인 배들 그리고 레이스 커튼이 달린 창문이 있는 볼렌담의 전통집. 우리는 아늑한 벽난로 앞에서 사진사가 시키는 대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꽃바구니를 들고 촬영하는 고전 방식을 따랐다. 여러 번 표정도 고치고 옷 매무새도 수정하며 5컷 정도를 찍었다. 사진이 인화되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세 개의 전통 배경을 번갈아 가며 핸드폰으로 자유롭고 유쾌한 셀프촬영을 했다. 비수기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인화된 사진을 보니 반은 낯설기도 하고 반은 낯익은 듯한 국적불명(?)의 두 소녀가 웃고 있었다. 단 하나뿐인 특별한 사진을 각자 손에 쥐고 다시 길을 나섰다.



볼렌담 건너편의 마르켄 섬. 두 마을을 오가는 정기 여객선이 있지만 지붕도 없고 벽도 없는 사방이 완전개방체인 작은 배였다. 30분 동안 추위에 맞설 자신이 없어서 우리는 승선을 포기했다. 다른 교통수단을 알아본 결과, 다행히 마르켄 섬까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그 곳을 오가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는 버스인데, 승차시간과 장소를 알아보니 탑승장소가 꽤 멀리 있었고 그 곳까지는 별다른 교통수단도 없었다. 20분 후면 버스가 출발한다고 하여 우리는 마구 뛰기 시작했다. 잠시 스쳐 가는 짧은 순간 파노라마식으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내겐 낭만적이었지만 뛰다가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간신히 버스에 오르니, 모든 승객들이 숨이 차서 헉헉거리는 두 명의 동양여자가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숨 고르기에만 열중할 수 밖에 없었다.


20분 후 무사히 도착한 작은 항구마을 마르켄. 심심하고 너무 평화로운.. 겨울철이고 비수기여서 그런지 길은 한적하기 짝이 없었다. 작은 섬이라 발길 닿는 데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사람이라곤 우리 둘밖에 없었다. 귀여운 삼각 지붕 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한참을 감상하며 걸었다. 보이는 게 모두 그림 같았다. 아담하고 예쁜 집 마당에 앉아서 책을 보고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왕 커피 생각이 나서 카페를 찾았지만 문이 닫혀있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각이지만 상점이고 식당이고 이미 문을 내린 상태였다. 바다 쪽을 보니 저녁 노을이 지고 해도 뉘엿뉘엿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이 섬을 서둘러 떠나야 했다. 버스가 끊기기 전에...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지만 바다로 분리된 섬은 역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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