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째 흰 죽을 먹고 있습니다. 농익어 가는 대봉시가 상할 참이라 그대로 놔둘 수가 없어 밤 11시에 다되어 양손 주먹을 합친 것만큼큰 감을 세 개나 먹고 잤습니다. 그리고 새벽 6시, 위경련이 와 잠에서 깼습니다.
3일째 위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첫날 통증이 잦아드는 것 같기에 방심하고 베이글을 허겁지겁 먹은 게 병을 키웠지 싶습니다. 어제부터는 얌전히 흰 죽을 끓여 먹고 있습니다.
허리, 발목 같은 움직임에 연관된 통증은 종종 있었지만 속이 아픈 건 오랜만입니다. 그간 소홀히 여겼던 잘 먹기, 위장 건강, 소화 기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탈없이 기능해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건지도 깨닫고 있습니다.
먹기의 본질은 몸에 필요한 재료를 충전하는 것이고, 배고픔이라는 몸의 신호가 왔을 때 적당량을 먹으면 되는 것인데, 저는 생각의 반응으로 먹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음식을 버리는 게 아까워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서, 보상심리 등등
특히 저는 음식을 남기거나 식재료 버리는 걸 어려워합니다.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라는 엄벌의 말, '먹는 데 복이 있다, 잘 먹어서 보기 좋다'라는 칭찬의 말에 갇혀 버린 것 같습니다. 미묘한 죄책감과 인정욕구가 음식을 대하는 저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탈이 납니다. 배부르다, 배 안고프다, 쉬고 싶다는 위장의 신호를 무시하고 시도 때도 없이 이것저것 밀어 넣고 일을 시켰으니 위장에 번아웃이 올 만도 합니다.
몸의 신호와 반응 사이에도 신뢰가 필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통증, 피로 같은 몸의 경고에 적절히 반응하지 않으면 몸에서 신호 보내기를 멈춘다고 합니다. 아직은 저를 포기하지 않고 바로잡을 기회를 주었으니 알아차리고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타인이 그어준 규칙을 잘 지키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먹는 걸 천천히 그만두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몸이 필요로 할 때 적당히 먹기를 연습해야겠습니다.
오롯이 나를 위해 먹기!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만큼만 먹기! 남기고 버리는 것에 너무 죄책감 가지지 않기!
그런데 왜 또 이 밤에 과자가 먹고 싶은 걸까요? 먹을 수 없어 먹고 싶은 게 많아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