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
6살의 나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게 많고
침착한 어린이였습니다.
1. 어린 시절 나는 수가 빠른 어린이였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조부모댁을 가는 버스 안에서 심심했던 저는
창밖에 지나가는 차들의 번호판을 보며 암산놀이를 했습니다.
그 당시 차 번호판에는 6개의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 6개를 가지고 2,2,2로 나누거나 3,3 혹은 4,2로 그룹을 나누고,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암산으로 하며 놀았습니다.
스마트폰도 없고,
특별히 재미난 것도 없던 시절이라
암산놀이가 내게 최고의 놀이였습니다.
맨날 그렇게 놀다 보니 만단 위까지는 시시했습니다.
그래서 백만단위, 천만단위까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전빵이라고 불렀는데,
전빵에 가면 항상 제가 먼저 돈계산을 해서
전빵 할머니께 거스름돈을 요청드렸습니다.
처음엔 꼼꼼하게 확인하시던 할머니는
나중에는 그냥 제게 맡기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할머니께서 제가 쥐포를 먹고 심하게 체했을 때,
약손으로 어루만져 주셔서 나았던 기억이 있다.
문득 생각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표하면서
혹시 돌아가셨다면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란다고 빌곤 합니다.
2. 저는 위기 상황이 생겼을 때,
침착하고 차분한 어린이였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난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주로 암산놀이를 했지만,
간간히 상황극 놀이도 했습니다.
뉴스에서 보거나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어떻게 흘러갈지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서
더 이상 생각이 안 들 때까지 노는 것이었습니다.
제 친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셨습니다.
저와 70년 차이가 났고,
1910년대생이셔서 제가 6살 때쯤엔 70대 중반이셨습니다.
그때 70대 중반이시면
지금과 달리 연세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마다 뒷산 등산을 하셨습니다.
폭우나 폭설이 내리는 날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하신다 들었습니다.
- 그 외 할아버지만의 습관이 있으셨는데 그건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고 -
그래서 할아버지는 체력이 좋으셨습니다.
어린 나를 데리고 대공원이나 놀이동산, 자전거를 태워주시러 여기저기를 다니셨습니다.
저는 성지곡 어린이 대공원을 좋아했습니다.
동물원도 있고,
놀이기구도 있어서 말입니다.
근데 종종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누구누구 어린이를 찾는다는 방송이었습니다.
그때 나만의 상황극을 했습니다.
‘일단 방송실을 찾아보고 못 찾겠으면
그냥 버스 타고 할아버지 댁으로 가자.
57번 버스를 타야 하고,
학교를 들어가기 전이니 버스비는 필요 없겠네.
그리고 사직운동장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횡단보도 건너면 할아버지 댁이 보인다.’
근데 왜 방송실에서 방송한 뒤에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상황극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 할아버지가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할아버지가 안 계셨습니다.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일단 방송실을 찾으려고 했으나
어른들이 어딘지 모르겠다고만 하십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준비한 대로 57번 버스를 탔고,
기사분께 6살이라고 말씀드리고 무료로 탔습니다.
그리곤 무사히 할아버지 댁으로 갔습니다.
때마침 할아버지께서 집으로 전화를 하셨고,
할머니와 통화 후 안심하시고 댁으로 오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참 특이한 어린이였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도 특이한 거 같기는 합니다.
난 어릴 때부터 내 삶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살고 싶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