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심 어린 사과를 해본 적이 있나요?

[나를 알아가는 시간]

by Changers

공동창업자 중 대표였던 친구가 제게 면담 요청을 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응. 무슨 일 있어?”


“형, 저 사실은 우리 셋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한번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이야기?”


“음…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두서가 없더라도 우선 말씀을 드릴게요. 제가 생각하는 공동 창업자가 가져야 할 역량과 형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지만, 저희는 형이 우리 둘이 생각하는 인재상에 맞춰주셨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도 이 문제로 여러 번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이랬습니다. 공동 창업자들은 서로가 봤을 때 부족한 점을 개선해야 한 다이고, 나는 서로의 부족함을 서로의 장점으로 커버하되, 모두가 가진 부족함은 다 같이 커버하자였습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고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 제 생각은 그때와 달라졌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업무를 보는 핵심 역량의 기준은 높아야 하고,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성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2년 전 저를 생각하면 아직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이불킥을 시전 할 정도로 능력이 형편없었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그릇이 크지 못했고, 고집만 센 하수였습니다.


“그래 일단 맞춰볼게. 하지만 나는 각자의 장점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 뒤로도 그 이유를 가지고 여러 번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다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음, 그동안 우리 모두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다들 노력해 주신 덕분에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종종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 셋이서 이 부분을 정리하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주까지 각자가 생각하는 다른 두 사람에 대해서 장점과 단점, 앞으로 바라는 점을 편지로 써주세요.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은 그 내용에 적힌 것을 잘 읽고 우리를 위해서 개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우리는 서로가 적어온 편지를 서로에게 주었습니다. 혼자 조용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저는 얼굴이 점점 붉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지적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형이 바뀌어서 자신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진심 어린 마음으로 조언을 해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회사를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너네들이 잘 못하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너희들이 내게 이럴 수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엇나간 마음은 다시 수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멘털은 바닥을 칠대로 바닥을 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한심하지만,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에게 상처받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 먹으며 세상을 탓하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저와 그만 일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서로 장점은 더 키우고, 단점을 보완해서 성장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주변 사업가 지인들을 만나서 하소연하며 마음의 위안을 받으려고만 했습니다. 그때 그 지인들은 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합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다 저 혼자서 하겠다는 마음을 먹어버렸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그런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어떤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뭐라도 해낼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마지막 자존심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그들에게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 서로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내가 이번에 마음이 많이 다쳐서 회복이 잘 안 되네.”


둘은 당황한 듯 이야기했습니다.


“형, 우리는 이제 그만 일하자고 말씀드린 것이 아니에요. 우리 서로 보완하고 성장해 보자는 거예요. 형이 우리 회사에 많은 부분을 기여해 주셨고, 셋이서 함께 잘 만들어온 회사잖아요. 우리 조금 더 노력해 보시죠.”


둘은 정말 차분하게 저를 설득하려고 했고, 저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끈을 놓아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서로 욕을 하고 화를 내더라도 속 시원하게 얘기하고 풀려는 노력을 했다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해서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어떻게 우리를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했는데, 나한테 이렇게 할 수가 있냐. 나는 정말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성장을 위해서 매일 매 순간 고민했다. 정말 너무 기분이 더럽고 화가 난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만큼 배포가 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좋게 포장해서 마무리할 생각만 가지고 마음에 없는 소리만 했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배려해 주고 신경 써준 거 너무 잘 알아. 그동안 나도 내가 너희들과 잘 안 맞는 부분 때문에 힘들었고, 너희들에게 피해 준다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근데 우리 운명이 여기까지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제 새로운 길을 가볼게. 너희는 너희 길을 계속 잘 가길 바란다. 우리가 지금 엮여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부분은 서로 고민해서 일주일 뒤에 다시 얘기를 나누자.”


“형… 그래도…”



그렇게 18개월 동안 함께 했던 우리의 동행은 마침표를 찍기로 했습니다.



2년이 지난 후, 문득 그들과 함께 일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부족하고 부끄러웠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들에게 사과하고 허심탄회하게 푸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는 말처럼 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 형? 오랜만이네요."


"응, 잘 지냈어?"


"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너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저녁식사 한번 하자. 언제 시간 돼?"


"좋습니다. 저희는 다음 주 평일 저녁에는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그래, 그럼 금요일 저녁 7시에 거기 고깃집에서 보자."


"네, 그때 뵈어요."



그들에게 어떻게 사과를 하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포장된 말보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두 친구들은 받아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 잘 지내셨어요?"


"응, 잘 지내고 있지."


"퇴사하셨다면서요?"


"어? 어떻게 알았냐?"


"얼마 전에 대표님 찾아갔었는데, 형 퇴사하셨다고 하더라고요."


"퇴사 선물로 좋은 카메라도 선물해 주셨다던데요?"


"응? 무슨 카메라?"


"그 형이 영상 콘텐츠 만들 거라고 하셔서 카메라 선물해 줬다고 하시던데."


"아 그거? 그건 내 생일이라고 팀원들끼리 1인당 3만 원씩 걷어서 준 돈에 내 돈을 보태서 산 건데... 대표님께는 3만 원 말고는 받은 게 없는데,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엥? 정말요? 저희는 선물 받았다고 하셔서 좋겠다 생각했는데..."


"뭐 암튼, 오늘 만나자고 한건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건 아니니까."


"무슨 일 있으세요?"


"별일이 있는 건 아니고, 너네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보자고 했어. 처음에 너네랑 헤어지고는 너무 화가 나고 밉고 싫었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문득문득 너네 생각이 나더라. 그러면서 내가 너네와 함께 일하면서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것들, 너네가 나에게 써준 편지에 써져 있던 내용들, 순간순간 내가 잘못하거나 실수했던 행동들이 떠올랐어. 나로 인해서 너희들이 힘들었던 것, 고생했던 것들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었어.


얘들아, 정말 미안하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리고 어리석고 부족한 게 많았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두 친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형이 저희에게 이렇게 사과해 주실 줄을 몰랐는데요. 일단 이렇게 사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다 잘하지 못했고, 형한테 힘들게 해 드렸던 부분이 많았었어요. 형이 그때 말씀하셨던 부분에 대해서 저희도 시간이 지나면서 인정한 부분도 있고, 개선하려고 노력한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서로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서로 부딪히고 화내고 싸우고 풀면서 성장해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과받아줘서 너무 고맙다. 나도 너네들과 함께 했던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성장했고, 그 뒤로도 덕분에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고맙고 미안하다."


"네, 오늘 이 자리에서 풀고 서로 마음에 안 좋은 것들은 털어내시죠."


"그래 그렇게 하자."



너무 고맙게도 두 친구들은 나의 진심을 담은 사과를 받아주었습니다. 그 뒤로 그 두 친구가 사업을 위해서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만나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5화2025년에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